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끊임없이 접촉하려는 어둠에 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4.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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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 시인의 시는 대부분의 시가 연작시처럼 느껴질 만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의 시에는 ‘어둠’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어느 곳에서든 ‘어둠’은 포진해 있다는 듯 말이다. 시인은 이러한 ‘어둠’을 여러 상징물과 시적 정황을 통해 공포의 분위기로 조성해낸다. 그렇다면 시에 등장하는 이 ‘어둠’은 대체 무엇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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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어둠’은 “거대한 무정형의 세계”라, 어둠에 빨려 들어간 물건은 “물건을 벗어버(「변명, 코인로커」)”린다. 또 ‘어둠’은 ‘젖은 팔’이 되어 “얼른 자네 어깨뼈에 끼우게”, “나를 비 오는 거리로 데려가 주게(「젖은 팔」)”라며 ‘나’의 발목을 붙잡고 질질 늘어지거나, ‘택시 기사’가 되어 “내가 택시 기사를 버렸듯이 당신도 승객의 얼굴을 버리쇼.”, “이곳에서 제발 날 꺼내 가 주시오.(「택시」)”라고 한다.


이처럼 시 「젖은 팔」에서 ‘나’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젖은 팔’은 자꾸만 은밀한 속삭임으로 불완전한 ‘나’를 파고든다. 맑은 날에 온전한 그림자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개중 팔 그림자가 없는 ‘나’를 말이다.


그럼 「택시」에서는 어떨까. ‘택시 기사’는 “내가 버린 얼굴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 어두운 감각이 도사리는, ‘나’를 마비시키는 캄캄한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택시 기사’는 모호한 대답과 함께 ‘나’를 어둠에 묶어버린다.


‘나’를 어딘가로 갈 수 없게 하는, 질척이는 것들. 위에서 언급한 두 존재는 ‘나’에게 간절한 어조로 부탁한다. 하지만 그 부탁 뒤에는 의뭉스러움이 묻어나 들어주어선 안 될 것만 같다. 왜냐하면 “어두운 광장에선 자꾸만 웃음을 빼앗긴 채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끌려가서 좀처럼 돌아오지 않(「웃는 남자」)”기 때문이다. 결국 코인로커에 있던 무언가는 나의 “어두운 시간에 대해” “어디 한번 얘기해보라(「변명, 코인로커」)”며 ‘나’의 잃어버린 것에 관한 이야기와 내면의 이야기에 접촉해온다.


이때 시인은 ‘나’뿐만 아니라 어둠과 관련된 것 또한 온전하지 못함을, 그리고 ‘나’와 조금 닮아있음을 명시한다. 사실 ‘젖은 팔’도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 ‘젖은 팔’도 그림자가 없었고, 또 스스로 이 맑은 날 팔 하나가 젖어있는 채로 길바닥에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은 어색한 장면이라 한다. 젖은 소매를 말리지도 못한 채 여전히 비가 오는 과거에 묶여있는 것이다.


‘택시 기사’도 ‘나’와 같은 점이 있다. 바로 “얼굴을 바꿔 다는” 이(혹은 웃음을 빼앗겨 ‘웃는 남자’가 찍어낸 웃음을 어두운 광장에서 사는 이일지도 모르겠다)이자 택시라는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둠은 우리로부터 파생된다.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어둠이 탄생하고 그 어둠은 ‘나’의 어둠이기에 닮아있다. 우리의 주위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들러붙는 어둠은 어쩌면 ‘거푸집’이나 ‘그림자’처럼 나와 닮았으면서 고독하고 또 무언가를 상실한 나의 자아인 것만 같다.


김근 시인은 시인만의 시적 세계를 공고히 해 독특한 장면 구성으로 섬뜩하고 긴장감 있는 시를 그려낸다. 특히 그러한 세계를 강렬한 이미지로 그리는 힘이 대단하다. 시인의 시는 “차가운 차창”처럼 “내 머리를 통째로(「택시」)” 집어삼킬 것만 같다. 시가 시에서 그치지 않고 텍스트를 넘어 감상자에게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서 나의 어둠과도 끊임없이 접촉하려 한다. 내 몸 어디선가 나와 닮은 듯 음흉한 어둠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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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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