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버릴 수 없어서 버림받는 삶 - 검은 소년

글 입력 2024.02.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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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상과 윤유선의 부부 조합은 아주 익숙하다.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3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전 편 123회를 빠짐없이 보았던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캐스팅이었다. 시트콤에서도 온갖 풍파를 겪었던 부부인데, 이번 <검은 소년> 포스터만 봐도 이 부부에게 쉽지 않은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 경력이 상당한 배우들이기에 부부의 정극 연기도 기대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내상과 윤유선 부부의 연기에 압도당했다. 특히 안내상 배우의 하이퍼 리얼리즘 연기에 보면서도 깜짝깜짝 놀랐다. 주인공 ‘훈’ 역할의 안지호 배우는 과거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보여줬듯 10대 후반의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을 훌륭히 보여줬다. 내공 있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가 인상적인 <검은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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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 없이 홀로


 

주인공 훈은 사교적이지 않다. 학교에서도 같은 반 친구는 없고, 다른 반 친구인 병태와만 이야기한다. 점심시간에도 옥상에서 병태와 단둘이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이나 혼자만의 다이어리에 글을 쓴다. 선생과도 유대감을 가지기 어렵다. 학교라는 사회 내에 집중하기보다는 혼자만의 테두리가 더 견고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훈은 내적으로 복잡하기에 외적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유는 가족이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알코올에 의존해 살아간다. 아침에는 손수 아침을 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기까지 하지만, 밤이 되면 폭력성을 띤다. 엄마는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존재지만 아빠 몰래 연락해야 한다. 부모의 불화에 훈은 중간에 껴 새우등이 터진다.


훈에게 부모는 기댈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챙겨줘야 할 존재다. 폭력적인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간 엄마는 금전적으로 부족하다. 훈은 그런 엄마를 위해 몰래 모은 용돈으로 삼겹살을 사서 언제 볼지도 모를 엄마를 기다린다. 돈을 잘 벌지만, 아빠에게도 기댈 수 없긴 마찬가지다. 영화 후반부에서 ‘엄마랑 살자’며 집을 나오라는 엄마의 말에 훈은 아빠를 두고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아빠는 마음이 아픈 거야. 아빠를 두고 갈 수는 없어.

 


아빠도 자신이 보살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술에 취하면 부축해 줘야 하고 그리워하는 엄마에 대한 주정도 받아줘야 하고. 더군다나 아빠와 친밀한 관계도 아니다.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빠를 훈도 좋아할 수 없다. 그러나 훈이 원하는 것 역시 세 가족이 다시 함께하는 것이기에, 미워하는 아빠를 두고 좋아하는 엄마에게 마냥 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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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 되리라



보살핌을 받아야 할 가족 관계에서 훈은 홀로 버티기로 하며 괴로움을 느낀다. 설상가상 이런 훈을 학교에서도 괴롭히는 존재가 나타난다. 같은 반 기철. 기철은 질이 안 좋기로 소문난 소년이며, 양옆에 두 소년을 늘 끼고 다니며 힘을 과시한다. 기철은 아무 이유 없이 훈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건다. 하필이면 엄마와 전화할 때 쓰는 공중전화의 ‘동전’을 매개로 시비를 걸며 더욱 훈을 자극한다.


 
진짜 웃기더라.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한 거야, 그냥.
 


기철이 훈의 친구 병태에게 한 이야기는 자기 본인의 이야기였다. 검은 헬멧을 쓴 사람이 검은 봉지로 누군가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쳤다는 이야기. 그런데 넘어진 사람의 돈을 빼앗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도망쳤다는 것. 그저 괴롭히기 위해서 괴롭히는 사람. 목적 없이 그냥 훈을 괴롭히는 기철 본인을 의미하는 것이자, 실제 그 사람도 본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혀 나아질 것 없는 상황에서 훈은 단편소설에 자신의 마음을 적는다. 이왕 몰락할 거라면, 실패할 거라면, 파멸할 거라면. 정말 최악이 되리라. 이왕 자기 삶이 무너질 것이라면 최악의 내가 되리라. 할 수 있는 한 나도 끝의 끝을 가 보리라.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실패 속에서, 나도 내 선택으로 최악을 고르리라.


그렇게 훈의 선택지에는 버림받는 것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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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짐으로



훈은 속절없이 버려진다.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엄마에게 버려지고, 유일한 친구였던 병태에게 버려지고, 좋아했던 문학 동아리에서 버려진다. 설상가상, 첩첩산중, 화불단행. 안 좋은 일은 꼭 한꺼번에 오는 것처럼, 10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배신감과 박탈감이 몰려온다. 선택지가 꼭 절망밖에 남지 않은 삶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훈에게 쉼 없이 시비를 걸었던 기철이 등장한다. 기철은 병태가 훈을 버리게끔 종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힘의 권력을 이용해 병태를 찍어 눌렀고, 결국 병태는 힘에 굴복해 훈을 배신했다. 훈은 그런 병태를 이해한다고 말하며 먼저 병태를 찾아갔지만, 오히려 용서를 바랄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한 건 병태였다. 억울함과 허망함,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훈 앞에 나타난 기철. 그런데 기철은 훈에게 의외의 말을 한다.


 
우리 같은 애들은, 여기가 어울려.
 


‘여기가’ 어울린다고 했는지 ‘이런 게’ 어울린다고 했는지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어쨌든 의외다. 기철은 그렇게 훈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우리’라는 한 묶음으로 부른다. 어느 소속에서도 모두 버려진 훈에게 ‘우리’라고 소속으로 묶어준 사람이 기철인 것이다. 모두가 훈을 버렸는데, 훈을 가장 싫어하는 것 같던 기철이 그와 동일시한다.


그럼에도 훈은 기철을 등지고 걸어간다. 훈을 잡는 기철을 뿌리쳐 몸을 돌리고 걸어간다. 이 부분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는데, 몸을 돌린 순간부터 훈의 뒤에 기철이 사라진다. 그 상황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렸다면 무조건 기철이 화면 안에 걸렸어야 하는데, 훈이 걷는 순간부터 기철은 사라진다. 이제 그 이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훈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다고 느꼈다. 늘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기철같은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다른 선택지를 찾겠다는 마음.


그래서 마지막에 훈은 ‘아빠를 두고 갈 수 없다’던 과거와 달리 아빠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 이 영화에서 훈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자,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던 아빠에게서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벗어나는 선택이다. 내내 가족 내에서 감정을 참고 억압하기만 했던 훈의 첫 폭발이자 시작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국 아빠도 훈을 버린다. 그게 참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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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곱씹으며


 

영화를 보고 직후에는 내내 영화를 복기했다. 기철의 마지막 장면은 등장할 때부터 약간 환상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실제로 걸어가는 훈의 뒤로 기철이 보이지 않아서 더 그런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훈은 영화에서 늘 감정을 참는데, 유독 기철에게는 과민하게 더 드러낸다. 기철이 마지막에 훈과 동일시했던 것은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상처와, 그로 인해 내재한 폭발성 아닐까. 참지 않고 터뜨리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의 곧 터질 것 같은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에 공중전화에서 시작하는 장면도 좋았다. 거의 후반부에 다시 훈이 공중전화에 들어가길래, 수미상관으로 끝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추격씬이 뒤에 있었는데, 영화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 흥미로웠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했고. 결국 끝까지 버림받은 훈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어쩌면 가족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버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도 하고. 그럼에도 늘 버림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담고 싶은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잘 와닿는 영화는 아니었다. 나도 그랬지만, 다른 관객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방황하는 학원물에 익숙한 ‘데미안’ 언급이나, 연희와의 관계성을 굳이 넣은 것은 식상한 느낌도 있었다. 개그 코드도 좀 낡았고, 이야기의 디테일은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지만 결국 전개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아쉬웠다. 밀도도 좀 더 높았으면 흡입력이 더 높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연희라는 캐릭터를 넣은 것이 앞으로의 훈을 그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연희마저 없었으면 훈을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니까. 삶의 선택지가 버림받는 것밖에 없고, 절망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삶은 또 작은 하나의 불빛으로 다시 꽃이 만개하기도 하는 것이니까. 미숙하고 불완전한 10대에게 가정이 힘이 되어줄 수 없다면, 결국 같이 불완전한 10대만이 서로를 버티게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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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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