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그는 '색면 추상'이라고 불리는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이다. 따라서 그가 남긴 다양한 작품들 중 커다란 캔버스를 서너 가지 색으로 꽉 채운 그림들이 가장 유명하다. 어느 때는 밝은색, 또 어느 때는 어두운색을 캔버스 전반에 걸쳐 넓게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색은 대개 사각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추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라,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추상이란 참으로 어려운 장르이다. 언제 보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해왔다.
따라서 마크 로스코를 탐구한 책에 자연히 호기심이 생겼다. 대표적인 추상 화가인 그를 이해하게 되면 추상화의 저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책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의 저자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마크 로스코의 친아들이다. 그는 심리학 박사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그림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로스코 예배당 이사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객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깊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전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강연을 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고작 6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하지만 피로 묶인 가족이자, 마크 로스코의 절대적 연구자로서의 지위를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마크 로스코라는 사람을 책 속에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책을 읽기 전, 나는 그를 그저 색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예술적 표현이 추상화의 형태를 띤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단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에게 추상은 인간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닿기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두뇌는 구체적인 대상 앞에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 방해 공작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추상화였을 뿐이었다. 그는 관객과 밀접하게 교감하고자 색을 선택했으며, 그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 보기를 바랐다. 이 사실을 알고 나자, 그의 그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Untitled (Black on Gray), 2016 ⓒ Kate Rothko Prizel & Chr
그의 유명한 색명 추상화 중 하나인 무제이다. 이 작품을 바라보면 굉장히 어두운 기분이 든다. 색은 단 2개이고, 전부 어두운 무채색이다. 그 밖에 보이는 것은 붓 자국 정도. 하단에 캔버스의 가로와 세로를 가로지르는 붓 자국이 보인다. 이 붓 자국 덕분에 그림은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문득 그림을 보게 되면, 이 그림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심호흡을 하고 조금 더 길게 그림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 순간 당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해 보자.
나의 감정을 공유해 보려 한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림에서 고요함이 느껴진다. 강물에 어두운 밤 하늘이 비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저 밤 하늘이 거치면 맑은 강물이 드러나고 그 안에 물고기가 살고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이 그림을 보고 우울과 좌절, 어두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침착함과 고요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림이 가지고 있는 밝은 이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상의 차이는 관객의 현재 심리 상태 및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다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순간, 나에게 필요한 멈춤의 정서를 끌어내었다. 더불어 나는 사물의 밝은 면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둠을 단지 어둠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이 그림에도 반영되었으리라 본다.
단지 색일 뿐인데, 이를 바라보는 감정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런 깨달음. 이것이 마크 로스코가 말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과 맞닿은 그림이 아닐까?
책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를 통해 그의 의도를 알게 되니, 그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아가 추상화와 조금은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번쯤 추상화 전시회를 방문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