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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Correspondence : Lee Ufan and Mark Rothko’ 전시에서 이우환 작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직접 촬영

 

 

문화예술을 접할 때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평소 전시를 감상할 때 가지고 있던 주요 루틴 중 하나가 작가에 관해서든, 작품이 만들어진 기법에 관해서든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슨트/오디오 가이드를 수반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면 이 작품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와, 작품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우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작품의 정답을 찾고, 나의 오답을 가려내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추상미술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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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전시를 보러갔을 때 찍은 사진. 사진 직접 촬영

 

 

그래서 내게 추상미술은 유독 어려웠다. 설명을 들어도 충분치 못했다. 그림 속에 떠다니는 정체 모를 도형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추상예술가의 배경을 되짚어본다고 해서 뾰족한 답안이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서 부러 추상미술 작품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단단히 자리 잡은 습관 탓인지 작품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호안미로 작품을 볼 때는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기호들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지 골똘히 생각했고 (실제로 통용되는 의미가 있긴 했다), 이는 칸딘스키 작품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추상미술과 혼자만의 밀고당기기를 거듭하던 차에 읽게 된 책이 바로 '마크 로스코 - 내면으로부터'다. 마크 로스코 작품은 추상미술 중에서도 관객마다 평가가 극명히 나뉘는 편이고 ,구성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워 자칫 오히려 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작품에 대한 접근법을 짚어본 후, 반대로 추상미술을 더욱 가까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은 내용 전반을 거쳐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상세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지난 10월 26일까지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Correspondence : Lee Ufan and Mark Rothko’를 통해 책에서 배운 접근법을 실천해 봤다. 마크 로스코와 이우환 작가의 2인전으로, 다른 공간과 시대에 그림을 그렸지만 선명한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조명했다.


*이번 글에서는 마크 로스코 작품을 통해 추상미술을 더 가깝게 느낀 개인적인 경험을 다루고자 하여, 이우환 작가 작품에 관한 글은 별도로 다루려고 한다.

 

 

 

솔직한 감정에 집중하기


 

마크 로스코 작품을 걸어둔 2층은 널따란 작품을 응시할 수 있는 각도 등을 고려해, 작품을 최선의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뒀다. 우선 2층 내부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됐다. 이어 창문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도를 유지했으며, 각 작품마다 조명의 개수를 달리해 아우라를 살렸다. 덕분에 작품을 바라보는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어렵지 않게 실현할 수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면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작품을 보는 스스로의 태도였다. 나도 모르게 작품 안의 사각형들이 일상 속 다른 사물들로 치환돼 보일 때 최대한 연상 과정을 막고자 했다.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과 그 감정과 관련된 일상 속 에피소드는 떠올릴지언정, 책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붉은 빛 도형을 일몰로 비유하는 등의 시도는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작품을 마주한 뒤 이렇다 할 복잡한 추론 없이 즉각적으로 드는 감정에 집중하자, 작품이 새롭게 보였다. 각각의 작품 앞에 설 때마다 감정이 움직이듯 물결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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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6 [?] {Green, White, Yellow on Yellow}, 1951, oil on canvas, 67-5/8" × 44-5/8" (171.8 cm × 113.3 cm) 사진 출처 : 페이스갤러리

 

 

그중에서도 계속해서 발걸음을 돌이켜 오래토록 바라보게 만든 작품은 No.16이다. 발랄하면서도 희망을 가져다주는 느낌이 들어서,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었다. 보는 즐거움을 돋워주는 녹색의 색감과 경계를 뭉게뭉게 덧댄 모습이 그림 속을 뛰노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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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ko, No. 5 {Untitled}, 1964, oil on canvas, 90" × 69" (228.6 cm × 175.3 cm) 사진 출처 : 페이스갤러리

 

 

코너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 본 No.5과 무제(Brown on Red)를 비교해 보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두 작품 모두 동일한 크기(90”x69”)에 비슷한 형태의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전해오는 감정이 무척 상이하다. 전자는 어딘가 창백한 와중에 실낱같은 희망이 눈에 띄는 작품인 반면, 후자는 묵묵히 힘을 실어주는 느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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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Brown on Red}, 1964, oil on canvas, 90" × 69" (228.6 cm × 175.3 cm) 사진 출처 : 페이스갤러리

 

 

특히 무제(Brown on Red)의 경우 붉은색이 으레 연결되기 마련인 열정 등을 유도할 법한데 그런 느낌은 없고, 대신 작품을 바라볼 때 마음이 든든히 채워지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갈색 사각형이 뚜렷한 경계와 함께 작품 안에 상당 부분 들어차 있음에도 답답하지 않고 힘을 가득 실어준 셈이다.


책과 전시 모두 반복해서 강조하듯, 마크 로스코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규모, 인간의 드라마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전달하고자 한다”는 의도를 남겼다. 향후 마크 로스코의 작품뿐 아니라 추상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감정을 우선적으로 조명해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마크 로스코의 철학을 접하고 작품까지 관람해 볼 수 있었던 이번 경험은 나에게 커다란 자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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