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랑의 힘

폭력에 무뎌지지 않는 사람들
글 입력 2024.11.05 14: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릴 때는 말이다, 나는 무조건 도덕적으로 규정된 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어쩌면 교육이란 세뇌, 그것도 주입할 가치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세뇌이지 않을까. 옛날엔 훈육을 위한 체벌을 올바른 것으로 가르쳤지만 이젠 아니니까.

 

아무튼, 그럼에도 교육은 항상 이렇게 말해왔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위해 양보해야 해요.',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해요', '폭력은 나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사이좋게 보듬어야 해요.' 그걸 한 번에 무너뜨리게 한 건 내가 오래도록 겪은 학교폭력이었지만, 어쨌든 난 그 교육의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인 걸 알면서도.

 

이상적인 교육을 모두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현실의 뉴스들은 모두 부정적인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사람을 살인하고, 상해를 입히고, 다투고, 무시한다. 옛날엔 살인사건이 나도 특종으로 분류되고, 범인에 대해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양상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저, '또 범죄가 발생했네, 왜 저랬대?'라는 시선 뿐이다. 당연히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이상적인 교육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사형시켜라', '평생 감옥에 가둬버려라'라는 등의 반응이 나오긴 하지만, 그러고 며칠, 아니, 몇 시간 뒤면 그 감정은 새까맣게 잊고 할 일을 마저 하기 바쁘다, 우리 모두.

 

우리가 지금까지 교육받아온, 세뇌당해온 가치가, 그 절대적 가치가 이런 거였나?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저지르고, 그 폭력에 무뎌지고, 그것이 일상이 되는 게 평생 교육받은 결과인가? 그래,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사람들의 선의를 믿었다. 모두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으면 그것에 연민하는 감정을 가지고 도울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이상이었던 것일까.

 

 

131.jpg


 

위 사진의 이름은, '탱크맨'. 중국 천안문 항쟁 당시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탱크 앞을 평범한 한 남성이 가로막은 사진이다. 20세기 중후반은 한창 민주화의 물결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였고 우리나라 또한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 중국에서도 또한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는데, 천안문 6.4 항쟁이 그 대표이다. 비록, 유혈진압으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처음 저 사진을 봤을 때도 무언가 장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비극적인 폭력인 전쟁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인 탱크가 시내로 들어오고 있다.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가. 그리고 그 앞을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이 홀로 서있다. 그 고독함이, 그 정의로움이 나는 뭔지 어릴 땐 몰랐지만 역사에 대해 알아가며 그 숭고한 용기가 가진 힘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저 곳에 뛰어든 걸까. 도대체 어떤 감정으로 저 곳에 서있던 걸까. 여러 번이나 길을 막으며 물러서지 않았던 그 작은 몸은 탱크보다도 훨씬 거대한 힘을 가졌던 거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것, 그것이 그 힘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는 평상시에도 실천하고 있을까? 최근 이틀 연속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을 봤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한 번은 횡단보도에서 무거운 짐을 가진 노년의 여성분을 돕는 시민들을 봤다. 도움을 받으신 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너무나도 고마워하셨지만, 도와준 시민들은 정작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아하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탱크맨 사진을 보았던 때와 같은 가벼운 소름을 느꼈다. 여전히 존재하던 거다! 내 이상이 이상으로만 남지 않게끔 실현하는 사람들이.

 

그로부터 며칠 뒤, 버스를 타는데 내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든 또 다른 노년의 여성분을 마주쳤다. 곤란에 빠진 할머니를 본 게 세 번째, 이제는 '선'으로 배운 가치를 내가 실천해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가방을 들어 올려드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무거운 짐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끙끙거리긴 했지만, 감사함을 표하는 할머니 앞을 나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갔다.

 

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 아니라, 이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웃었다. 생각보다 쉬운 거였다. 내가 먼저 실천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사랑을,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그 강렬한 따스함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을 믿는다. 폭력에 맞서 싸운다, 따스한 사랑으로.

 

 

 

20241028125830_gbszreza.jpg

 

 

[윤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2.1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