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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의례의 지속
다음으로 유교적 의례는 그 외형을 변화시키면서도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정착된 유교의 일생의례는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하여 관혼상제라는 한국의 전통 의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혼상제는 일제강점기의 『의례준칙』이나 1973년에 개정된 『가정의례준칙』을 통해 급격하게 축소되거나 변형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정의례준칙』은 1969년 박정희 정권에서 일상의 결혼식, 장례식, 제사와 같은 관혼상제를 국가가 규제, 관리하려 기획한 것이었다. 관혼상제에서 관례는 아예 탈락되어 시행되지 않고, 혼례는 종교적 의례를 수용하였으며 상제례는 대폭 축소되었다. 이는 당시 국가주도의 근대화라는 목표에 맞게 사람들의 일상생활 구조를 '효율적', '합리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당시의 정책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따라서 사치 금지, 간소화를 내세우며 혼례에서는 약혼식과 폐백을 폐지하고, 혼인 당일 혼인신고를 의무화했다. 이런 모습은 1969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가정의례준칙 홍보 영화 "오붓한 잔치"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남: 청첩장은 무슨 청첩장이야? 그 고지서 같은 것. 그런 건 보내지 않는 게 좋아요. 결혼식은 되도록 간소하게 하기로 말했잖아. 친지들에게만 알리고.
여: 전 반대예요.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시시하게 넘길 수 없잖아요.
남: 지난번 우리 약혼 때처럼 친지들만 모아놓고 간단하게 치르니 얼마나 좋았어? 허례허식을 떠나서 실질적인 서약으로 약혼서에다가 건강진단서와 호적등본을 첨부해서 서류만 교환한 것처럼 말이야. ( 중략 )
남 : 알겠지? 준칙에 의한 결혼식을.
여: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전 간섭을 안 할 테니까
남: 역시 여자다운 데가 있군. 내말대로 해요. 응? 그럼 멋있는 선물을 줄게.
이처럼 국가 주도 하에 유교적 의례는 '근대화',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서양식의 신식 가정의례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산업화의 산물인 도시로 생활공간이 변화하면서 유교적 의례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주거의 고밀도화로 인해 도시에서는 더 이상 가정에서 의례를 치를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장례식장, 결혼식장과 같이 일생의례를 행할 공공장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의례는 외형을 변화시키면서도 내면적인 의미를 전승하고 있다.
상례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의식 약화와 핵가족화는 장례를 치르는 데 필요한 시설과 장례용품 등 각종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식장의 등장을 야기했다. 또한 장례식장의 도입과 함께 장례를 전문적으로 대행해 주는 상조회사가 등장하며 장례문화는 크게 변화했는데, 이런 외형적 변화에도 전통을 이어오는 모습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가에 온 문상객을 위해 상주는 반드시 음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행하는 오늘도 문상객 접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장례식장에서 나온 음식을 받아서도 육개장과 수육을 대접해야 하고, 모든 장례식장에는 접객실이 있다. 장례가 끝난 후에는 부고와 감사 편지를 꼭 쓰던 전통이 오늘날에도 이메일과 카카오톡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딱히 설명할 것도 없는 단순한 것이면서도 외형적 변화를 통해 내면적으로 그 문화적 전통을 이어오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제례의 경우, 오늘날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는 농경 사회처럼 기제사, 사시제 등의 정기적인 제사를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이 어렵다. 농경 사회에서는 모두가 경영자이므로 시간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는 명절에 제사를 행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의 제사들이 모두 통합되거나 사라지고 명절 차례만 남아있더라도 제사라는 형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제사의 통합 제사화, 봉사 대수의 축소 등 복잡한 과정을 축소하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코로나19 이후로는 인터넷 제사나 사이버 묘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천주교, 기독교 집안에서는 간단하게 가족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추석과 설이 되면 가족들을 만나고 성묘를 하기 위해 교통 대란을 무릅쓰고 귀성길에 오르는 모습은 여전히 현대인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제사 형식의 변화 현상은 오히려 제사라는 의례 자체를 지속하기 위한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나가며
유교 사상은 과거의 유물 혹은 전통일 뿐인 것 같았으나 실상은 현대 한국 사회의 윤리적 규범의 기저에서 여전히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일생의례를 통해 외형을 바꾸면서도 그 내면적인 의미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유교 사상이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지속적인 현대적 변화와 재해석이 필요하다. 일례로 상주는 맏아들이 해야 하고 여자는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식의 성 불평등한 전통은 걷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부장적 혈연가족으로 한정된 유교의 전통적 윤리는 현대 가족관계의 변동에 대응하여 사실혼, 비혼 동거 가족 등 다양한 개인과 가족에게도 가족의 이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성을 존중하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교적 의례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교의 한계로 지적 받았던 공동체 지향성은 오히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이 가족적 친애로 존중되는 공동체를 유교를 통해 현대 사회에 이룩할 수 있다면 고립된 오늘날의 개인에게 대안을 제공하며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윤리 체계를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