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의 성장에 관한 경이로운 통찰과 이해로 구현해낸 거장의 유일무이한 상상
글 입력 2024.02.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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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드디어 국내에도 개봉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그의 82년 인생을 쏟아낸 회심의 작품인 만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하야오는 일생 동안 지브리 스튜디오와 함께 아이의 성장을 그려냈다. 그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시선을 통해 마치 동화의 서사를 지닌 듯 하면서도 연륜이 전해지는, 현실감 있는 통찰과 회고였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그러한 능력이 오롯이 돋보였다.

 
 

1. 자신에게 진실되는 것, 성장

 

앞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아이의 성장을 담고 있다. 그 성장은 바로 진실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주인공인 소년, 마히토는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하다. 영화 초반에서부터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새엄마인 나츠코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는 부분, 엄마를 잃은 슬픔을 참으려는 부분 그리고 자신을 괴롭힌 학우들이 벌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아빠의 위치를 이용하지만, 아빠가 그만두길 바라기도 하는 모습까지. 마히토라는 이름은 ‘진실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마히토는 그렇게 자신처럼 거짓말하는 왜가리, 아오사기를 만나며 여행에 들어선다. 바로 죽었던 마히토의 엄마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실은 가짜라는 거짓말을 맞이하며. 여기, 여행 첫 장면부터 하야오 감독의 의중을 알 수 있다. 이는 하야오가 그동안 마히토가 벌인 짓에 대한 벌을 대신해서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마히토는 과거를 씻고 새롭게 도화지를 칠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말이다.

 

마히토의 앞에서 깨지는 붉은 장미의 꽃말은 강렬한 사랑이다. 아이의 성장에서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하야오지만, 그 사랑을 깨야할 만큼 이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 이야기의 첫 시작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펠리컨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다. 펠리컨은 모두가 와라와라를 먹는 점 때문에 나쁜 동물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마히토를 공격하기도 한다. 바깥 세상에서 마히토를 때렸던 그 학우들처럼.


그러나, 펠리컨은 마히토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들도 살기 위해 와라와라를 먹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마히토는 이 이야기를 믿는다. 무덤을 만들어주고 명복을 빌어준다. 재밌는 점은, 마히토와 닮은 아오사기는 이러한 마히토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넌 너무 착해’ 라는 말을 하며 말이다. 이를 마히토의 안에서 펠리컨을 믿는 자아와 아닌 자아가 충돌하는 것을 비유했다고 생각하면 흥미롭다.

 

어쨌든 여기서 마히토는 한 단계 성장한다. 세상이 뭐라 하든 스스로가 믿는 길을 택한다.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믿는 길임을 하야오는 말하고자 한다.


황금문 앞에는 이러한 문장이 써있었다. ‘나를 배운 자는 죽는다.’ 말 그대로다. 스스로를 믿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면, 거짓말을 일삼던 지난 날은 죽는 셈이다.

 

그렇게 마히토는 성장했다.

 

 

2. 가족을 이해하는 것, 성장

 

청소년기 시절에는 가족이 중요하다. 가족이 어떠한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느냐에 따라 자녀의 사고관은 달라진다.

 

마히토의 아빠인 쇼이치는 가족을 제외하면 돈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묘사되고는 한다. 전쟁으로 해군들이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로 인해 벌어들일 수익으로 웃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마히토는 그런 아빠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생각 이상으로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아빠 때문에 당황하기도 한다. 또한, 쇼이치는 엄마가 죽은지 얼마 안돼 재혼했다. 작중에는 안 나오지만, 엄마를 소중히 하던 마히토에게는 충격이었을 테다.

 

이러한 생각은 탑 안의 세계에서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바로 죽음의 바다다. 젊은 키리코는 이 바다에 떠다니는 배는 죽은 배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마치 바깥 세계에서 전쟁으로 죽어나가는 해군처럼.


그리고 이 바다를 이용해 돈을 버는 아빠, 쇼이치도 나온다. 바로 젊은 키리코다. 무슨 말이냐면, 젊은 키리코는 스토리 외적으로는 쇼이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의 행동거지다. 쇼이치처럼 젊은 키리코도 거침없고 당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전쟁의 바다에서 수익을 챙기는 쇼이치처럼, 키리코도 물고기를 잡아 돈을 번다. 또한, 마히토를 누구보다 아껴준다. 물고기 손질을 가르치며 삶을 알려준다. 나중에는 히미를 구해주기도 한다. 둘째로, 머리에 난 상처다. 마히토처럼 젊은 키리코도 이마에 상처가 나있다. 이는 둘이 닮았다고 의식하며 유대감을 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셋째로 히미와 함께 와라와라를 지키는 부분이다. 와라와라는 하늘로 승천하며 인간이 되는 존재다. 흰색 덩어리인 것이 어딘가 모르게 정자와도 닮았다. 그리고 펠리컨 무리들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엄마인 히미다. 탑이 하나의 자궁이고 와라와라가 정자라면, 히미와 젊은 키리코 즉, 아빠는 마히토를 낳기 위해 최선을 다해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히토는 젊은 키리코 곁에서 성장하고 보호받으면서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돌봐주는 할머니들에게 감사함도 느끼게 됐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를 직접 바라보며, 마히토는 결국 아빠의 진심은 가정과 자신을 먹여살리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세상의 이해만큼이나 가족끼리의 유대는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하야오 감독은 이 점을 강조하고 싶은 듯 하다.

 
 

3. 스스로 알을 깨는 것, 성장

 

하나의 관문을 거친 뒤, 마히토는 앵무새 군단을 만난다. 앵무새들은 마히토의 앞길을 자꾸 막아서는 존재로 등장한다. 왜 하필 앵무새일까? 추측컨대, 앵무새는 타인의 말을 따라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작중에서도 앵무새들의 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형태가 아니라, 왕을 모시는 형태다. 그러나, 주인공은 ‘모방’을 넘어서 세상을 스스로 구별할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을 기르는 중이다. 주인공의 성장을 막아서는 존재로서 딱이다.

 

앵무새들의 눈을 피해다니며, 마침내, 나츠코를 발견해낸 마히토는 나츠코에게 ‘너 같은 거는 싫어!’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이 생각하던 세상의 이면을 바라본 순간, 마히토의 선택은 뒷걸음질이 아닌 ‘엄마’라는 외침의 전진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마히토는 큰할아버지에게 후계자로서 선택받지만, 거부한다. 처음에는 돌에 악의가 들었다는 이유로, 두 번째에는 자신의 흉터가 악의의 상징이라며 말이다.


무슨 뜻일까. 우선 탑 안의 세계는 여러 가지로 비유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바깥 세계를 유지시키는 곳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돌로 된 탑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마히토는 이 돌에 악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바깥 세상이 악의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 귄력의 남용 등처럼 때로는 악의로 굴러가는 세상을 다스리기를 마히토는 거절한 셈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두 번째의 거절도 이해가 된다. 자신도 결국 그러한 세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학우들을 아빠의 권력으로 벌 주려 했던 지난 잘못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후, 돌은 깨지고 그렇게 탑은 무너진다. 어쩌면 큰할아버지는 결말을 알았을지 모른다. 히미에게 체념한 듯, ‘그 아이는 참 좋은 아이야.’ 라고 말한 부분에서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은 기존의 세상을 유지시키려고만 했을 뿐이지만, 마히토는 자신이 직접 바라본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존재라는 점을 알아버렸을 지도 모른다.


결국 마히토의 선택으로 인해 탑 안의 세상은 무너지고 히미는 자신이 죽는 미래를 알면서도 바깥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바깥 세계는 큰할아버지의 말처럼 망가졌을까? 히미는 마히토를 원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바깥은 멀쩡했고 히미는 ‘죽음이 뭐가 두려워. 널 낳는 건 기쁜 일이야’ 라고 말했다. 하야오 감독은 마지막까지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절대적인 진리 같은 것이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며, 때로는 진실이라고 믿는 것도 아닐 때가 있는 법임을. 이 사실을 매 순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임을.


이 이야기는 한 편의 꿈과도 같다. 기막히게도 왜가리가 말을 건낸 것도, 탑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마히토가 머리를 다친 후에 일어난 일이다. 어쩌면 정말로 꿈일 지도 모른다. 꿈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아오사기가 마히토에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야’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이 꿈이든 아니든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한낱 꿈이라고 여긴다면, 없는 일이 되는 것이지만, 현실이라고 믿는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렇게 관객에게도 묻는다. 마히토가 겪은 일은 모두 진실일까, 아닐까. 당신은 후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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