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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붉은웃음’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소설 ‘붉은 웃음‘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소설 ’붉은 웃음‘은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전쟁의 무의미함과 광기, 그로 인해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연극 ‘붉은웃음’은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청년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에 따라 무대 위의 시간은 1904년과 2024년을 오가며 자유롭게 흘러간다.


두 시대의 처참함을 발현해 내며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는 오로지 한 명뿐이다.

 

이 점이 굉장히 흥미롭고 놀라운 이유는, 배우 혼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해 내기 때문이다. 윤성원 배우는 1904년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인 형, 그리고 형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동생, 2024년으로 돌아와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204호 청년, 그리고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까지, 네 인물의 옷을 입고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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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는 커다란 쓰레기 더미가 겹겹이 쌓아 올려져 있다. 바닥은 모래로 깔려 있고, 쓰레기 봉투를 손에 쥔 유품정리사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된다. 유품정리사는 몇 번이나 등퇴장을 반복하며 쓰레기 봉투를 쌓아 올렸고, 그 뒤로는 고독사한 청년이 남긴 글의 내용이 화면을 통해 띄워졌다.


1904년의 이야기와 2024년의 이야기는 교차로 반복되며 진행된다. 배우는 형과 동생의 목소리와 말투를 달리하며 인물을 구분했고, 204호 청년의 고독사를 표현할 때에는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 생생함의 과정은 배우의 격렬한 몸짓을 통해 발현되었다.


2024년 10월부터 11월까지. 쓰레기 더미 위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는 204호 청년의 속마음이 내레이션을 통해 극장에 울려 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의 몸 상태는 이미 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여러 번의 발작과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장기.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은 죽음을 체감하고 있었고 그것은 가감 없이 설명되었고 표현되었기에 뒤로 갈수록 기괴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알지 못할 누군가의 죽음을 생생히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배우는 모래 속을 샅샅이 뒤지며 물건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그는 무릎으로 기어다니기도 하고, 두 팔을 있는 힘껏 뻗으며 모래를 파헤치기도 한다.

 

그 모습이 어딘가 처절하고 절박하다. 모래 속에 묻혀있던 유품들이 하나, 둘 무대 위에 나란히 놓인다. 그가 찾아낸 물건들은 아마 고인의 유품일 것이다. 용도를 잃은 채 버려진 유품들에는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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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끌려간 형은 다리가 잘린 채 집으로 돌아온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등진 채 형은 방으로 들어가 몇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채 미친 듯이 글을 썼고, 그의 책상 아래에는 구겨진 종이들이 쌓여갔다. 동생의 물음에도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던 형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전쟁터와 그곳 모든 사람들은 붉은 웃음이라는 말과 함께.


청년 고독사와 전쟁의 피해자 사이의 접점은 무엇일까. 그 지점을 찾아가는 몫은 관객들에게 던져졌다.


극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중, 배우는 책상 위로 올라가 객석을 향해 외친다.

 

“실재하는 것은 우리의 몸뿐이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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