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 포커스와 아웃 포커스의 연극 - 너츠 [공연]

글 입력 2024.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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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8월의 태양 아래,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 한 연극이 있었다. 바로 연극 <너츠(The N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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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소년은 지난 1월 워크숍 공연을 펼친 후 7개월 만에 달라진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새로운 캐스팅 라인업으로 보다 매력적인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연극 <너츠>는 높은 완성도와 강렬한 감정선, 흥미로운 무대 연출까지 겸한다.


미스터리 추리극 <너츠>의 배경은 1994년 미국 북부 미네소타주로, 한 작은 마을 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경찰 ‘새미’와 파트너 ‘레온’이 파헤쳐가는 이야기이다. 이때 이상한 점은 하나의 살인 사건에 세 명의 용의자가 자신이 범인임을 강력히 주장한다는 것이다. 모두 살인자임을 밝히며 시작하는 이야기. <너츠>는 그렇게 각각의 용의자를 비춘다.


첫 번째 용의자인 전기 기사 ‘토드’는 크리스마스 날 자신에게 전깃줄을 요구하는 한 행인을 마주친다. 행인은 자신의 우산을 토드에게 버리고 무시한다. 이때 이 ‘버림’이라는 행위는 토드에게 트리거가 되고, 토드는 행인을 목줄에 매달아 죽이고 만다. 두 번째 용의자인 분장사 ‘잭’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로 모멸감을 준 동창생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목을 칼로 그어 죽인다. 마지막 용의자인 ‘다이머’는 사람들의 고통을 파고들어 최면을 걸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스스로 선로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이렇게 나열해 보면 세 살인 사건은 별개의 사건들 같다. 펍에서 발생한 총기 살인 사건과는 모두 무관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처럼 극에 빠져들다 보면 내가 미로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살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걸어보려 했으나 자꾸만 다른 길이 나오고 벽에 가로막힌다. 그렇게 세 인물이 범인이라지만 명쾌하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이질적인 것들이 툭툭 나를 건드는 상태로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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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츠>는 추리극답게 서스펜스와 사건의 단서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의문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왜 세 명의 용의자는 서로가 친밀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는 것인지. 세 사건에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경찰 ‘새미’가 가끔 드러내는 저 힘겨운 얼굴은 무엇인지.

 

이 작품은 보는 이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명징하게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이야기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던 ‘새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세 용의자가 친밀한 이유도, 새미의 힘겨운 얼굴도 후반부가 되어 그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과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끝없는 외로움과 모멸감, 무력감을 느꼈던 새미는 자기방어적으로 분열과 살인을 택한다. 그러니까 앞서 등장한 세 용의자는 각각의 감정에서 파생된 새미의 자아인 것이다.


이 연극은 ‘초점’을 잘 사용한 연극이다. 중반부까지는 각각의 용의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가 새미의 거짓 없는 감정이 무대 위로 표출되면 곧바로 새미에게 이목이 되도록 한다. 이처럼 흩어진 여러 초점은 새미라는 한 명의 인물을 통해 다시 모이게 된다. 그렇기에 별개의 사건이 나열되는 것도 어쩌면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즉 새미는 인 포커스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인 아웃 포커스의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파트너 ‘레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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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연극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지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배우들의 엄청난 감정 연기였고 다른 하나는 ‘레온’이라는 존재였다. 레온은 새미를 보조하는 파트너로 등장하지만, 극의 사건 전체를 보조하기도 한다. 가령 토드가 자신을 무시하던 행인을 살해하던 순간에도, 잭이 동창을 살해하는 순간에도 레온은 해당 사건 안에 존재하며 물건을 전달하거나 무표정으로 장식처럼 앉아있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해당 사건에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저 용의자 사건 조사 상황을 상기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한 레온. 그가 장면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행동으로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연출은 그를 이질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러한 이질감은 새미의 과거사가 등장하면서 풀린다. 새미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레온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불안한 낌새로 새미를 집에 머물도록 한 뒤, 레온을 향해 새미와 함께 집에 있어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이때 마리아는 레온을 정확히 응시하지 않는다. 살짝 빗나간 시선. 마치 ‘레온이 있다면 여기쯤 위치해 있겠지’ 하는 정도의 응시로 레온에게 말을 거는 마리아. 그 응시를 눈치챈 관객이라면 그때부터 레온의 실재를 의심하게 될 테다.


무대 위에서 장식처럼 존재하던 레온,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레온을 바라보던 마리아. 마치 레온을 아웃 포커스의 상태로 만드는 연출. 결국 이 모든 건 레온 또한 실존하는 인물이 아님을 말해주는 단서인 셈이다. 레온은 새미가 죽였던 사람 중 하나였고, 모든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의 실체가 새미가 만든 가상의 공간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극은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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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연극에서 영화적인 연출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간적인 제약이 있음에도 느껴지던 인 포커스와 아웃포커스가 여전히 생생하다. 이것은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 음악, 조명, 무대, 기획 등 연극을 이루는 모든 요소의 시너지를 통해 일구어낸 것일 테다. 창작 연극으로 관객과 활발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극단 소년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더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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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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