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검색대에서 찾고 싶은 책을 검색하다가 '재고 없음'이라는 문구를 봤다. '아… 그냥 어제 살 걸'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다, 정말 없는지 궁금해 그 섹션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마치 모래사장에서 귀걸이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책장을 샅샅이 뒤지다, 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그러게요, 음악은 저에게 뭘까요…"
나는 음악인이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정작 음악이 나에게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좋다’라는 생각 하나로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음악과 함께 살아간다. 말을 배울 때 동요의 도움을 받았고,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CM송 덕분에 브랜드를 기억한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나오고, 지하철을 탈 때도 음악으로 방향을 구분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간단한 멜로디부터 악장이 있는 음악까지, 눈을 감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음악을 듣는다. 혹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약 80분 동안 축적된 음악 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음악은 '시간을 쌓는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베토벤을 쇼팽만큼 많이 쳐봤지만, 현재 자신이 표현하는 베토벤의 사운드는 자신이 상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30대가 되면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는 10년 동안 꾸준히 연주한 곡이 1년 동안 20번 연주한 것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곡에 대한 생각도 변한다고 이야기한다. “음악 해석은 ‘그때’보다 ‘지금’이 낫다고 믿기 때문에 저에게 시간은 중요해요.”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스토리텔링이 좋고 무대 매너도 훌륭해야만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말한다. 들었을 때 좋았던 음악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고, 기억에 남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연주라고 한다. 또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음악이란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끼고, 그 감정이 쌓여 표현된다고 말한다.
연주자에게 시간이 중요하듯, 청자에게도 음악은 시간을 축적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사진작가 윤광준은 이 책에서 취향의 깊이는 오직 시간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으며, 지름길은 없다고 강조한다. "취향은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시간과 돈, 고민을 통해 얻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죠. 특히 음악이라면 시간의 개념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 책에는 조성진, 손열음, 임동혁을 비롯해 백건우, 조수미, 박찬욱 등 총 7인의 클래식 음악인과 7인의 음악 관련 종사자들의 깊이 있는 담론이 담겨있다.
내가 음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였다. 피아노를 치는 것보단 동그라미를 채우는 재미로 다니던 나는 체르니 40번에 이르자 흥미를 잃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다니던 오빠의 학교 축제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을 듣고,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여러 악기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MP3를 사달라고 부탁했고, 그 이후로 이어폰은 내 귀에서 떨어질 날이 없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음악이라도 처량하게, 밝게, 담담하게 표현되는 것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내 이야기가 되었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음악이 대변해주었고, 옛날 음악을 들으며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미워하던 친구를 용서하게 되는 계기도 음악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음악은 시간을 담고 있다. 그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일 수도 있고, 살아갈 시간일 수도 있으며, 다른 이들이 살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에게 음악은 이정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음악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