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딱히 가려 듣는 편은 아니다. 사실 정확히는 확고한 취향을 논할 만큼 음악에 정통하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유럽의 오랜 밴드들이나 요즘 핫하다는 국내의 아티스트들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무릇 인간이라면 모두 본능적으로, 또 직관적으로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하다.
음악은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튼튼한 상자다. 내 마음을 담아내는 일에도, 남의 마음을 전해받는 일에도 이 상자는 더없이 유용하다. 누구든 상자를 열어보면 그 안에 담긴 것들에 쉽게 취하고, 그 상태에서 새겨진 감정들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건 아주 예전의 인류에서부터 내려온 특성이다. 태초의 시는 긴 이야기를 오랜 시간 기억하기 위해 그 위에 선율을 입히면서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맞다. 우리는 양말 한 짝을 찾을 때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존재가 아니던가.
건조한 문장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거치고 나면 더욱 짙고 생생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 특유의 호소력과 에너지를 뮤지컬만큼 매력적으로 활용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보든 가의 둘째 딸 리지, 현재 친부와 계모를 도끼로 수십 차례 찍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잠깐의 경악 뒤에 흘려보냈을지도 모르는 저 문장 한 줄을 붙잡고, 나는 지난 주말 내내 한껏 신나 있었다. '리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불어넣은, 바로 그 생명력 때문에!
리지, 해방을 노래하다
1892년, 타는 듯한 8월의 여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도시 폴 리버, 보든 가(家).
부유한 사업가이자 구두쇠로 소문난 앤드류와 그의 부인 에비가 집안에서 잔인하게 도끼로 살해되고, 보든 가의 둘째딸 리지가 친부와 계모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전국적인 관심 속에 세기의 재판이 열리고, 4명의 여인이 법정에 선다. 리지, 그녀의 언니 엠마, 이웃 친구 앨리스, 가정부 브리짓까지.
보든 가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들 간에는 어떤 비밀들이 있었는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들. 재판은 반전을 거듭해 나간다...
- 공식 시놉시스
19세기 미국에서 있었던 충격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여성 록 뮤지컬. 극의 소개만을 놓고 보면 조금은 의아한 조합일 수도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뮤지컬의 장점이라지만, 시간적 배경을 감안하면 일단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그런 단편적인 이미지가 록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이 몇 가지 있지 않은가. 해방의 음악, 강렬함, 샤우팅과 헤드뱅잉, 파격적인 아웃핏, 중지와 약지를 접어 만든 특유의 핸드사인과 함께 몸을 흔들거리는 팬들.... 긴 드레스를 입고 조신한 몸가짐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던 당시 사회의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하는 극에서, 그러한 록의 요소들을 활용하는 방식이 사실 쉽게 예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객 앞에 무려 세 번째로 서는 작품이다. 주변에서 '리지'에 대한 호평을 몇 번 들은 적도 있었던 데다, 탄탄한 연기력과 가창력을 갖춘 캐스팅 역시 묘한 신뢰감을 보태면서 꼭 한 번은 직접 관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막이 오르기를 기다렸고, 과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120분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른 장르가 아닌 하필 '록'으로 극을 풀어내야 했던 이유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하고 말았다.
일단 미제 사건으로 남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그 내막이 정말로 어떠했는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구두쇠인 아버지가 후처를 들였고, 딸들에게 대우가 박했다는 것 정도가 밝혀진 사실의 전부. 정황 증거를 제외하고는 사건의 범인도, 동기도 모두 미궁 속에 있다. 그렇기에 그 한 끗의 공백을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채우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면,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이 상상해서 내놓은 사건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리지가 아버지로부터 오랜 정서적,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랜 친구인 앨리스에게만 자신의 심정을 터놓으며 지옥같은 나날을 버텨낸다. 언니인 엠마와 가정부 브리짓도 은연 중에 리지의 상황을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 채 보든 가는 위태롭게 유지된다.
리지가 자신의 고통을 앨리스와 함께 나눌수록 둘의 관계는 점점 우정 이상으로 깊어져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리지가 정성껏 돌보던 새들을 모조리 목을 쳐 죽인다.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리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계모와 아버지를 차례로 살해한다. 유산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비웠다 돌아온 엠마, 그동안의 일을 알고 있는 브리짓, 리지의 친구이자 연인인 앨리스는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 리지의 살인을 방관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리지는 무혐의 처분과 함께 지금까지의 삶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해방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오랜 학대, 사회에서 용인받을 수 없는 리지와 앨리스와의 관계, 성(聖) 혹은 성(性)으로서만 존재하며 분노나 여타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입체적 존재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당시 여성의 삶, 그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어가는 리지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뮤지컬 '리지'다. 그러니 그 묘사의 방식으로 '록'만한 것이 있을까? 말마따나 록 하면 해방, 해방 하면 록 아닌가. 이보다 완벽한 조합은 없을 듯했다. 무대 뒤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밴드 사운드는 넘버와 어울려 극의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오랜 학대 속에서 불안정해진 심정을 토해내듯 노래하는 리지의 샤우팅, 절규하는 듯한 헤드뱅잉, 모든 것이 끝난 뒤 통쾌하게 비속어를 뱉는 모습에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다른 캐릭터들의 넘버도 마찬가지다. 플롯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은 만큼, 극을 채우는 것은 캐릭터들의 관계성과 감정선이다. 지긋지긋한 집안 사정에 이골이 난 채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않는 엠마, 자신의 이름따윈 잊힌 채 평생 '매기'로만 불리는 가정부의 삶을 청산하고 싶은 브리짓, 청교도적 윤리와 양심을 따르고 싶지만 리지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앨리스. 4명의 여인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욕망이 있는 인간이며, 그들은 그 선명한 존재감을 강렬한 록 넘버를 통해 노래하고 표현한다. 분노하고, 고뇌하고, 반항하고, 조소하는 여성들. 뚜렷한 감정과 욕망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여성 캐릭터들은 우리가 그토록 원해오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런 해방의 코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요소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의상이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대면한 캐릭터들은 점차 몸을 옥죄는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록스타처럼 새카만 옷을 입는다. 차례로 환복하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통쾌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들이 검정 옷을 입고 추모의 태도를 보이길 바라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 새카만 옷을 입고 새카만 욕망을 긍정하는 캐릭터들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세상의 은근한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를 누르고 감춰온 채 희미하게 존재해왔을 모든 이들을 대신해 세상에 'What the!'를 외쳐주는 여인들. 속 시원한 넘버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 세상에 고함을 지르고 싶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리지'는 그 부글거림까지도 예상한 듯 놓치지 않았다. 현장 연주를 통해 넘버 내내 록 장르 특유의 생동감을 적극 활용할 뿐만 아니라,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이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한 것이다. '3막'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공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관극 뒤 여운이 남아 예전 시즌들의 커튼콜 영상을 찾아봤는데, 현장에서 직접 느낀 에너지가 반의 반도 담기지 않아 아쉬울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가봐야 안다'.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목청껏 가사를 내지르며 함께 호흡하는 시간은 더없이 귀중한 경험이었다.
파격적인 스토리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캐릭터성을 적극 반영한 의상, 현장감 가득한 세션 사운드, 모두와 함께 호흡하는 순간의 열기까지. 극의 요소요소들이 맞물리며 처음의 궁금증은 완벽히 해소되고, 온갖 감정의 격동이 휩쓸고 간 무대 위에는 후련함만이 남았다. 그날 공연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던 건, 아마 단순한 착각은 아니었을 테다. 막이 내린 뒤 무대 중앙에 꽂혀 있던 도끼 한 자루. 나 역시 그 한 자루를 마음 속에 품은 채 경쾌하게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