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Yang EJ (양이제)]
이전 글에서 저는 '세계-인간-사건'이라는 순서에 주목했습니다. 세계-인간-사건, '세계가 인간을 선행하고, 인간이 사건을 선행한다'는 명제를 참이라 가정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제 나름의 논리를 쌓는 여정이었지요. '세계'란 집합체입니다. 복수인 세계는 당연히 하나의 개인인 인간을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생명이 살지 않는 세계 또한 세계인데요. 설령 그곳에 인간이 없을지라도 수많은 원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메마른 무인 행성은 원자들의 세계인 셈이지요. 그러니 세계는 인간이 살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복수의 개념입니다. '사건' 역시 세계와 마찬가지로 복수입니다. 사건은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앞서 저는 '돌에 걸려 넘어지다', '홀로 넘어지다', '떨어지다'란 사건을 통해 이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세계보다 크기가 작으니, 세계를 선행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명제에서 인간만이 이러한 대소 관계를 무시합니다. 개인인 인간이 두 가지 이상을 뜻하는 사건을 선행합니다. 어째서일까요? 여기까지가 저번 글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전을 뒤적여 봅니다. '사건'이란 도대체 뭔가요? 가장 처음으로 나온 뜻풀이를 읽어보겠습니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즉 사전이 정의하는 사건의 본질은 의외성입니다.
의외성을 위해 먼저 필요한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고(思考)'입니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 뜻밖이라고 느끼기 위해선, 전혀 뜻밖이지 않은 기존의 의견이 먼저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한편, 사고·사유, 창작, 발명 등은 이른바 '고등 능력'으로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라 일컬어지지요. 따라서 사건은 의외성을 판단하고 기존의 의견을 정립시킬 사고 능력을 갖춘 존재, 즉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 저번 글에서 제가 두 가지 이상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사건이라고 말했던가요? 조금 더 분명하게 정의해 봅시다. '인간'과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 곧 사건이라고요.
이쯤에서 우리는 상상 속의 신문을 한번 펼쳐 봅시다. 신문 1면은 허리케인으로 한 집의 지붕이 날아갔으나, 다행히 집은 주인 없는 폐가였노라 보도합니다. 이 기사가 말하는 사건은 '허리케인이 빈집의 지붕을 날리다'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사건의 어디에도 인간이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