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실과 회복 - 관계의 평등과 정의의 중요성

관계의 평등과 정의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인지하는 사회
글 입력 2024.03.3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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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이자, 트라우마 치료 연구 분야 거장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저서 <진실과 회복 -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에 대해 리뷰해 보려 한다.

 

책의 내용에는 글쓴이가 의료계에 있을 때 가장 많이 작업해 온 생존자들의 사례들이 대거 인용되었다. 주로 아동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특히 여성, 아동 대상 폭력 생존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결론부터 앞서 말하자면,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정의는 권력의 사회적 조직화의 의거한다'이다.

 

개개인 간의 권력 차이로 인한 부당한 대우 및 피해, 사건은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조직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하다. '개인의 심리적 케어 위주'의 다소 미시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나는 예상보다도 거시적이면서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조금 놀랐다. 그리고 덕분에 배울 점들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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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크게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1부  <권력>: '권력관계' 형태에 따른 인간관계 모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1장 : 독재의 규칙 - 지배, 종속 기반의 권력관계 (독재의 원형)

2장 : 평등의 규칙 - 호혜, 상생 기반의 권력관계 (평등의 원형)

3장 : 가부장제 - 독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소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1장'과 '2장'은 서로 대비되는 권력관계 형태 모델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며 그 특징에 대해 열거되어 있다. '지배, 종속 기반의 권력관계'에서는 '남성 특권 이용하기, 정서적으로 학대하기, 고립시키기' 등의 행동양상들이 나타난다. 대비적으로 '호혜, 상생 기반의 권력관계'에서는 '공정한 협상, 위협하지 않는 태도, 존중, 신뢰와 지지, 정직과 책임' 등의 행동양상들이 나타난다. 당연히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관계의 방향성은 '호혜, 상생 기반의 권력 관계'이다.


그가 다루었던 사건과 피해 환자 대부분이 성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생존자였기에, 그는 이러한 사건을 유발하는 인류 역사상 뿌리 깊은 사회 문제였던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가부장제는 가장 널리 확산되어 있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형태의 독재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안타깝게도 폭력에 의해서 집행된다. 가부장제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사례들이나 미미한 처벌 등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부 <정의의 비전>: 제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낸 '정의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4장 : 인정 - 진실에 대한 '공개적 인정'을 원함

5장 : 사죄 - 가해자로부터 '사죄'받길 원함

6장 : 책임지기 -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가해자에 관해 처벌보다 재활을 선호

 

궁극적으로 생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과 정의'이다.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있는 사실 그대로 세상에 알려지고, 자신의 존엄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길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법 시스템이 주는 것은 '처벌과 금전적 배상'이고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괴리가 존재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정의 실현의 첫 번째 단계인 '진실 알리기' 조차 실현하기 힘겨워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책망으로 전도되는 현상들을 목도했는지, 오늘날은 비교적 나아졌지만 과거의 가정폭력, 성폭력 사례들을 보다 보면 정말 정의가 상실된 사회의 모습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어 충격적이었다.

 

놀랍게도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향한 책망보다 가해자의 재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생존자는 정의가 가해자 중심이 아닌 생존자 중심으로, 응보 중심보다 치유 중심이 되기를 바랐다. 배상의 성격을 띠는 소송에서조차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향해 배상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재범'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미 겪은 아픔과 지나간 사건에, 끊임없이 가해자를 미워하고 책망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시간만큼 소모적이고 낭비되는 시간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래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은 이러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추측해 본다.


3부 <치유>: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와 사회 전반을 치유할 수 있는 '정의 실현 회복'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7장 : 배상

8장 : 재활 - 가해자의 재활을 위한 극소수의 연구물

9장 : 예방 - 젠더 기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

 

개인의 '트라우마'가 수치심과 고립감을 낳는다면 회복은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것이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치료적 통찰이라고 한다. 3부에서는 피해자를 위한 배상 및 재활 시스템과 더불어 가해자의 재활을 위한 내용까지 담겨있다.

 

가해자가 과연 반성이라는 것을 할까, '정의'에 대한 관심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사실 들었다. 그러나 의외로 가해자를 위한 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가해자들은 실제로,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기도 하였고, 놀랍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인 피해자들 또한 존재했다. 이를 보며 우리 사회의 인간성이 극도로 상실되었다가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의 경중에 대해, 용서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번 책 안에 있는 인간의 실수 사례(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폭력 등)들은 사실 일반적인, 보편적인 사회적 관점에서 큰 실수에 속한다. 이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건을 겪은 이들이 다시 삶의 의미와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가해자는 과연 어떠한 태도로 바라보는 것이 옳은가,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 또한 우리 사회의 일원인데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옳은 방향일까 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은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정상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리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끔찍한 피해 사례들이 물림되는 것을 막는 것이, 앞으로의 더 나은, 더 건강한 삶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회복에 대한 답과 모델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의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기계처럼 정형화되고 명료한 원인, 결과, 답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구라는 한 공동체를 살아가는 전인류가 '관계의 평등과 정의의 중요성'에 대해 바라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조은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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