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당신과 함께 '쓰는 기분'을 나누고 싶었어요

조수빈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4.10.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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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가워요! 저희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여름을 좋아한다. 둘째, 서울극장이 문을 닫기 직전에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프란시스하」라는 영화를 봤다. 셋째, 10km 마라톤에 나간 경험이 있다. (…)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이 당돌하고도 사교적인 사람 같은 인사말은 ‘Project 당신’을 모집할 때 내가 쓴 문장이다. 냅다 세가지 공통점부터 꼽으며 혹여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에 상대방이 당황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당신의 글을 읽을수록 글 속에서 저를 발견했고, 당신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평소보다 오바해서 글을 작성(하고 후회)하고야 말았다.

 

감사하게도 선뜻 제안에 응해 주신 수빈 님 덕에 초가을의 어느 날, 망원역의 한 카페에서 우리는 만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름을 좋아하신다는 글을 많이 읽었어요.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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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조수빈 에디터 (이하 모든 사진 동일)

 

 

이번 여름은 그동안 제가 좋아하던 여름과는 조금 달랐어요. 원래는 더워도 더위를 먹어가면서 외출을 감행할 정도로 여름을 좋아하는데, 올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문을 열기가 무서운 거예요. 저는 습도가 높은 더위를 힘들어하거든요. 더위에 체력적으로 지치니까 올해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조금 벅차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제는 날씨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어요. 전체적으로 평범한 일상을 일관된 방식으로 맞이하며 지난 여름과는 다르게 보냈던 것 같아요.

 

여름에 본 인상적인 풍경이 있으신가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런데 한 구간에 진입하자 갑자기 비가 엄청 쏟아지는 거예요. 우산을 챙겨서 나와야 했나? 하면서 걱정하고 있는데, 조금 가다 보니 바로 비가 그치더라고요.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그곳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제가 비구름 안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 거죠. 이런 현상을 한국에서 목격하는 것이 흔한 일인가? 생각했어요. 재작년까지도 기후와 관련된 글을 쓰는 일을 하기도 했고, 평소 기후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인상 깊은 경험이었어요.

 

<비행기의 그림자를 본 적 있나요>라는 글에서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아름다운 것들' (정세랑 작가의 해시태그)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수빈님이 최근에 발견한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캠코더를 사서 영상을 찍으러 돌아다녔어요. 그러니까 그런 풍경들이 조금 더 잘 보이더라고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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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 풍경은 이런 거예요. 어느 날, 제가 버스를 탔는데 오리 인형 하나가 떨어져 있었어요. 그쪽에만 햇빛이 쫙 비치는데, 오리가 일광욕하듯이 딱 엎드려서 누워있는 거예요. 그런데 버스에 탄 사람들이 그 오리 인형을 보고 다 넘어 다니더라고요. 버리지도, 밟지도 않고.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았어요.

 

캠코더를 들고 다니신다고요. 캐롤의 테레즈, 윤희에게의 새봄, 클로저의 안나... 좋아하는 영화에 카메라를 든 여자들이 등장한다고 하신 글을 읽었어요. 좋아하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특징 등에 공통점이 있나요?

 

카메라 파인더 너머로 물체를 보려면 시선을 고정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시선이 한곳에 모이게 되고요. 반면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파인더를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찍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눈빛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통 그런 여성들이 있는 영화에는 사소한 것에도 흔들리고 세상에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또 다른 여성 한 명이 등장하거든요. 그 둘이 소통하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서사에 끌렸던 것 같아요. 자칫하면 뻔하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기존에 남성 중심의 우정 이야기들은 너무 많잖아요. 뻔하다 해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 자체로 저는 좋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딱히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막상 보고 나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영화들은 대부분 그런 영화들이었어요.

 

저희가 서울극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따로 본 「프란시스하」도 비슷한 영화였잖아요. <내 세계가 막을 내릴 때 나는 그런 얼굴을 했다> 리뷰를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성 수치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자꾸만 마음이 가는 캐릭터였어요.

 

맞아요. 사실 ‘공감성 수치’를 이야기할 때 주로 ‘수치’라는 단어에 포커싱이 되긴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공감’에 더욱 초점을 맞춰보고 싶긴 해요. 수치라는 감정은 누구나 해왔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사건들로 발생한 거니까, 그렇게 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을 보고 나면 제 안에 무언가 남는 것 같아요.

 

「프란시스하」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은데요. 글을 읽다가 “프란시스의 선택이 포기라고 느낀 적 없다”라는 문장을 읽었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수빈 님의 글을 읽으면서 ‘포기’나 ‘실패’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은 적이 많아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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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뜻이 두 개로 나뉘어요.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린다는 의미와 자기의 권리나 자격을 버린다는 의미, 이렇게 두 가지로요. 보통 포기라는 단어는 전자의 경우일 때 자주 쓰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프란시스의 포기는 좀 더 권리나 자격을 버리는 것에 가까운 행위를 앞두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예술을 떼어내서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거든요. 밀려나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끝까지 잡고 싶었던 자신의 정체성 같은 거랄까요…결국은 무용에서 자신이 ‘할 수 있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거니까 그 자체를 타협이나 포기로 보고 싶진 않았어요. 그게 포기나 실패로 연결해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 같기도 해요. 미디어에서 그런 메시지를 주게 되면 사람들은 계속 학습을 하니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글을 계속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소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요. <저는 하루살이로 살겠어요>라는 글에서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위로받았어요.

 

사실 실패는 수도 없이 하죠.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제 이야기를 하자면, 만약 똑같은 현장에 갔는데 다른 사람은 단독으로 쓰고 저는 못 썼어요. 그걸 저희는 속칭 ‘물 먹었다’고 하거든요. 그런 물먹는 상황이 매분, 매초 생기는 거예요. 거기에 일희일비를 해버리면 진짜 힘들거든요.

 

저는 일적으로는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더 많이 태우게 되고, 그것이 연료가 되어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방에 성장하는 경우는 많이 없잖아요. 꾸준함을 바탕으로 준비된 사람이 성장하는 건데, 모든 실패를 과하게 받아들이면 힘들죠. 그래서 실패했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지만 자기 자신을 마음이 다칠 만큼 몰아세울 건 없다는 의미로 그 글을 썼어요.

 

저는 실패를 했을 당시에는 ‘내가 이것밖에 안 돼?’라는 마음 때문에 가장 크게 상처 입은 것 같아요. 또,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에 대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큰 고민이었어요. 하루살이처럼 살겠다는 것도, 그날 있었던 일은 그날 정리하고 그 일들이 앞으로의 나의 선택에 있어 너무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문장이에요.

 

해당 글을 쓰게 된 계기에는 평소 제 삶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어요. 저는 과거에 미련이 많은 편이거든요. 항상 끄집어내서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서 이불 차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러면 지금 집중할 수 없겠더라고요. 현재를 놓치게 되니까. 일기장을 사면 늘 맨 앞에는 연연하지 말자는 말을 써 놓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은 덜 연연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려면 현재에 뭘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 역시 힘들지만 현재 무엇을 만들면 어쨌든 성과가 생기잖아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 현재에 집중하려고 애쓰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하는 편이에요.

 

윗글 속에 등장하는, 수빈 님의 실패를 납득 가능하게 안아주는 곳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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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정해져 있어요. <청춘시대>와 <런온>이라는 드라마예요.

 

취업 준비생일 때 <청춘시대>를 봤어요. 취업 준비할 때가 사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때잖아요.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이직을 시도할 때의 실패와, 첫 직장을 갖기 위한 과정에서의 실패는 충격의 강도가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게 수능보다 취업 준비예요. 수능은 점수가 나오잖아요. 내가 왜 떨어지는지 알아요. 그런데 취업은 이유를 모르거든요. 계속 나 자신을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에요.

 

그러다 보면 내 실패 때문에 울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울면 진짜 진 것 같으니까. 그럴 때 이미 내용을 다 아는 <청춘시대>의 한 에피소드를 봐요. 한예리 배우가 맡은 역할인데,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다가 어느 날 도둑으로 몰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당하고 참다못해 자기한테 사과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이에요. 거기서 너무 처절하게 울거든요. 그 울음은 단지 도둑으로 몰렸다는 서러움만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회 초년생이 쌓인 게 모조리 폭발하는 장면이어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 그 장면에서 울 수밖에 없어요.

 

<런온> 역시 부조리함에 목소리를 내는 여주인공이 등장해요. 저는 그렇게 못하고, 그 뒷감당을 할 자신도 없지만, 그런 장면을 보면서 해소를 하는 거죠. 최근에는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많아졌지만 그 전달 방식에서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요. 두 작품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위로가 됐던 거 같아요.

 

최근에는 일본 드라마인데 밥 친구처럼 보고 있는 게 있어요. <스이카>라고, 수박이라는 뜻이거든요. 약간 청춘시대와 비슷한 포맷이에요. 어른 버전 청춘시대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예전에는 일본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일본 드라마는 큰 갈등이 있기보다는 서사가 잔잔하게 흘러가고 소소한 깨달음을 얻는 쪽에 가깝잖아요. 한국 드라마는 뭐든 쟁취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걸 다 그만두고 시골로 돌아가서 사는 종류의 작품들이 괜히 팔자 좋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요즘은 제가 살아갈 수 없는 세계관으로 도망칠 수 있어서, 삶이 복잡할 때 환기하는 느낌으로 보고 있어요.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사회 초년생인 자신을 견디는 법이 있을까요? 혹은 수빈 님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알았으면 좋았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견디는 법은 시간이 지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할 건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늦바람이라는 말이 정말 무서운 거거든요. 외압으로 인해서, 용기가 없어서 못 했던 일들은 꼭 나중에 탈이 나요. 사람들이 하는 건 다 해보되 휩쓸리지 않으며 견뎌야죠.

 

그리고 저는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말하거든요. 너희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저는 취업을 바로 한 편인데, 많이 후회해요. 시작이 늦어지는 건 상관없는데, 중간에 경력이 끊어지면 그 끊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건 그것보다 하고싶은 일이 있거나 힘들어서 도피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여유가 된다면 학생과 직장인 사이에 있는 시간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에는 6개월 먼저 취업한 친구, 1년 먼저 취업한 친구들 다 앞서간 것처럼 보이지만, 3~5년 차인 제 친구들도 아직 다 사원이에요. 그런데 또래 집단 내에서의 속도 차이는 굉장히 크게 느껴지니까, 저 역시 돌아가도 이 말이 안 들릴 것 같긴 해요.

 

아 그리고, 전 기자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해요. (웃음) 저는 사실 뭘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들 똑똑하신 분들이잖아요. 기왕이면 다른 쪽에서 힘을 내주시면 좋겠어요. 만약 하게 된다면 기대와는 매우 다를 것이기 때문에, 왜 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보고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 다른 직군도 마찬가지이긴 할 거예요. 하지만 기자는 소비가 많이 됐던 직군이고 영화나 드라마도 많잖아요. 실제로 그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곳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저희도 재능 있고 멋진 후배들 오면 좋긴 하죠.

 

이번엔 색다른 질문을 가져왔어요. 세상에 없어져야 할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감정적인 부분에서 ‘시기’라는 게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질투와는 또 다른 감정인 것 같아요.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있던 7가지 중 하나이기도 하잖아요. 적당한 질투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도약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극을 받았다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 감정이 사람을 참 못나게 만들거든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게 하기도 하고. 그런 감정이 없어진다면 참 좋을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일본 깻잎이요. 너무 싫어. 맛이 없는데 일본 가서 초밥 먹으면 항상 그 사이에 껴 있어요. 꼭 지뢰처럼. (웃음)

 

그리고 마지막은 가정 폭력범이요. 인간이 좀 사라져야 지구가 편안하겠지만, 그렇다고 타노스를 할 순 없잖아요. (웃음) 인간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가정 폭력범인 것 같아요. 그럼 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것 같아요.

 

그럼 반대로, 세상이 망할 때까지 존재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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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개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가족이랑 노트 한 권, 그리고 펜 하나. 이렇게 선택할게요. 핸드폰은 안 켜지면 끝이니까. 가족은 같이 있으면 죽어도 괜찮을 것 같고.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수빈 님의 글을 읽으면 하고 계신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주실 수 있나요?

 

현재 산업부 소속 기자로 일을 하고 있고 기업들을 출입하면서 기업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와 직업이 아닌 글쓰기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주인공이 누구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직업으로 쓰는 글쓰기는 사실 저라는 캐릭터가 드러나지는 않거든요. 제 글을 읽었어도 기사를 떠올리지, 저를 떠올리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에세이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에 관한 이야기니까, 주인공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기사는 최대한 드라이하고 깔끔한 문체로 맨 앞의 세 문장과 팩트 기반으로 구성해야 하지만 에세이는 나의 경험과 감정을 담는다는 차이도 있고요. 쓰는 과정도 달라요. 기사는 취재원이 주는 소스가 아니면 못 쓰기도 해요. 하지만 에세이는 그냥 내 이야기를 소재로 쓴다는 차이점이 있죠.

 

평소 글감을 찾을 때와 취재를 할 때, 방식의 차이가 있을까요?

 

‘사소한 것을 그냥 넘기면 안 된다.’라는 공통적인 포인트는 있는 것 같아요. 기자를 준비할 때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흘려들었거든요. 그런데 일하다 보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기자들도 작업 방식은 다 다르지만, 상호작용에 능하고 호기심을 기반으로 소스를 찾아낼 수 있어야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취재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동기들에게 카톡 해요. "대신 좀 써줘라." 하면서. (웃음) 어쨌든 이것도 마감이 있기 때문에 일단 해야 하는 일이니까, 안 풀리면 그냥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하면서 넘겨요. 빨리 마감하고 다음 날 발제 거리 찾아요.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제게 더 이롭더라고요.

 

좋은 질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직업적으로 좋은 질문이라고 하면, 내가 이 질문을 함으로써 모두가 이것을 리드에 쓰는 것이요. 그러니까 업계에서 속칭 ‘야마’라고 부르는, 기사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질문을 내가 한다.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일잘러’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실은 글 속에서 느껴지는 일에 대한 고뇌에 ‘일잘러’이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민을 많이 한다는 건 그만큼 잘하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저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꼽고 싶어요. 저는 신입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보고였거든요. 보고 체계가 너무 많아요. 여기도 보고해야 하고 저기도 보고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진짜로 벙쪄서 넋이 나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일에 스트레스 안 받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야 하는 영역이기도 해요. 생각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니까요. 저도 처음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던 것들을 지금은 그냥 ‘조졌네.’ 하고 넘어가기도 하거든요. (웃음)

 

인상 깊었던 취재 경험이나 취재원/인터뷰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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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환경에 관련된 기사를 작성할 때 직접 르포를 기획해서 충주에 내려간 적이 있어요. 당시 충주에 과수화상병이 퍼졌는데 그게 원래는 한국에 없던 병이에요. 나무들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오그라들다가 말라 죽는 병인데, 고온다습한 날씨가 원인으로 한몫했죠. 밭에서 나무 하나만 그 병에 걸려도 3년 동안 과수를 못 해요. 그런데 정부 지원금이 줄고 있는 거예요.

 

처음 취재하러 갔을 때는 사실 두려웠어요. 사실 농촌이 어느 정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보니 인터뷰를 거절하실 때도 많거든요. 걱정과 달리, 충주시의 피해자분들이 협조적으로 인터뷰하며 이 사건을 세상에 많이 알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제가 이 피해가 이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서울은 모를 것이다. 앞으로도 서울엔 이런 뉴스가 보도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신 부분이에요. 당시 제가 기사를 쓸 때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것이 충주의 지역지였어요. 해당 사건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내용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는데, 서울에서는 이 이야기가 조금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이후에 IPCC(기후 변화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조직) 연구원님께 “서울은 모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여쭤봤는데, 이렇게 답하셨어요. 아마 기후 위기가 극한으로 가도 서울은 멀쩡할 것이라고.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은 농어촌 산업으로 생활을 영위하지 않아서 인구 대부분이 체감하지 못할 것이라고요. 그러면서 “기후 위기는 가장 취약한 곳부터 닥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들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다



언어를 뜯어보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취향, 습관, 낭만, 심지어 속초를 다녀오며 속초의 순우리말 이름이 '풀 묶음'이라는 것까지도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탐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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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전공이 영어학이에요. 영어학은 국어 배울 때 구개음화나 음운 배우는 것처럼 영어를 그렇게 뜯어보는 학문이거든요. 막상 다닐 때는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체화되어서인지 어떤 언어를 보면 그 출처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찾아보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또, 글을 마무리하기 어려울 때면 힌트를 얻기 위해 의미를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러면 대부분 엮어볼 만한 뜻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글의 아이덴티티가 좀 생긴 느낌이에요.

 

세상을 해상도 높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단어라는 것이 의미가 함축된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이것저것 뜯어볼 여지가 많은 단어들이 있는 사전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사전 결을 따라 만지는 버릇도 있었어요.

 

제목을 선정하는 센스가 뛰어나다고 느꼈어요. 기자로 일하고 계시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어떤 관점으로 제목을 선택하는지 궁금해요.

 

제목이 가장 중요하죠. 사실 제목이 당기지 않으면 안 읽잖아요. 제목 보고 들어왔으면 절반은 된 거죠. 그래서 제목은 제일 먼저 쓰거나 마지막까지 못 쓰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제목을 먼저 쓰는 경우는 이럴 때죠. 보통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어떤 메모 해둔 것부터 출발하거나, 쓰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그런 게 하나로 묶일 정도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그런 내용의 중심이 되는 문장 하나를 꺼내요. 그래서 그거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럼 이제 그게 제목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못 쓸 때는 그냥 쓰고 싶은 구절이 있어요. 난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이 글을 만들고 싶어. 이런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제목을 뽑기 어렵죠.

 

조각보처럼 여러 가지 내용이 합쳐져 있는 경우도 제목을 뽑기 어렵지만, 어쨌든 제목이란 매력이 있어야 하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이어야 하잖아요. 그럴 땐 그냥 제일 마음에 드는 문장, 보통 제일 초반이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문장이죠. 거기서 뽑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은 후킹이 되는 거죠. 일단 좀 자극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기자로서 쓰는 기사의 제목과 개인적으로 쓰는 에세이의 제목을 정할 때, 선정 방식의 차이가 있을까요?

 

이건 직업병인 것 같은데, 기사 제목은 기사에 쓴 내용을 전부 아우르는 내용이잖아요. 약간의 공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어떤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얘기라면 인용구 안에 무조건 실제로 그 사람이 했던 말이 들어가야 한다, 뭐 이런 식이죠. 그 습관이 에세이에도 일부 스며든 거 같기는 해요. 에세이 쓸 때도 본문에 있는 문장을 가져오니까요.

 

글을 쓸 때 루틴이 있으세요?

 

개요는 따로 짜지 않고 쓰고 싶은 문장을 쓰고 그에 맞는 경험을 꺼내는 편이에요. 그리고 핸드폰이 아니라 무조건 PC로 써야 해요. 글은 전부 메모장에 써요. 사실 일을 할 때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지만 제 이야기를 할 때는 보통 집을 선택하는 거 같아요. 밖은 오히려 주의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서 온전하게 저 자신에게 집중하긴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수빈 님의 글을 읽으면 글 속에서 저와 같은 모습을 목격하게 돼요. 이전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더라고요.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애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어떻게 읽힐지를 고려하며 쓰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럼 글이 흐트러지니까요. 일단 쓰고, 퇴고 과정에서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그 부분을 빼는 편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어떤 글에 공감하거나 끌린다고 판단하는 요소가 키워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보고 떠올리는 각자의 경험은 다르겠지만 키워드가 같다면 끌린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친구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영화를 함께 봤는데, 고맙게도 제 글을 보고 자신이 느낀 감정이 확 정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글을 쓸 때 키워드별로, 카테고리별로 감정을 구분해서 쓰려고 노력한 점이 좋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또, 그렇게 키워드별로 단락을 나눠서 부제를 달기 시작하니 더 많이 읽히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한 번 더 짚어주는 글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런 정리된 방식으로 쓰려고 해요.

 

에세이를 쓸 때, 꽤 사적인 이야기라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읽고 싶을까? 라는 의문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는데요, 수빈 님은 이전 인터뷰에서 너무 사적인 얘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중간 지점을 계속 찾고 독자층을 타겟팅 하기도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적정선을 어떻게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사는 타겟이 주로 해당 기업에 관심 있는 대중이나 주주들이라 분명한 편인데,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플랫폼에서 타겟층을 정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누가 읽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한다는 의미인가요?

 

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지만, 상대가 내 글을 읽을 때 본인의 경험처럼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대중적으로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다른 것 같아요. 제 연령대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포션은 한정적일 거예요. 저는 그 소수의 사람들만 공감해 줘도 글의 목적은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너무 사적이라 남들이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가 100%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와 한 끗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쓰고 싶으면 써요. 쓸지 말지 고민이 될 때 선택의 기준은 ‘이걸 쓰는 게 저 자신에게 상처가 되느냐’에요. 우선 1번 독자인 저를 만족시켜야 하는 글이니까요.

 

추구하는 글쓰기의 방향이 있을까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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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써본 사람만이 아는 거죠. 이렇게 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웃음) 어쨌든 글이 많이 소비되려면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데 모든 사람을 한 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동진 평론가의 기생충 한 줄 평 유명하잖아요.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그런데 그건 한 줄 평인 경우이고, 평소 이동진 평론가님 다른 글을 보면 정말 쉽게 잘 쓰시거든요. 그런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도 쉽게 풀어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요.

 

덧붙여, 저는 제 글이 누구를 소외시키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착한 척하는 글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너무 둥글둥글 다 담은 글은 매력이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상적인 사람으로 비치고 싶진 않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매번 다른 것 같아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저 사람, 그거 잘하지.’ 하는 분명한 영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 같아요. 흔히 추구미라고 하잖아요. 제 추구미는 사실 그런 거거든요. 세상살이에 관심 없어 보이고, 요가 열심히 할 것 같고. (웃음)

 

하지만 저는 요가도 못하고 세상살이에 관심이 너무 많아요. 웃기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 확실히 잘난 구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분야에서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제 추구미는 사실 웃기는 사람이 되는 거거든요. 오늘 정말 웃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다. 웃수저가 되는 것이 추구미지만 진지하기 그지없는 인터뷰어의 질문은, 웃기는 것이 딱히 추구미는 아니지만 웃음을 주는 것에 소질이 있는 인터뷰이 덕에 나름 유쾌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수빈 님이 즐겨 본다는 작품들에서 나는 수빈 님과 비슷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의 틀에 맞춰 자기 자신을 수없이 제련하면서도 자기만의 섬세한 결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은, 하루치의 슬픔에 딱 그만큼의 농담을 지어낼 줄 안다. 유쾌함과 진중함 사이를 오가며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런 ‘당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 인터뷰를 끝으로 약 4년 간의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종료하게 됐다.

 

아트인사이트에서 100편에 가까운 글을 쓰며 적지 않은 수의 글벗들을 만났다. 나는 이들을 ‘글빚을 나눈 글벗’이라고 부른다. 써야 할 (밀린) 글 이야기를 하며 수심에 잠긴 낯빛을 보이다 가도, ‘글쓰기’라는 단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진심을 꺼내놓고야 마는, 내게 연루된 내일을 내 힘으로 찾아 나설 것이라는 결심이 내포된 눈빛들을 나는 좋아했다. 그것에 용기를 얻어 천천히 '쓰는 사람’으로 나를 정체화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게 되는 날엔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이라는 산문의 서문을 부적처럼 써 드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혼자 무언가 끼적이는 일. 속으로 두런두런 혼잣말하는 일. 

익숙하던 것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일. 

뻔하게 말고,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일. 

슬프다고 하지 않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하고 말하는 일. 

힘들다고 하지 않고 "이번 삶은 천국 가는 길 겪는 긴 멀미인가요"하고 말하는 일. 

등을 둥글게 말고 상체를 숙여, 무언가를 품는 일. 

품은 채로 쓰는 일. 

쓰는 사람에게만 귀한 일. 

다른 사람이 보면 "뭐야, 이게?"하고,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쓸모가 발견되지 않는 일. 

우산을 쓰고도 하염없이 젖는 일. 

마음이 밖을 향해 나설 때, 어제가 매듭처럼 따라와 묶이는 일.

 

박연준, <쓰는 기분>

 

 

수빈 님을 포함하여 그동안 글쓰기로 만난 모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과 쓰는 기분을 나누게 되어 기뻐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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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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