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맥도날드에 필레 오 피쉬가 없다면 [음식]

다원주의적 식문화와 느슨한 공동체주의
글 입력 2024.05.0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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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도, 채식주의자도 아닌데요


 

유럽에서 판을 만났다. 나와 같은 교환학생이었던 판은 싱가포르 무슬림으로, 그에게는 독실한 면이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그는 모두가 술을 마시고 제정신을 놓던 날 밤에도 꿋꿋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술자리 최후의 승자로 거듭났다. 그런 그를 보면서 독하다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는 '25년을 맨정신으로(sober)' 살아온 자부심이 그렇게 쉽게 깨질 것 같냐며 웃었다.


그렇지만 판은 꽉 막힌 사람도 마냥 진지한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은, 조금 웃긴 쪽에 가까웠다. 그는 대화하는 와중에도 항상 눈을 빛내며 농담을 던질 타이밍을 노리고, 가끔씩 알 수 없는 몸개그로 모두를 웃게 만들곤 했다.


무엇보다도, 여행에 있어 판은 행동력과 추진력이 넘치는 리더형 인간이었다. 나는 5개월 동안 같은 기숙사 복도에서 만난 교환학생 친구들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마다 판은 종종 특이한 목적지로의 여행을 제안했고, 인원 모집부터 교통편과 숙소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마치곤 했다. 그 덕분에 출국 전에는 상상도 계획도 하지 못했던 북유럽 여행을 모두 그와 함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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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했던 첫 여행지는 스웨덴이었다. 낮 일정을 마치고 모두가 배고파질 무렵, 저녁 식사할 곳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스웨덴이 미트볼로 유명하다는 말에 별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 막 출발하려던 찰나, 기대에 찬 표정들 사이 판의 얼굴은 유독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거기 할랄 메뉴도 있는지를 물었다.


아차 싶었다. 무슬림인 판은 고기를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무슬림의 방식으로 도축한 할랄 고기만을 섭취한다. 무슬림의 식사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구글 맵에서 찾은 비건 메뉴를 보여주며 괜찮다고 그를 타일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래도 케밥 식당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다 같이 온 여행인데 판이 다른 식당에 간다는 게 아쉬웠기에, 우리는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었다. 설득의 근거였던 비건 메뉴가 판에게는 그저 차악이었을 뿐임을. 그는 비건도 채식주의자도 아니었음을. 판은 복도에서 유일하게 에어프라이어를 가지고 있을 만큼 맛있는 음식에 진심이었던 데다가 고기 요리도 아주 좋아했다.


메뉴판을 다시 읽어보며, 비무슬림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와 그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지 사이 어마어마한 불비례성을 깨달았다. 선택의 다양성조차 없는 메뉴판을 들이밀며 '괜찮다'고 말하는 건, 그를 전혀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던 사실을,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그 이후부터, 여행을 계획할 때 할랄 식당을 찾아보는 건 우리 모두에게 있어 필수 고려 사항이 되었다.


 

 

단 하나의 선택지는 종종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은 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데 인색했다. 그에 따르면 싱가포르에는 무슬림 인구가 많아 할랄 인증을 받은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기숙사에서 요리할 때조차, 그는 마을의 유일한 할랄 정육점에서 더 비싼 값을 내고 할랄 고기를 구매해야 했다. 더군다나 관광지에서, '맛있는' '할랄',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식당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관광지에서 판은 매번 케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그가 케밥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제 케밥이 질린다고 말했다. 그가 케밥을 택했던 건,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보장된 할랄 메뉴가 바로 케밥이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그에게 비무슬림에게만큼 풍부한 선택지가 주어진 적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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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나마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건, 핀란드 여행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였다. 우리는 매일 저녁 당번을 정해 각자 고향의 음식을 요리하기로 했다. 단, 요리에 쓰이는 재료는 할랄이어야 했기에 매일 저녁 할랄 아시안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 당번이던 날, 우리는 닭볶음탕을 요리할 계획이었다. 장을 볼 땐 알지 못했다. 무심코 집어 든 닭이 완전한 생닭이었고, 어머니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한 시간 동안 닭 내장 손질법을 배우게 되리라고는. 


그렇지만, 닭의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른 닭은 할랄 마트의 유일한 닭고기였기 때문이다. 똑같이 생닭을 손질하거나 닭볶음탕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한 가지밖에는 택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단 하나뿐인 선택지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임을. 우리가 닭 내장을 손질하며 겪었던 불편함은, 유럽에서 판이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새삼스레 와닿았다.




맥도날드에 필레 오 피쉬가 없다면



핀란드 로바니에미에는 북극선 아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최북단 맥도날드가 있다. 사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평범한 맥도날드 지점 중 하나다. 심지어 가게 내부는 총체적 난국이다. '최북단'의 마케팅 효과로 인해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놀랍게도 키오스크가 없어 주문하려면 줄을 서야 했으며, 우리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합주처럼 울려 퍼졌다.


긴 기다림 끝에, 판은 매대에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필레 오 피쉬'가 있는지 물었다. '필레 오 피쉬'는 흰살생선과 타르타르소스로 만든 피시버거다. 다른 버거와 달리 해산물이었기에 그가 맥도날드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메뉴였다. 그러나, 단종되었다는 직원의 말과 함께, 판은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사러 마트에 다녀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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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판이 당면했던 건 생존의 문제까지는 아니었다. 조금 걸어야 했지만 마트에서, 약간 더 비싸지만 할랄 정육점에서, 친구들과 떨어져야 했지만 케밥 식당에서, 뭐라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이건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리고 우리의 현대 사회는, 이제는 생존보다도 어떻게 하면 개인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대적 맥락에 놓여 있다.




더 많은 선택지는 우리를 둘러앉게 한다



한국은 어떨까. 유럽에서 생활하며, 어떤 식당이든 비건 메뉴가 적어도 하나씩은 갖춰져 있음에 깜짝 놀라곤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비건이나 채식 메뉴를 찾아보기가 영 녹록지 않다. 물론, 최근 '힙'한 분위기의 비건 식당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비건 식당보다 중요한 것은 비건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의 여행 도중, 비무슬림들이 비할랄 메뉴를 먹고자 할 때면 각기 다른 식당으로 팀을 나눠 흩어져야 했다. 사실 그건 비할랄보다는 비케밥에 대한 선호였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관광지에서 찾을 수 있는 할랄 메뉴는 거의 케밥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케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으려면 할랄을 포기해야 했다. 

 

여행 내내 케밥만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건 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는 할랄을 포기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애초에 다양한 메뉴에 할랄 옵션이 제공되었더라면, 함께 온 여행에서 굳이 흩어지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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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선택지의 제공은 중요하다. 그건 우리를 둘러앉게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돕는다. 할랄 음식을 먹고 싶으면 할랄 식당으로 가라는 식의 주장은, 명백한 배제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비건과 非비건, 무슬림과 非무슬림 사이의 경계를 우뚝 세운다. 반면, 한 메뉴판 위에 펼쳐진 다채로운 선택의 길은, 개인 삶의 양식을 존중하면서도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느슨한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공동체주의는, 모두 같은 옷, 같은 음식,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획일성에 기반하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도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




더 많은 선택지는 한계를 깨부순다



또한, 다양한 선택지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 벽뿐만 아니라, 내면의 벽까지도 시원하게 부순다. 이런 경험 하나쯤 있었을 것이다. 메뉴판에서 무심코 골라 주문했을 뿐인데 곧 '최애' 메뉴가 되는 반짝이는 발견의 순간.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 맛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순간이다.


판은, 유럽의 인색한 메뉴판 앞에서도 작아지거나 주류의 은근한 압박에 순응하지 않았다. 잠깐의 울적함은 털어내고,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택했다. 그런 능동적인 판 옆에서, 나도 친구들도 할랄 푸드의 매력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고맙게도, 그는 언제나 모두가 만족하는 할랄 식당을 조사해서 소개해 주곤 했다. 순록 케밥 피자, 위구르식으로 만든 떡볶이, 그리고 얼굴보다 더 길쭉한 뒤룸을, 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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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은 베를린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되너' 케밥이 베를린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글을 읽었다. 그날부터, 베를린 최고의 되너 케밥집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시작됐다. 햄버거보다 케밥을 더 자주 먹는 일상이라니, 판을 만나기 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다.

 

다양한 선택지는 편견과 관성이라는 이름의 알을 깨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게끔 돕는다. 우연한 발견의 순간이, 내 세계를 드넓게 확장한다. 

 

*

 

언젠가 판이 한국에 오면 좋겠다. 판과 함께, 그곳에서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한국에 놀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막상 그런 날이 온다면, 저녁 식사 때 이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할랄인가? 너무 맵지는 않은가? 비건 메뉴가 있는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재료는 없는가? 고려해야 할 점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낼 것이다. 모두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따뜻하고 관대한, 둥글고 커다란 테이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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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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