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설의 첫 줄은 곧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음악]

세계의 여운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글 입력 2024.08.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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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와 문화예술에 있어서 몰입감은 꽤나 중요한 요소, 어쩌면 제일 중요한 요소다. 그럼 소비자의 몰입을 돕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현장감, 생생함, 이런 것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 말이다. 사실 단순하게 따졌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콘텐츠의 세계 속에 직접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커다란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놀이공원이나 공연장이 제일 대표적이다.


백문이불여일견. 아무리 짧은 순간이더라도 뮤지컬이나 콘서트 같은 무대를 볼 때 우리는 그 세계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흠뻑 빠져든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해도, 전시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선 이머시브 뮤지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이 내 집 내 방까지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리적 공간을 장악할 수 없다면 가상으로 그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VR 게임이나 가상 현실을 이용한 콘텐츠들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가 최상의 환경을 가질 수는 없는 법. 무대라고는 종이 한 면이 전부인 소설이나 만화는 요즘 같은 종합 트랜스 멀티미디어 세상에서 소비자를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힘이 든다.


현대인들이 무언가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법을 점점 잊어가는 것도 하나의 위기다. 하나를 콕 집어 몰두하기에는 주변에 유혹적인 샛길이 너무 많다. 이는 자연스럽게 집중력 상실로 이어지고, 꼭 이런 상황은 티끌 모아 태산이 되어 유구한 고질병이 된다. 어느 틈에 이러한 이들은 하나 둘 늘어 사회가 되고, 성인 ADHD 셀프 체크리스트가 SNS 피드에 뜰 때면 댓글에는 공감이 우르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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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내가 특히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소설과 같은 일차원적인 부류를 만끽하고 싶을 때 찾는 방법은 그와 결이 맞는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색 몇 번이면,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 때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 ‘당신의 –를 도와줄 플레이리스트’. 사람들은 집중이 필요할 때 몰입을 도와줄 수단을 찾는다. 그리고 제일 빠른 루트는 내가 그 공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나의 감각을 재빠르게 그 결에 맞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음악은 그 상황 속에서 제일 효율적으로 몰입감을 제공한다. 재생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활자와 귀에 들려오는 선율이 일치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는 아주 잠깐의 순간이더라도 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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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떤 음악들이 텍스트와 궁합이 잘 맞을까? 기본적으로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어야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클래식, 뉴에이지, 방송 음악, 재즈와 같은 연주곡들이 대표적이다. 게임에서도 이러한 음악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가사가 있어도 상관없다. 가사의 내용이 책과 어우러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기쁨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라면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아니라 멜로디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너무 깐깐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취향과 기준의 문제일 뿐이다.

 

더불어 너무 빨라도 곤란하고, 느려도 곤란하다. 물론 빠른 속도에 걸맞은 긴박함을 담고 있거나, 느림의 미학을 담은 여운이 느껴지는 지점이라면 그에 맞는 속도감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책을 읽는 템포를 방해하지 않는 정도의 속도감이 좋다. 사실 개인의 취향과 속도에 따라 다르니 정답은 없다.


그럼 이제 그런 음악을 찾아야 할 텐데, 여기서 원하는 건 단순히 ‘독서할 때’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나, 곧 독자를 그 세계로 몰입시켜줄 수 있는 노래를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과몰입’을 이끌어내줄 수 있는 음악, 내가 읽는 문장을 그림으로 그려내 줄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


아는 노래가 많다면야 그 사이에서 골라 들으면 되지만, 가사 없는 노래의 경우 제목을 외우지 않게 되니 그런 노래를 즐겨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시도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책의 한 구절을 Youtube에 쳐보는 방법이 있다. 의외의 보물 같은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읽으려는 책이 세계적 명작이거나 팬층이 많은 책이라면 더욱 좋다. 아래에 몇 가지 예시가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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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채널 '때껄룩'의 영상 'Playlist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모티브로 한 플레이리스트. 조회수가 무려 553만 회를 돌파한 영상이다. 뉴에이지 밴드 어쿠스틱 카페의 ‘Last Carnival’을 필두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의 노래들이 반복되는데,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이 책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가 확고한 플레이리스트다.

 

부끄럽고도 두려움이 많았던 요조의 삶이 이런 선율이었을까. 지극히 어둡지 않아서 더욱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악과 피아노의 선율이 어우러지는 곡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독서와 병행하며 듣기에도 좋은데, 곡에서 느껴지는 여운은 소설이 주는 충격만큼이나 짙다.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게끔 주의하며 한 인간의 삶을 탐독해 보자.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은근한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모티브로 한 플레이리스트. 느린 템포의 협주곡을 시작으로 모던 재즈, 뉴에이지가 이어지며 다양한 장면을 그려낸다. 곡의 구성이 도시적이지만 화려하지는 않은데, 그런 부분이 현실에서 소소한 사랑을 꿈꾸는 두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절절한 멜로디를 듣다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도 구와 담의 관계에 몰입하게 되는데, 페이지 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구와 담의 모습이 피어오르며 소설이 곧장 시네마틱으로 변하는 듯하다. 끝에 가서는 아름답지 않은 사랑은 무엇이며, 아름다운 사랑은 또 무엇이고, 사랑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된다.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모티브로 한 플레이리스트. 꿈 백화점의 층수별로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해 놓았다. 각 층마다 개성이 뚜렷한 달러구트 꿈 백화점답게 들어찬 노래들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다. 입장과 동시에 환상과 기대를 갖게 하는 반도네온 연주곡, 고상지의 ‘출격’부터 빛바랜 꿈을 파는 할인 코너의 신비스러움을 표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사탕 요정의 춤’까지. 공간에 맞게 노래를 틀다 보면 어느새 방구석은 정신없는 백화점 한복판이 된다.

 

특히 이와 같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는 커뮤니티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이점이 된다. 내가 느낀 여운을 남과 같이 향유하며 그 즐거움을 배로 느끼고픈 경험, 다들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누군가 남긴 명대사를 보며 즉석에서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릴 수도, 나와는 다른 감상을 겪은 사람들의 후기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네트워크 독서모임이 따로 없다.


이렇듯 책은 곧 플레이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음악은 곧 책이 되기도 한다. 감각의 향유에 경계가 필요할 리 없다. 그저 보다 더 즐겁게,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책과 음악은 최고의 파트너다.


또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생긴다. 어떤 장면에서 뚝 하고 떠오르는 노래가 생길 수도 있고, 어떤 노래를 듣다 보면 책의 한 구절이 툭 튀어나올 수도 있다. 마치 영화의 OST처럼 나만의 OST가 생길 수도 있다.

 

웹툰에서는 이처럼 그림과 어울리는 음악을 같이 제공하는 시도가 많은데, 도서에서는 아무래도 그러한 시도가 적은 편이다. 다만 이것을 절대 부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는 게, 어떠한 선율과 대사가 매칭되어 머릿속에 반복적이고 길게 남아버리는 순간 감상은 특정된다. 또 작가가 이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보다 폭 넓은 감상과 해석을 위한다면, 어쩌면 연계 콘텐츠 없이 오롯이 하나의 콘텐츠만을 즐기는 게 더욱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읽고 싶은 책이나,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한번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독서가 지루했다면 이 방식이 나름의 돌파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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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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