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향의 취사선택 [영화]

늦게 본 <세 얼간이>
글 입력 2024.05.04 01: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누구나 하나씩은 그거 다들 좋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보지는 않았어, 하는 영화가 있다. 나에게는 아가씨가 그랬고, 괴물이 그랬으며, 세 얼간이가 그랬다. 학교에서 툭하면 틀어주는 영화라던데 어쩐지 본 기억이 없는 것은 내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보여주지 않은 것일까. “알 이즈 웰.” 이라는 대사와 아미르 칸이 주인공인 교훈적 영화라는 것을 빼고 아는 것 하나 없이 무작정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유다.

 

인도의 명문 공학 대학교인 ICE에는 세 얼간이가 있다. 비상한 머리와 그보다 더 비상한 잔머리로 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는 란초, 집안에서 정해 준 꿈인 공학자가 되기 위해 사진작가의 꿈은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는 파르한, 가난한 집의 유일한 기둥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만 하는 라주. 그렇게 세 명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학교가 원하는 길, 또는 자신이 정하지 않은 길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인생을 실현해나간다.

 

세 얼간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 얼간이 1.jpg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내게 남은 것은 즐거운 인생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라는 교육적 지표가 아니었다. 색색의 엉덩이를 긁는 것만큼이나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총장이 파르한과 라주를 불러 그들로 하여금 란초의 아버지가 대단한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괴짜처럼 행동해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였고, 심지어 돌아갈 곳마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추후 란초의 입학에 관련한 비밀이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들의 재학 시절에는 그것을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번잡했을 파르한과 라주가 자꾸만 눈에 걸렸다. 지금은 나와 비슷해 보이는 저 친구가 나와는 달리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심지어 따지고 보면 비슷한 것도 아니며 죽었다 깨나도 따라잡을 수 없는 월등한 사람이 바로 내 곁에서 함께 정석가도가 아닌 길을 걷자고 하는 것을 파르한과 라주는 견뎌야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 내가 미워지기도 해서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세 얼간이 2.jpg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순도 백 퍼센트의 마음으로 사람을 아끼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가게 된다. 란초는 대단한 사람이고,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나의 친구라면 나 역시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파르한과 라주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들이 알면 더 좋을 사실은, 란초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즈음 총장이 란초에게 자신의 펜을 건네주며 그 펜이 왜 위대한 발명품인지, 란초가 반박한 대로 우주에서 연필을 쓴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를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리고, 그토록 부러워 마지않는 란초도 그렇다.

 

반드시 란초의 즐거워 보이는, 멋있어 보이는 인생을 좇을 필요는 없다. 어떤 거대한 물결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어떤 영향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영향의 취사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지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