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궁무진한 가능성 - 도서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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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무기력감에 빠지면 숨만 쉬는 어떤 물질이 된 것만도 같다. 눈을 깜박이는 행위도, 입을 벌려 밥을 먹는 행위도, 외출을 해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는 것도 모두 일절 차단하고 그냥 숨만 쉰다. 그 숨쉬는 행위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일말의 자존심인냥 숨은 고집스럽게 들이마쉬고 내쉰다. 그렇게 집에서 하나의 번데기가 되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우린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보통 과정은 비슷하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아늑함 내지 나태함이 주는 안정성에 기반하여 내면의 심원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하면 쉽사리 그 진원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하지 '못한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채로 죽어간다. 그것이 히키코모리의 일상이다.
그 행위는 마치, 캄캄한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별들이 반짝이고 우주 물질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무언가 혼란스러운 죽음이 반복하는 게 보이지만 어쨌든 그건 남의 일이다. 히키코모리는 그 사이를 그저 헤엄치며 느릿느릿하게 눈동자를 돌려댈 뿐이다. 그 어둠에 나 또한 일체시키면서. 나 또한 죽어가면서. 나 혼자서, 고독하게.
하지만 우주는 명확히 탄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죽은 별들의 무덤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따라서 우주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탄생과 죽음 중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것은, 우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 가능성에 나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히키코모리였던 사이토 뎃초가 루마니아어로 글을 집필하게 된 일대기에 대한 책이다. 보통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서유럽이고, 그 중에서도 영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집필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히키코모리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에 대해 깊은 학식을 쌓으려면 깊은 인내와 적지 않은 시간이 나 혼자와의 싸움에서 필요할 것이니까.
작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완전한 히키코모리가 되었고, 깊은 우울감에 극단적인 생각도 하였지만 하나 잃어버리지 않은 빛이 있었으니, 영화 감상이었다. 알바를 하며 영화비 정도는 벌었던 작가는 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리고 이 취미를 통해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 사람이 영화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경찰, 형용사>라는 영화는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조차도 처음 들어본 영화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영미를 제외한 나라의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 같다.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작가가 이 영화로 왜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되었는지 읽어보았다. <경찰, 형용사>는 루마니아어를 다루는 영화이고,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작가는 그 계기로 루마니아어를 배운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지만 간단하다고 계기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결과는 우연한 발견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으니.
히키코모리인 작가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외국어를 접근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채팅이라는 수단을 통해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게 되고, 루마니아어로 시와 소설을 집필하게 되고, 일본어와 루마니아어 사이에서 번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본인의 삶이라는 바퀴를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히키코모리가 가진 그 무력감이라는 것은 생의 위에서 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그걸로 된 것이다. 이뤄냈다. 그 깊은 우주에서 스스로가 별이 되어 빛난 것이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인칭 대명사에 대한 작가의 깨달음에 대한 것이다. 일본어에는 성별에 따라 1인칭 대명사를 다르게 부른다. 보통 여성은 와타시, 남성은 오레나 보쿠를 사용한다. 하지만 루마니아어로 1인칭 대명사는 'eu'라는 한 단어로 통일되어 있다. 이를 통해 성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어의 '나'라는 표현에 큰 생각을 가지지 않았던 지라 작가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언어의 특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이토 뎃초는 히키코모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만 버릴 거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히키코모로리를 비웃고 조롱할 수 있을까? 이토록 자신의 열정에 온몸을 던졌던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기억은 할 수 있는가. 방구석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우주의 우주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들을 응원한다.
[윤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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