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체적 오이디푸스들 -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글 입력 2024.04.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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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오이디푸스다. 그동안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숱하게 차용했던 오이디푸스를 대학로의 중심으로 다시 불러왔다. 이번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도, 콜로노스의 눈먼 걸인도 아니다.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다. 그리스 비극의 가장 유명했던 주인공은 오늘날 여러 몸을 빌려 출입국관리소를 서성인다. 이방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 그곳의 문을 간절히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의 생을 빌린 또 한 편의 비극이 될 것.


연극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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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 무대를 감도는 건 적막 속 파도 소리. 새조차 울지 않는 그곳은 쓸쓸한 바다다. 바다를 건너 또 다른 땅에 왔으므로 바다는 연결인데, 바다를 건너 도착한 그 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으므로 바다는 단절이다. 마침내 조명이 켜진 무대에는 연결의 희망을 품고 찾아와 단절의 절망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 여럿이 얽힌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희미하게만 보이던 이들의 삶이 마침내 조명을 받는 순간,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각자의 언어로 ‘미등록(undocumented)’을 한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새롭지 않다는 것은 ‘진부함’의 의미보다 ‘낯설지 않음’의 의미에 가깝다. 전쟁에 휩싸인 나라를 떠나 안전한 삶을 찾는 이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먼 나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이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정신적 보호를 요구하며 도망친 이들, 혹은 기후 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이들. 뉴스를 통해 관찰하는 누군가의 삶은 철저하게 타자화 되지만, 그들의 삶이 예술의 옷을 입을 때 관람하는 내가 바로 그들의 냉정한 타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가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110분의 시간을 온전히 쏟는 이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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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찾아온 이방인들은 낯선 땅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이 누군지 증언해야 한다. 내가 바로 오이디푸스라고,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그들의 호소는 간절하지만 그 간절함을 가로막는 것은 차가운 언어의 장벽이다. 단순히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의 언어는, 비록 잘 통역된다고 할지라도, 온전히 이해되기엔 너무 멀다는 것.

 

침묵엔 오해가 없으나 허용되지 않고, 대화는 듣는 자들이 듣고 싶은 대로 자꾸만 구부러지며 왜곡된다. 장벽 밖 이방인들은 “백 번 천 번이라도” 같은 말을 외칠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들어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오래 전 쓰인 그리스 비극의 힘을 빌려 새로 태어난 이야기는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우리의 삶에 바투 당겨놓는다. 전지구적 문제가 되며 문뜩 가까워진 이방인의 존재를 우리는 환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악의도 없고 영문도 모른 채, 언젠가 어디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는 모두 잠재적 오이디푸스들이다. 오이디푸스는 비유적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편적 일반명사다.

 

어디에서도 환대 받지 못한 채 “내게 나쁜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오” 외치는 오이디푸스의 절규는, 이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려야 한다. “너는 내게 나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라고.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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