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세상이 무너져도 네 세상만큼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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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에 개봉했던 영화 <소년시절의 너>가 지난달 말, 극장 재개봉을 시작했다.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재개봉을 한 지 두 달 만이다.
평소 로맨스, 멜로 장르는 드라마로든, 영화로든 잘 보지 않던(달달한 노래마저도 듣지 않는) 내가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리라’하고 다짐했다. “덕통사고”라는 표현이 있듯이 이 영화에 꽂히는 데에 큰 이유는 없었다. 우연히 접했던 예고편 속 두 주인공의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 두 주인공에게 어떤 큰 시련이 닥칠 것 같다는 것 두 가지가 그 영화에 꽂히게 했다. 처음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볼 시기를 놓쳐 정말 아쉬웠는데, 이번에 모든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재개봉 첫 주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다.
되풀이되는 폭력의 굴레에서 발버둥 치다
영화는 대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여학생 ‘첸니엔’은 같은 반의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배달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후 샤오디에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고 첸니엔은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고, 교실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공부하고 있던 첸니엔이 상황을 살피러 나간 뒤 마주한 것은 후 샤오디에의 시신이었다. 첸니엔은 눈물을 머금고 후 샤오디에의 시신에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는데, 이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후 샤오디에는 사실 ‘웨이 라이’를 비롯한 동급생 세 명에게 심한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첸니엔은 이를 알고 있었으나 다른 학생들처럼 방관했다. 대입을 앞둔 중요한 시기라는 핑계로 양심을 억지로 짓누르며 평소와 다름없이 이어폰을 꽂고 공부에만 몰두했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샤오디에에게 첸니엔이 덮어준 겉옷은 방관에 뒤따른 죄책감이었을 것.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웨이 라이의 다음 타겟이 될 기폭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폭력의 화살은 첸니엔에게도 날아가 꽂히게 되었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보기 힘든 폭력이 이어졌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첸니엔은 결국 ‘양아치’인 ‘샤오 베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두 인물이 만나게 된 계기가 참 인상적인데, 첸니엔이 하교하던 중 길거리에서 한 양아치 무리에게 무자비하게 맞고 있던 샤오 베이를 보게 된 것이 그 첫 만남이었다. 지나가면서 경찰에 신고하던 첸니엔을 무리 중 한 명이 발견해 샤오 베이 앞에 끌고 가 “여자 친구냐”며 조롱한 것. 후 샤오디에를 떠나보낸 뒤 첸니엔은 샤오 베이의 피해를 방관하지 않았고, 이후 샤오 베이 역시 폭력으로부터 첸니엔을 지켜주려 했다. 끊임없는 폭력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같이 눈물짓게 만드는 연기력
이 영화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아닐까 싶다.
웨이 라이를 연기한 ‘주 이’ 배우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첸니엔을 괴롭히는 가해자 역할을 잘 소화해 주었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당돌한 눈빛은 서늘하기까지 했다. ‘윤방’ 배우가 보여준 정 형사는 두 주인공을 조금이나마 더 옳은 길로 향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캐릭터였다. (물론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형사로서의 갈등, 신념이 전달되는 진심 어린 연기가 돋보였다.
그러나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도 주동우 배우와 이양천새 배우의 연기는 더 말할 것 없이 완벽했다.
주동우 배우는 첸니엔과 완벽히 동화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영화에서 눈물 연기를 정말 많이 보여주었는데, 연기마다 매번 다른 슬픔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엄마와 통화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흘리는 눈물, 샤오 베이와 면회하며 흘리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담은 눈물, 정 형사에게 분노하고 하소연하며 흘리는 눈물 등… 감정 소모가 심한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양천새 배우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한 것이었다고 한다. 첸니엔만큼 감정 소모가 심한 장면이 많았으나,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온 감정을 쏟아부어 연기하느라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근육이 다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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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 둘의 관계를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대신해 표현할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어둡고 슬픈 내면의 유사성에 이끌려 서로 강하게 의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랑보다 더욱 묵직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샤오 베이가 첸니엔을 위해 했던 행동들은 가족조차도 하기 힘든 크나큰 희생이었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인생, 삶을 걸 때 당사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선택을 결심하는 것일까? 샤오 베이는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각오를,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해왔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대입이 곧 성공이라는 광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뜨거운 입시 열기 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공부에 몰두하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몰두하여 볼 수 있었다.
이번 재개봉을 맞아 특별히 노래 한 곡이 리메이크되었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영상을 첨부한다.
[김지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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