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는 베를린의 문화의 가장 기본인 예술을 탐방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명한 필하모닉과 예상치 못했던 국립회화관을 다녀올 수 있어 흥미로웠다. 총 5일간 다양한 역사적 예술적, 문화적 공간에 다녀왔는데, 다음에는 역사적 공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앞에서 소개했던 예술적 공간 두 곳에 이어 3일 차부터는 역사적인 공간에 다녀왔다. 바로 독일이 분단되었던 시기의 역사적 장소와 유대인 학살의 안타까움을 담아둔 장소들이다. 나는 앞서 말했지만 독일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작년 전공수업과 교양수업 세 과목에서 우연하게 전부 독일 문학과 유대인 학살을 접하게 되었고 다양한 영화와 도서, 작품들을 배우며 베를린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장벽, 형제의 키스,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포츠담 광장에 남겨진 베를린 장벽, 그리고 유대인 박물관을 다녀왔다.
동독과 서독이 나뉘었을 때, 베를린 장벽이 놓였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 동독과 서독을 지날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은 통일이 되고 나서 사라졌지만 아직 역사적인 장소나 남겨진 장벽 조각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형제의 키스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이 그라피티를 그리곤 했는데 현대에도 재해석한 그라피티가 많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그라피티가 형제의 키스라고 한다.
독일은 동독과 서독을 기준으로 동네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도 한데, 그라피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왔을 때, 동네가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통일 후 생활 수준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세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 같은 외국인조차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한국 역시 분단국가로서 통일이 되었을 때의 방향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미리 고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앞선 걱정을 베를린에서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 박물관에 다녀왔다. 내가 가장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 이후 자국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해 수많은 유대인 박물관과 유대인 학살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베를린에 조성해 두었다. 유대인 박물관은 몸소 공포에 떨던 유대인들의 마음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박물관인데, 다양한 시청각적 자료들이 많았고 어두운 방과 기울어진 계단, 아주 높게 뻗어있는 철 조형물들이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전시되어 있어 유대인들이 느꼈을 막막함을 잘 표현해 둔 곳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낙엽’이라는 작품명의 장소인데, 철로 된 아주 무거운 얼굴 모양의 조각들이 바닥에 뿌려져 있고 관람객들을 그곳을 천천히 밟아보며 철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기도, 비명소리 같기도 하다.
작품의 해석을 찾아보니 그 얼굴은 유대인들의 절규를 담았고, 철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를 유대인들의 아픔을 표현한 소리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유대인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박물관 곳곳에 배치되었고, 시설이 아주 쾌적했다. 하지만, 모든 공간이 미로처럼 찾아가기 어려웠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고, 숨겨져 있었다. 이 역시 유대인들의 깜깜한 미래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가벼운 추측과 함께 박물관을 관람했다.
베를린은 참 예술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이자 역사적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삭막한 도시이다. 그 두 가지의 감정이 도시에 아주 녹아들어 있어 신기했다. 낭만과 열정이 가득한 프랑스 파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는 전혀 다른 무채색의 도시를 경험한 것 같아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유럽의 전형적인 건축물들과는 다르게 정사각형, 직사각형처럼 정형화된 건물 양식에도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그것마저 독일 특히 베를린다움에 도시 전체가 역사와 문화로 녹아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흑과 백을 보는듯한 도시 베를린의 문화탐방 여행은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