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를 다 알고 있다는 오만에 대해 - 연극 실종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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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승진을 앞두고 있던 유진이 어느날 갑자기 실종됐다. 그의 행방을 찾는 유진의 언니 유영은 유진의 오랜 남자친구 민우를 의심한다. 민우의 어둡고 눅눅한 반지하방.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의심과 비난 속에서 날 선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서로가 알지 못했던 유진을 마주한다.
연극 <실종법칙>은 유영과 민우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전개된다. 실종된 유진은 관객에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말도 전하지 않는다. 관객은 유영과 민우가 전하는 말들로만 유진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전하는 유진의 모습은 철저히 치우쳐져 있다. 유진과의 관계, 그들 각자가 처한 상황, 그리고 유진과 함께 보냈던 시간으로 그들은 유진을 정의했고, 그것이 유진의 전부라 믿었다.
유진은 어떤 사람인가. 고조되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유진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가 지망생인 남자친구 뒷바라지에 지친 불쌍한 여자이기도 하지만, 남자친구 몰래 외도하는 나쁜 여자친구이기도 하며,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커리어우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유진과 민우가 전해준 단서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유진이라는 사람을 그려간다. 하지만 관객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유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민우와 유영이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유진은 선명해지기보다 흐릿해지며, 그 ‘알 수 없음’은 관객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온전히 알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 대상이 누구이든, 그 생각은 나의 착각이거나 오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자신조차 나를 샅샅이 파악하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가까운 사람, 혹은 어떤 이유로든 본인이 만만하게 여긴 상대에게서 그렇다. 내가 그를 다 꿰뚫고 있다고, 그를 다 알고 있다고, 내가 모르는 그의 모습이 있을 리 없다고 자만하면서.
유영과 민우도 그랬다. 유영은 유진의 친언니이고, 민우는 유진과 7년을 함께한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유진과의 오랜 관계, 친밀함을 강조하며 그들이 유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들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그들조차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은 상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없도록, 그를 외면하게 만든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고, ‘그건 너답지 않다’고 비난한다. 상대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그런 건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너에게 그것은 어떠했을 것’이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은 채 그의 감정을 쉽게 단정지어 버린다.
유영은 민우에게 유진의 따돌림 사실을 확인받고 나서도, 유진에게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오히려 유진이 음흉하게 자기 능력을 시기하는 동료들에게 우월감을 느꼈을 것이라 함부로 말한다. 민우 역시 유영에게서 유진이 자신과의 관계에 지쳐 헤어짐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 말을 전해 듣기 전까지 유진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유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가 편한 방식으로 유진을 왜곡하고 외면해 왔을 뿐이다.
극 초반부 확신했던 어떤 사실들, 등장인물 간 선악 구분도 점점 흐릿해진다. 극이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떠오를 줄 알았다고 생각했던 진실은 되려 가라앉는다. 유진을 끔찍이 위하는 줄로만 보였던 두 사람이지만, 유진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양면적이며, 그들은 유진을 미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해를 가하기도, 속이기도, 상처 주기도 했다. 그 사실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관객들의 의심은 방향을 잃은 채 이곳저곳을 떠돈다.
유영과 민우 모두 완전한 선인은 아니며, 유진 앞에 떳떳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순간은 극적이고 공포스럽지만, 연극은 나름의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그들이 악인임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완벽한 선인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시기와 원망, 열등감과 복수심 같은 ‘악’의 감정들은 조금씩은 지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거나 그를 무너뜨리는 상상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끝내 저지를 때도 있다. 우리는 선인과 악인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경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회색 지대에 서 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누군가에게 은인인 이가 누군가에게는 원수가 된다.
관객들은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판단하고자 의심의 눈초리를 이곳저곳으로 돌리고, 끝끝내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 앞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파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함과, 모든 것에 떳떳한 완벽한 선인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허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삶의 법칙을, 소중한 누군가가, 내가 굳게 단정지어왔던 누군가의 모습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진실이 실종되고 나서야 깨닫는다.
[한수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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