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일 다시 무너지더라도 ‘지금’을 함께한다는 것 – 델타 보이즈 [공연]

노래나 부를까
글 입력 2024.10.2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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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델타 보이즈>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쉽게도 무너지는 세상 밖의 우리들이지만,

신경쓰지마 넌 슬퍼하지마

이 시간만은 우리거야.


노래나 부를까, 가사는 잘 몰라도

다 같은 마음이잖아.

춤이나 춰볼까, 방법은 잘 몰라도

다 신경쓰지 않잖아.”  

 

- 나상현씨밴드 ‘노래나 부를까’ 가사 中


 

다른 예술보다 음악은 특히 더 ‘지금’이라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 같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지금’ 이 시간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만의 시간’이 된다.


이러한 면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델타 보이즈>는 이러한 연극의 현재성, 실시간성의 매력을 더 끌어내는 연출로 ‘델타보이즈’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여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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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각자의 개성만큼 개성 넘치는 과거를 가졌을 것 같은 ‘델타 보이즈’의 네 인물은 중창 대회를 계기로 모이게 된다. 처음부터 엄청난 열정과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했지만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으려 했던 ‘예건’은 남성 4중창 대회의 공고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일록’은 그런 친구 ‘예건’의 제안에 얼렁뚱땅 참여하게 된다. 오랫동안 가수에 대한 꿈을 간직해 온 ‘대용’은 예건이 일록의 이름으로 낸 멤버 모집 글을 보고 함께하게 되고, 대용은 친한 형인 ‘준세’의 부름에 함께하게 된다.


함께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그들은 생업에서 혹은 오랫동안 지속된 무기력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매형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일록, 음악을 포기하고 영어 강사로 일하고자 하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예건, 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을 이제야 펼쳐보려 하지만 실력도 상황도 녹록지 않은 대용, 생업과 가족을 뒤로할 수도 대용과 멀어질 수도 없어 갈팡질팡 하는 ‘준세’까지.


그들은 이루지 못한 것과 해내지 못한 것들이 산적해 어려워지기만 하는 삶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사중창 도전기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엉성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노래하며 조금씩 바뀌어 갔다.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은 일록이다. 일록은 오랜만에 무언가를 잘 해내고픈 마음을 갖게 된다. 매형의 공장에서 무심한 듯 무기력했던 초반부의 일록과 달리, 후반부의 일록은 사중창 대회에 마음을 쏟게 되고 더 잘해내고 싶어 속상해하고 화도 낸다. 하지만 일록을 포함한 네 사람 모두 무엇보다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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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면데면했던 네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속 이야기를 터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이가 되고, 드디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함께 만든 무대는 드라마틱했지만, 한 번의 무대만으로 그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함께한 ‘지금’은 ‘내일’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은 화려한 대회장의 무대가 아니라 자취방 옥상 위에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무대처럼, 뜻대로 되지 않고 조금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잣대로 그들의 노래를 평가하는 대회장의 무대보다는 그들만의 노력과 시간으로 꾸며낸 무대가 그들에게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노래 부르는 곳이 어디였든 같은 곳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만큼 그들은 참 멋지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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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도 매일이 반짝이고 화려하지는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하는 ‘지금’에서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연극 <델타 보이즈>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정성 들인 무대 연출과 열정 넘치는 배우 분들의 연기를 보며, 그들의 ‘지금’을 함께할 수 있어 참 기뻤다. 그리고 무대가 끝난 후 당장 마주해야 할 그들의 내일도 나의 내일도 조금은 더 나은 하루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당장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아 보여도, 그리고 먼 미래까지는 예견할 수는 없어도, 함께 채운 지금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는 것은 믿어 볼 만하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 앞의 큰 산이 아니라 신발 속의 작은 모래 알갱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나는 늘 이 말을 반대로 읽고 싶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 무너지지만, 또 아주 작은 것에 일어나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델타 보이즈의 이야기와 무대처럼 조금은 얼렁뚱땅해 보는 작은 우연과 그것에 기대 내딛어 본 작은 발걸음이 누군가에는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작은 희망이 되기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작은 표지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처럼 주문처럼 앞서 인용한 곡의 뒷 부분 가사를 놓아 둔다.


'세상은 언제나와 같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내일을 기다리게 된다는 건 너와 내가 있다는 걸까.'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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