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틀을 깨다 - 달의 뒷면을 걷다 [도서]

순정만화와 SF장르의 콜라보
글 입력 2024.11.2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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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달의 뒷면을 걷다.jpg

 

 

순정만화와 SF장르의 콜라보?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전개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평소에 순정만화를 즐겨 보지 않지만, SF 장르는 좋아하여 <달의 뒷면을 걷다> 책을 얼른 받아보고 싶었다.

 

<달의 뒷면을 걷다>는 디오티마 우코, '다이'라는 애칭을 가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달에서 태어나, 달에서 살다가, 달 밖의 땅은 밟아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월인'의 삶을 담고 있으며, 권교정 만화가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을 오마주하였다.

 

원전의 디오티마가 '생을 거듭하며 진화하는 영혼'의 숙명적인 고단함을 다루고 있다면, 전혜진 작가의 디오티마는 인간뿐만 아니라 달에서 태어난 '월인' 역시 결국 소멸하게 될 '필멸'의 숙명을 딛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간의 숭고함을 다루고 있다.

 

디오티마. 디오티마가 누구인지 알려면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초로 달의 크기를 관측했던 아리스타르코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고대 그리스 여성 디오티마. 그녀는 인간이 세대를 거듭해야만 '지혜'가 성장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지만, 지식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갈증을 느낀다. 그런 열망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그녀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수천 년을 거쳐 여러 육신의 삶과 죽음을 반복한 끝에 우주 스테이션 '디오티마'의 함장 나머 준의 육신에 안착한다. '진화하는 영혼'이란 설정은 다소 난해하면서도 신비한데 종교적 의미의 환생과는 다르다. 전생의 악업 혹은 선행으로 다음 생의 삶이 결정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생을 거듭해도 동일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으며 매번 객채로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 <동아일보> '[만화리뷰]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달의 뒷면을 걷다'가 제목인 이유도 고대 그리스 여성 '디오티마'에서 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반쪽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디오티마의 말을 정리한 블로그를 보았다. 로맨틱하면서도 철학적인 표현이었다. 언제나 미지의 세계는 있기 마련이니, 영원히 나머지 반쪽을 찾아나설 것이라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첫 걸음을 떼는 게 중요하다는 주인공의 신념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분명 21세기 끝 무렵의, 현 시점에서는 미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현 시대의 문제 상황을 판타지적인 상황 설정을 동원해 이해하기 쉽게 묘사한 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지구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고 익숙한 용어가 달에서는 낯설게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너 같은 나이의 십대 청소년을 두고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그런단다. 질풍노도라는 건 아주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 / "외벽 파손으로 공기가 확 빠져나갈 때처럼 말이죠." / "그래, 이곳 방식대로 비유하자면 그렇겠구나. 질풍노도에 비유하기도 하고 혈기가 왕성하기도 하고. 어쨌든 뭔가 시끄럽고 불만도 많으며 어른들이 하는 일은 다 이해가 안 가고 그럴 때가 있는 거지."] - 47p

 

지구와 달의 대립 구조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구인들은 지구에서 잘 보이는 달의 앞면에는 주거지와 호텔 등 온갖 좋은 것들, 필요한 것들을 지어두는 반면, 그 반대에는 공장, 과학 기지, 화물 창고를 지었다. 심지어는 이제 달의 뒷면은 방치해 쓰레기장으로 변모해버렸다.

 

달에 방사성 폐기물을 갖다버리겠다는 지구인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디오티마 우코의 분노는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두려고 하는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터져나왔다.

 

2076년, 달 거주법이 공포되며 성인의 달 근무기간은 연장 없이 최장 3년까지 정해졌다. 지구에서 태어난 아이의 달 출입도 금지되었다.

 

세계관도 탄탄했다. 위 법이 공포되었지만, 예외 캐릭터가 한 명 있다는 설정도.

 

["달 거주법이 공포된 후 지구에서 온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고 갓난 아기였던 라테를 포함해 고작 다섯 명만이 남은 학교에서, 다이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같은 말들을 들어 왔다. 너희는 월인이라 몸이 약하다고, 너희는 월인이라 지구에 갈 수 없다고. 평생 이곳, 달을 떠날 수 없다고. 무엇이 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 다정한 걱정같은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았다. 너는 월인이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그 잔혹한 단정을."] - 54p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월인의 삶. 특별한 존재였다가 멸종위기종이었다가, 인간이 지어둔 달 기지 밖을 벗어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단정지어지는 사람. 과연 주인공은 어떤 길을 택했을까?

  

덕질의 작품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좋아하면 계속 들여다 보게 되고 깊이 파고들게 된다. 어느 한 전문가의 시작은 대개 '덕질'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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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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