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절대본 것뿐이야 그러니 별일 아녜요 [음악]
-
일 년에 한두 번 씩 불안함과 걱정으로 둘러싸이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 본인이 너무나도 나약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싫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감정들을 마주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바다가 거대한 파도의 모습을 하고 모래에 겁을 주며 다가오는 것 같다가도, 결국엔 그저 조용히 다가와 모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떠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한층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스스로를 푹 가라앉히는 방법을 통해 이 시기를 안기 시작했다. 푹 가라앉을 때마다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정해져 있는데, 오늘은 그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하현상의 음악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나는 싱어송라이터 하현상을 정말 좋아한다. 무던한 사람이라 좋아하고, 그 무던함 속에 생각하고, 느끼고, 내뱉는 게 참 많은 사람이라 좋아한다.
1. Same Old Song
하현상의 음악 중 최애 곡이 뭐냐는 질문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 힘들 때마다 찾는 하현상의 노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Same Old Song을 말할 것이다.
"주정뱅이처럼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기타로도 별게 없어요.
베이스도 계속 8비트로 달리고, 드럼도 그냥 8비트로 달리고.
제목처럼 뻔한 노래, 그런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뻔한 푸념"
하현상 공식 유튜브 - [Time and Trace 앨범 제작기 中]
하현상은 same old song에 대해 이런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기타로도 별게 없기에' 이 노래가 가라앉고 싶을 때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닐까. 힘을 빼고 중얼거리는 듯이 노래하는 하현상의 same old song은 힘들 때 억지로 힘을 내게 하는 노래가 아니라, 옆에 조용히 서서 힘든 상황을 공감해 주는 것만 같다. 그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same old song의 약자는 SOS다.
"나를 좀 구해줘요
나를 좀 안아줘요
나 이대로 주저앉을래
나 그냥 해본 말이야
주절대본 것뿐이야"
하현상 Time and Trace 앨범 - [Same Old Song]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힘들다고, 주저앉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데, 주변인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생각으로만 했던 걱정을 목소리를 통해 들으면 정말로 주저앉게 될까봐 무서워 정작 꺼내지 못하는 날.
이 노래를 들으면, 하현상이 나 대신 말해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옆에서 함께 힘들어해 주겠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은 곡이다."
2. 집에 가는 길
하현상의 첫번째 정규 앨범 [Time and Trace]에서 "Same old Song" 다음으로 좋아하는 노래이다. "집에 가는 길"에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하현상만의 응원이 담겨 있다.
넘어진 마음 일어서려 떼쓸 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세상 위에서 있으니
거짓말들 같은 기적이 올 테니
나 살아볼게
하현상 Time and Trace 앨범 - [집에 가는 길]
[집에 가는 길]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곡이다. "넘어진 마음 일어서려 떼쓸 게" . 노력하겠다는 동사가 아닌 떼쓸 게 라는 표현을 사용한 가사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 부르는 순간 하현상의 다짐에서 나의 다짐이 된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게 결코 당연한 게 아닐 텐데, 우리들은 언제나 아침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현상의 가사처럼 아침이 오는 것은 우리가 매일 매일 마주하는 기적일 수도 있다. 힘든 하루를 무사히 마친 사람들에게 건네는 하현상만의 응원이 담긴 노래이다. [집에 가는 길]을 들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 했다고, 무사히 잘 살아남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3. 커버곡: One day - 원곡: Kodaline
이 노래가 "다 지나가는데 뭘 붙잡고 있냐, 어차피 다 지나갈 날들이다" 그런 노래거든요.
가사가 되게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붙들고 있는 일이 있으시면 좀 내려놓고 좀 즐기시라고..
하현상 221010 someday pleroma 공연 중 멘트
하현상의 담담하지만 다정함을 엿볼 수 있는 멘트.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기쁜 앨범을 발매하는 사람처럼, 매 순간 기쁘지 못하더라도 적당히 기쁜 나날들을 보내야겠다.
적당히 기쁜 순간들은 하현상의 음악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충분히 만들 수 있을테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삶이 평온하길 바랍니다.
[최서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