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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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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학생 때 감상문을 작성하고, 지금까지도 영화 포스터를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의 나에게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우아한 거짓말’을 영화로 접한 후 내용에 빠져들어 소설도 읽을 정도였다. 학생 시절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학교폭력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고 그저 극 중 주인공 ‘천지’와 ‘화연’, 같은 반 학생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선과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학생 때의 감상과 사범대에 진학하고 난 후의 감상을 비교해 보고 싶어 이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예비 교사가 된 후 다시 접하게 되니 아무래도 영화의 가장 큰 주제인 ‘학교폭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실 천지가 당한 학교폭력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교폭력보다는 강도가 훨씬 낮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이들이 천지를 앞에 두고 직접적으로 학교폭력을 한 것이 명확하게 나온 부분은 화연이의 생일파티에서 천지가 짜장면을 먹을 때 다른 아이들이 천지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비웃는 장면뿐이다. 그 외의 장면은 화연이가 천지의 가족에 대한 뒷담화를 하거나, 일방적으로 서로의 생일선물을 챙기자고 말하거나, 천지가 죽은 후 다른 반 학생이 천지에게 빌린 체육복을 사물함에 넣는 것이다.

 

그렇기에 몇몇 사람들은 이것을 과연 학교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리적으로 천지가 폭력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직접적으로 협박이나 욕설을 들어 상처를 입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천지의 언니 ‘만지’에게 미란이의 언니가 “겨우 그거 가지고 사람이 죽어?”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와 관련된 부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학교폭력이라 부를 수 없다면, 피해자만 존재하고 가해자는 없는 이 상황을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 영화에서 천지의 엄마, 언니는 학교폭력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천지가 다녔던 학교에 항의하거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지금이라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들 중 누구라도 학폭위를 열고자 했다면, 영화 속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천지를 비웃는 연락 내용은 학폭위가 열릴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만약 이 단서도 없었다면 천지는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은, 그저 겉도는 학생일 뿐이었고 너무 예민한 아이였기에 자살까지 한 아이로밖에 비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지와 같은 상황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영화 속 ‘은따’라는 단어는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있던 단어이다. 같은 반 학생들은 은따와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고, 은따가 말을 걸면 싫어하는 티를 낸다. 영화 속 화연이와 같이 앞장서서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학생들 모두 더더욱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교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무관심이라는 어항 속에서


 

천지는 폭력에도 갇혀 있었지만, 무관심에도 갇혀 있었다. 가족의 무관심, 교사의 무관심, 같은 반 학생들의 방관에 갇혀 있던 것이다. 천지가 살아있었을 때의 가족 분위기는 화목했기에 가족의 무관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먼저 천지의 학교생활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극 초반에 천지가 가족들과 밥 먹는 모습이 나온다. 천지가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밥 먹는 상황을 보면 애초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을 먹다가 급하게 나가는 엄마와 언니에게 자신의 학교생활을 말할 시간조차 주어져 있지 않다. 또한, 만지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자신의 동생이 학교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결국 만지도 천지의 학교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교사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극 중 천지의 담임교사는 천지에게 세 달 전에 빌린 체육복을 돌려주는 학생에게 “빌려주는 천지는? 안 빌려주면 뭔 일 일어날까 봐 벌벌 떨었을 천지는?”이라고 말하며 천지를 위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교사가 반에서 겉도는 천지와 상담하거나 천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최소한 담임교사라면 반에서 겉도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타고난 내성적 성격 때문인지, 혼자 다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누군가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어야 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도 같은 반에 혼자 다니는 친구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험담을 해도 그에 대해 반박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반 아이들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까 그 험담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우연히 혼자 다니는 친구와 집 가는 방향이 비슷해 하굣길을 몇 번 같이 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화도 많이 하지 않았다.

 

결국 나도 무관심했던 방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때 혼자 다니는 친구와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험담에 대해 반박했더라면 그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부끄럽지만 지금에서야 그 시절 나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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