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는 두 번 이상 마주해야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나 감정적인 순간에 찾아온다면 더욱 좋다. 그렇게 막연히 부유하던 상념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지혜로 쌓인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모호한 삶에 분명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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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다. 시로 먼저 접해 그의 삶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경험이 배제된 채로 읽었던 글자 위로 그의 삶이 쌓이면 그것 또한 분명히 좋아하는 시가 된다.
<서시>라는 시가 있다. 본래 육필 원고에는 제목이 없었으나,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 페이지에 놓여 서문(序文) 같은 역할을 한다 하여 사후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그 짧고 묵직한 시는 이렇게 되어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 글자, 한 문장이 그 자체로 숭고한 이 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절은 다음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문장이 어떤 마음에서 일어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시대의 어둠과 크나큰 고통 속에 ‘모든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죽어 가는 것’을 껴안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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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추억을 찾아 어느 해의 겨울을 불러오고 싶다. 첫 기억으로부터 십 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한 해의 끝 무렵인가 혹은 처음인가 아무튼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좋아하고,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러 서울에 갔었다. 일찍이 저녁에 만나 술을 조금 하고, 온기로 북적이는 카페로 가 앉아서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통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기서 차디찬 얼음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이나 했었다.
다음날의 약속을 위해 늦지 않게 서울을 떠나왔다. 역 앞까지 배웅을 해준 사람에게 인사를 흔들고 서둘러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철은 미련도 없이 출발했다. 마음이 따스하게 달아올라 그 여운을 뭉근히 느낄 새도 없이 주변은 바깥에서 한기를 머금고 들어온 승객으로 가득했다. 한참이 지나 사람들 틈새에 끼어 앉아 숨을 내돌렸다. 건너편 차창 바깥으로 검은 화면이 계속되었고 그날따라 휴대폰에 배터리도 부족한 터라, 텅 빈 머릿속으로 잠시 치워두었던 상념이 제각기 떠올랐다.
깊숙한 구석에서 튀어 오른 상념은 서늘했다. 그것이 차례로 겹쳐졌다. 가슴이 차가운 공허로 가득 찼다. 이윽고 꿈틀거리는 불안이 자라났다. 금세 손발이 차가워지고 가슴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심장박동을 참아내지 못해 손발이 떨렸다. 입술이 부르트고 묵직한 습기가 올랐다.
시선을 이리저리 던지다 문득 며칠 전 편안히 잠에 들고자 시도했던 방법을 떠올렸다. 휴대폰에 저장해둔 시를 외우는 것이다. 행 하나를 외고, 그다음을 외우면 금세 한 연을 욀 수 있고, 그렇게 전체를 외우려다 보면 금세 몸이 편안히 가라앉으며 졸음이 찾아왔다. 그것을 떠올리며 시 하나를 골랐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였다.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忍苦)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분명한 뜻도 알지 못한 채로 무작정 한 줄씩 외웠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마음이 혼란해져 모래처럼 흩어질 때면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외웠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 * *
그리고 또 오랜 날들이 지났다. 순간의 감정을 잠재우려 애쓰던 시점에는 차마 생각지 못했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금 한기가 드는 계절이 찾아왔다.
그간 또다시 여러 차례의 숙고를 거쳤다. 슬픔이 들어차는 순간마다 망설였다. 참을 수 없는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을 헤매었다.
지금의 내 앞을 걸어갔던 존재들은 어디를 향했던가.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고 나는 ‘그런 영혼’을 읊조렸다. 삶의 차가운 것, 절망과 분노를 떨쳐내기보다 삶의 따뜻한 것, 사람들과 사랑과 마땅한 슬픔을 껴안았다. 인간의 앞에 놓인 삶을 끌어안았다.
살아있는 한, 끝내 우리는 삶을 지향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인생을 받아들일, 그 복잡하고 미지근한 것을 껴안을 운명을 타고났다면, 양지로 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슬픔을 극복하는 힘, 결핍을 끌어안는 강인함,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가 녹아들은 그 아름답고 처연한 햇빛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다면. 완벽히 아름답지 못한, 여러 차례의 손길을 거쳐 마련된 좁은 햇살 아래로 눈을 감아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