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친절해지고 싶다 [사람]

되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글 입력 2024.06.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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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슈퍼를 가고, 점심에 식당을 가고, 저녁에 미팅을 하고, 새벽에 주유소를 가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기사를 읽다 잠들기 직전까지 그것참 다들 친절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참 나는 불친절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원망스럽고 반전을 이루지 못한 내가 밉다. 자기연민에 빠진 잠깐이 꼴사납다.


친절해지고 싶은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내 목소리가 조금만 더 하이톤이었다면, 내 표정이 조금만 더 밝았다면, 내 인상이 조금만 더 부드러웠다면. 그랬다면 내가 친절해 보였을까. 까칠하고 툴툴대고 사무적인 내 모습에 다들 벽을 느낀다. 오래 보면 내 벽은 사실 베를린 장벽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데. 오래 보기들 힘들어한다.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되었다는 걸, 핑계라고 댄다. 나이 어린 대표가 무시받아서는 우리 제품을 살 리가 없었다고, 기가 죽어 보여서는 우리 제품을 팔 수 없었다고. 데인 만큼 데필 준비를 하느라, 데핀 만큼 들 데일 준비를 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눈을 부라리고 미간을 찌그려줘야 직설적으로 말해줘야 말귀들 알아먹는다고. 해명을 하고 핑계를 대고 궤변을 하고. 나에게 연민을 느껴달라 읍소하지만, 연민과 읍소는 금세 휘발되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친절한 사람이란, 무례에도 미소를 유지할 여유가 있고. 비판을 비난으로 들리지 않게 말을 이쁘게 하고. 감정적인 사람에, 상황에 논리보다 공감을 주고. 발견한 사소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칭찬해 줄 수 있고. 타인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고. 상대의 부끄러움을 위트있게 넘겨줄 수 있고. 나보다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멸시하거나 치부하지 않고. 상처가 되었을지 모를 말을, 상황을 설명해 주고.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좀 많다. 친절한 사람의 요는, 되게 괜찮은 사람이다.


천재지변이 없다면 약속 시간에 절대 늦지 않고, 정수리가 보이게 인사하고, 물건을 두 손으로 받는 거까지는 했는데. 나의 학습된 친절함이 사무적이다. 뭐 어쩌겠냐 사무적인 만남은 주 5일제고 사적인 만남은 월간 행사다. 튀어나오는 사무적임이 그래서, 그러니까 미안하다. 다짐하고 들어간 만남에서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대화에 어느 순간 네 안경에 비친 내 눈빛과 미간이 잡아먹을 기세다. 내가 무섭다는 니들 말이 공감된다.


내 벽이 베를린 장벽이라는 걸 안 사람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무섭다고들 말한다. 무섭다는 사람에게 무섭다고 말한다는 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직설적으로 뱉는다는 건. 내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는 뉘앙스라 반갑다. 그 사람들이 나는 반갑고 고맙다.


2년을 본 그림 그리는 동생이 있다. 군대 동기이니 어쩔 수 없이 오래 봤다. 순박하고 착한 아이다. 이놈이 열심히는 하고 싶어라 하는데, 허구한 날 유튜브나 보고 있어 내가 엄마도 아닌데 잔소리 좀 많이 한다. 나 오지랖 싫은데, 얘는 좀 걸린다.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할 수 없었던 이 친구의 환경과 상황에 연민을 느낀다. 너무 오지랖인가 싶다가도, 대학을 알아봐줬고 일자리를 권해줬다. 이 핑계 저 핑계 궁시렁대면 싫은 소리 하며 타박했다.


최근 권한 일자리에 이력서를 봐주며 3시간 동안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 같으면 너 안 뽑아 임마, 말을 좀 쉽게 해라. 궁시렁댈 만도 한데 곧이곧대로 받아적는다. 그러다 고맙단다. 형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줄 줄 몰랐다는 그 말이, 진짜 같다. 분명 내 말은 툴툴댔는데 기분 나빴을 텐데 그러기에 그 친구의 표정이 가식없다. 감정표현 서툰 놈인데 이상하다.


내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일지도 않을까 싶다가 잠들기 직전에 다다르니 그것참 나는 실수도 많고 잘못도 많고 상처도 주고 사과는 늦고 최악이다. 뭐지, 뭐지, 뭘까 하다 잠에 들고 잠에서 일어나 다시 냉소적인 눈빛과 까칠하고 툴툴대는 어투를 발사한다. 나는 애기들만 보면 방긋 잘도 웃는데, 어째서인지 어쩌다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친절해지고 싶다. 되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메롱 뿌잉뿌잉 이모티콘 뭐 이러면 되나. 내가 그러면 징그럽다던데.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나는 오래 살고 싶은데. 아무쪼록 나는 정말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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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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