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 - 카르밀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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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밀라, 그녀의 이름 뒤에 핏빛으로 얼룩진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로라의 희망차고 밝은 목소리로 성은 잠시 포근함을 느낀다. 성에 들어온 로라에게 자신도 모르는 따스함을 느낀 카르밀라, 따스함이라고는 인간의 피를 먹으며 느꼈던 뜨거움 뿐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되찾기 시작한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뮤지컬이다. 뱀파이어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가 되었고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넘어서서 <카르밀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두 가지 매력이 있어 이번 글에 소중히 첨부하고자 한다.
# 온도를 넘나드는 넘버들
등장인물들 간의 온도 차가 굉장히 큰 뮤지컬이다. 같은 뱀파이어라도 닉과 카르밀라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같은 인간이어도 로라와 슈필스도르프가 뱀파이어를 생각하는 인식이 다른 것처럼! <카르밀라>의 캐릭터들은 정말 입체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부르는 넘버는 다채롭고 풍부할 수밖에 없다. 카르밀라와 불멸의 우정을 나누고 싶은 잔인한 뱀파이어 닉은 카르밀라와 로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들을 바라보며 미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런 닉이 부르는 <너를 되찾을 시간> 넘버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질투의 감정이 분노가 가득 찬 사람 아니 뱀파이어의 몸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굉장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겠다‘라고 생각이 들 만큼.
그러나 중간중간 카르밀라를 바라보면서 흥미로운 눈빛으로 노래를 하는 닉은 어떻게든 카르밀라를 자신의 운명의 수레바퀴에 묶어두고 싶은 것 같았다. 다른 의미로 올바르지 않은 형태의 사랑이 바로 이런 것일까?
더불어 로라와 카르밀라의 넘버인 <맹세해>도 인상 깊었다. 카르밀라의 방에 둘 꽃을 고르며 행복해하는 로라와 카르밀라는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맞춰졌던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흔치 않은 운명의 장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고 싶게 만드는 희망인 그 모든 순간이 넘버에서 드러났다. 서로에게 맹세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로라 브래넌은 카르밀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해> 넘버 뒤에는 카르밀라가 로라의 피 냄새를 맡고 급하게 도망치며 부르는 <너는 누구지>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그만큼 위태로워 보이는 둘의 관계가 관객으로 하여금 로라와 카르밀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우정, 단어만으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위험이 두 여자의 주변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도 <카르밀라>의 넘버들이 수도 없이 맴돌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
무대 장치도 인상 깊었다. 배우들의 수도 적고 무대도 크지 않다 보니 무대 구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원형의 구조물이 공연 중간에 끝도 없이 돌아간다.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가는 원형의 구조물은 로라의 집, 비밀의 숲, 그리고 성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장소는 카르밀라와 로라의 운명이 얽혔던 그리고 얽히고 있는 장소다. 인물들이 원형 구조물을 짚으며 원을 그릴 때 막을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서로의 얼굴 그리고 그런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 그 공백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대 세트가 바뀌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기우 자체였다.
인물들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굴러갔기 때문이다.
[임주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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