[PRESS] 거짓이었던 그녀는 무엇보다도 진실이었다 - 뮤지컬 마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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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하레타'와 '마타하리'의 삶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의 삶은 기구했다. 석유 관련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밑에서 부유한 삶을 살고, 행복하게 세상을 뛰어다녔으나 그 행복은 아버지의 사업은 파산하며 그녀가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깨져버렸다. 학비를 대지 못했던 그녀에게 교장은 학비를 대가로 몸을 요구했으며,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 주둔하던 군인 루돌프가 술에 취해 올렸던 신문 광고를 보고 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는 시녀에 의해 독살당했고, 결국 그녀는 루돌프와 이혼했다. 가난했던 그녀는 가진 것이 없었고, 잔뜩 지친 상태로 남편과 이혼한 여성들을 반겨준다는 소문의 그곳, 파리로 향한다.
마타하리의 삶은 화려했다. 자바섬에 살았을 때 배운 춤과 이국적인 외모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순식간에 인도네시아의 신비로운 여성이 되어 춤을 추었다. 마타하리, 즉 '하루의 눈'이라는 의미로 태양과 같이 떠오른 그녀는 순식간에 물랑루즈에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파리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녀의 파격적이면서도 색다른 몸짓에 열광했다. 그녀는 값비싼 보석을 매일 선물 받았고, 그 대가로 남성들에게 멋진 하룻밤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하루하루 그녀의 명성은 하늘로 솟았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사랑 받는 여성 '마타하리'가 된 '마르하레타'는, 그리고 '마르하레타'라는 과거를 품고 살게 된 '마타하리'는 과연 행복했을까. EMK의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는 화려한 무대 위로 그녀의 삶의 진정성에 주목한다.
뮤지컬 <마타하리>를 관통하는 그녀의 '거짓의 삶'
뮤지컬 1막 내가 본 대부분의 마타하리는 그 무엇보다도 매혹적이었다. 당당한 눈빛으로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자신을 찾아온 손님의 코 앞에 일부러 향수를 뿌리며 더욱 당돌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타하리로 그녀를 마주한 사람은 분명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녀는 무서운 것이 없으며, 언제나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의 위에 군림한다고. 부족한 것이 없는 그녀는 매일 매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1막 전반적으로 그녀의 피곤함은 숨길 수 없다. 손키스를 날리며 남성과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척 하다가도 남성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그녀의 웃는 얼굴은 금새 사라지고, 그녀의 시선은 바닥으로 떨궈진다. 그녀는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을 잃었다.
그렇다고 '마타하리'가 된 그녀는 불행했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찢어지는 가난함 속에서 핍박 받으며 살아온 '마르하레타'의 삶이다. 몸까지 망가져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을 위기에도 처했던 그녀였기에, 지금 이 화려함,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었다는 그 공허함이 피곤하게 다가올지는 몰라도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마르하레타의 삶은 지워야 하는, 숨겨야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한 평생 본인을 숨기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마타하리에게 그 시발점은 연인 아르망이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자신을 알아 보고 사인을 원하는 여느 남성들과는 다르게 아르망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세상을 비행하며 행복을 느끼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녀의 피곤함 속에 한 줄기의 따스함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르망에게 '마타하리'라는 이름을 숨기며 자신의 진짜 이름 '마르하레타'로 아르망을 만나게 된다. 마타하리가 되었던 그녀의 삶에, 다시 마르하레타가 비집고 나오시 시작한 순간이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는 순간에는 그 화려한 마타하리로, 아르망을 만나는 순간에는 가진 것 없이 순수했던 마르하레타가 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는 '마타하리'도, '마르하레타'인 동시에 그 무엇도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그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갉아 먹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마타하리'와 '마르하레타'
마르하레타는 아르망을 잃고 싶지 않다. 무대 위 화려한 자신의 모습만을 보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아르망은 오직 인간 그 자체로 그녀를 바라본다. 순수하고 해맑은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아버지가 파산하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리도록 했다. 행복하게 세상을 뛰어다니던 그 날의,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던 모습으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마타하리'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아르망만을 품에 안고 싶게 된 것이다. 마타하리를 구성하는 세 개의 요소, 이국적인 외모, 신비로운 춤, 그리고 환상적인 하룻밤 중 하룻밤이 사라지게 되었다. 마르하레타는 자신의 존재에서 마타하리의 아이덴티티를 지우기 시작했고, 그 사실은 마타하리를 사랑했던 남자, 라두 대령이 집착과 광기에 물들어 마타하리를 위험에 빠트리도록 한다.
마타하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녀가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과거, 불행하게 바닥을 기어다녔던 마르하레타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인도네시아 출신이 아니라는, 부유헀던 네덜란드 집안의 출신인 마르하레타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당황하여 현재 마타하리로서의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녀는 마타하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아르망을 지키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로 한다.
하늘에 손이 닳도록 비는 삶
내 손에 보석이 어울려
저 화려한 조명 속에
안돼 남편에 복종하는 삶
내 삶은 내가 만들어
화려한 일상 속에
그녀는 행복한 '마타하리'인 동시에, 행복한 '마르하레타'였다.
마타하리로서 마르하레타를 부정하고, 마르하레타로서 마타하리를 부정했던 그녀는 마침내 두 이름을 모두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사형을 결정 짓는 그 순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 광고를 보고 군인 루돌프와 결혼 한것도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에게서 벗어나 파리로 향한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다. 자신의 이국적인 외모를 살려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러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 그를 지키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최선은 '아르망'이라는 그녀의 유일무이한 사랑을 만나 '마타하리'라는 이름으로도, '마르하레타'라는 이름으로도 그의 곁에서 평화를 누리며 행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다. 마타하리였기 때문에 그녀는 아르망을 지키기 위해 스파이로 살 수 있었고, 마르하레타였기에 아르망에게는 그 어떠한 거짓도 없이 진실을 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르하레타로서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두 인물, 의상사 안나와 애인 아르망에게 인사를 고하고, 마타하리로서 화려한 댄스복을 입으며 당당하게 사형대에 선다.
아주 조금,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한다면.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찾아 삶을 마감한 마타하리,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며 행복의 길로 이끌어준 아르망. 그 뒤의 캐릭터 라두 대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라두 대령은 처음, 마타하리의 팬으로 나타나 자신이 프랑스 정보국 소속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는 전시에서 마타하리를 처음 스파이로 제안한 인물이며, 동시에 뒤에는 아르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타하리의 모습에 지옥으로 빠지는 서브남자주인공이기도 하다.
극의 후반부, 라두 대령이 마타하리에게 느끼는 간절함과 사랑은 광기에 가깝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부수겠다'고까지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라두 대령은 도대체 언제 마타하리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마타하리의 공연을 보고 그녀를 찾아가고, 그녀에게 자신의 직책을 이야기하며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녀를 이 전시 상황에서 '스파이'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당신과 같은 매력이면 스파이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그녀의 매력을 높이 사면서도 '당신의 과거가 알려지기 싫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는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에서 마타하리에게 집착하게 된 과정이 조금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마타하리를 위해 행동한 것, 감시하고 보호하는 것, 당신을 원한다고 외치는 것 모두 그녀가 스파이가 된 이후였으니까 말이다. 라두 대령의 모습은 여타 다른 남자들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무대 위 마타하리를 원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이것을 집착까지 이어지는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의문점이 남는다.
그 덕분에 그의 마음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아르망을 지키고자 하는 마타하리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절절하게 2막에서 마음을 내비치는 그 모습을 앞서 조금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남긴다.
그럼에도 믿고 본다, EMK의 뮤지컬
뮤지컬 <마타하리>가 EMK뮤지컬컴퍼니의 극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방면에서 '믿고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번째, 무대의 화려함이다. EMK의 무대가 얼마나 눈을 황홀하게 해주는지는 이미 뮤지컬 <웃는 남자>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그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해주었다. 전쟁터, 비행기, 마타하리의 무대, 파리의 길거리까지 EMK는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아주 잠깐 나오는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EMK는 먼지가 떨어지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공들였고, 그로 인해 관람객은 모든 장면마다 뮤지컬이 아닌 실제 캐릭터를 따라 그 장소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감동을 받는다. 거기다 <엘리자벳>, <레베카> 등 '한국 유럽 뮤지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EMK는 주연과 조연 할 것 없이 그 의상 또한 다채롭고 화려하다.
두번째,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존재다. EMK는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과 그 존재감에 공을 들인다.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엘리자벳>에서 씨씨는 불행, 그리고 죽음과 맞서 싸우면서도 앞으로 향해 나아가고,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는 군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국민의 편에서 당당히 앞선다. 특히 남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웃는 남자>에는, 주인공 그윈 플렌의 존재에 유일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인물 조시아나 여공작이 있다.
마지막으로 캐스팅이다. 2024년 사연 <마타하리>의 마타하리 역에는 배우 옥주현과 아이돌 가수 솔라가 함께 오르게 되었다. 처음 이 두 캐스팅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 두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로부터의 비교와 날카로운 눈길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옥주현 배우는 이미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인데, 그 곁에 데뷔작으로 현직 아이돌 가수가 오른다는 것에 뮤지컬의 팬이자 가수 솔라를 평소 애정 어리게 바라보았던 사람으로서 꽤나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을 보는 내내 나는 이 극은 꼭 전 배우, 즉 옥주현 배우와 솔라 배우를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타하리의 무대 위 화려하고도 선망이 되는 모습은 현대의 아이돌의 모습과 흡사하다. 거기다 '사원의 춤'에서는 고난이도의 인도네시아 춤까지 소화해야 하니, 믿고 보는 옥주현 배우는 물론이고 아이돌의 삶을 살고 있는 솔라 배우가 해석한 마타하리라는 캐릭터의 해석과 무대 위에서의 춤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커졌다. EMK의 선택은 옳았다.
<마타하리>라는 멋진 무대를 선사해준 EMK 에게, 한 명의 뮤지컬 팬의 입장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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