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의 곱하기! [만화]

글 입력 2024.02.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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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휴식 없이 살 수 없다.


에디슨은 하루에 잠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거짓말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전쟁 이후 필사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성장해왔으나 그 결과 자살률과 우울증 1위라는 부작용을 안게 됐다.

 

특히 무한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 이는 신체적인 휴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도 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휴식이 필요하다.

 

정신의 휴식은 기억이다.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 순간만큼은 고된 지금을 잊고 마치 VR 기계를 쓴 것 마냥 그리운 과거에 머무를 수 있다. 잊고 있던 냄새를 맡는다든가, 어릴 적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송을 듣는다든가 하는 아주 일상적인 도화선으로 떠오른 기억은 나를 갑자기 새로운 어떤 곳으로 이동시켜준다.


그러면 나는 찬찬히 나만의 속도로 그 시간 속에서 휴식한다. 그때만큼은 졸업과 취업 앞에 빌빌대는 돈 없는 23살의 대학생이 아니라, 하교 후 떡볶이와 용가리를 입에 쑤셔 넣고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11살의 초등학생이 된다. 어떤 날은 중간고사 날이면 학원을 땡땡이치고 노래방에 갔던 16살의 중학생이 되고, 기숙사에서 사감 선생님 몰래 컵라면을 데워 먹던 19살의 고등학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어린 기억을 건드리는 작품들을 특히 애정하나보다. 내 어린 기억들은 주로 학창시절이기에 미성숙하지만 선한 학생들을 다룬 작품들이 특히 나를 간지럽힌다. ‘만능유자차’ 작가의 <3x3!>은 이번 주 내가 새로이 찾은 ‘맡는다든가 학원 일상 성장물’ 웹툰이다. 수식어가 길어졌지만 요약하자면 시답잖은 중학생들 이야기라는 거다.




3x3!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가 되듯이, 이 웹툰은 세 명의 중학교 3학년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학교 최고의 ‘맡는다든가’이자 BL 동인지를 사랑하는 ‘민지’, 학교의 말썽꾸러기자 롹밴드 광인 ‘해인’, 마지막으로 학교 최고의 우등생이자 학교의 자랑 ‘지수’. 이 접점도 없을 것 같은 삼인방은 ‘유나’ 선생님의 등장으로 중학교 마지막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유나 선생님은 ‘미래가 답이 없는 학생들’을 뽑아 ‘진로활동부(진활부)’를 만들어 자칭 ‘교정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리고 뽑힌 세 명이 바로 민지, 해인, 지수가 되겠다. 이 동아리의 최종 목표는 함께 학교 축제에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을 올려 학교가 교육청 높으신 분들에게 ‘혁신 학교’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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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에 띄는 거대한 설정이나 에피소드가 없는 작품에서는 캐릭터의 매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학원 성장물은 인물의 내적 성장이 작품의 재미를 좌우하기 때문에 입체적이고 뚜렷한 캐릭터 설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3x3!>에는 악의 편에 선 사람이 없다. 한마디로 악역이 없다는 뜻이다. 사춘기의 폭풍에 다투고 싸우는 인물들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악당을 물리치거나 매도하는 ‘복수’의 형태를 띤 갈등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질투하면서도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걱정하고, 미워했다가도 반성하고, 툴툴대면서도 사과하는 서툰 청소년만 존재할 뿐이다.


남을 대하는 법에도 서툰 청소년들이니 스스로를 대하는 방법도 서툰 것이 당연하다. 극 중 민지는 소심하고 조용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만화 ‘다이논’에 대해서만큼은 대범하고 적극적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는 탓에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비웃으며 제 의견을 말하기 두려워한다. 해인은 겉으로는 밝고 활발하지만 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내막이 있어 힘들어한다. 가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등 상처를 능숙히 다루지 못한다. 지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보다도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우선해왔지만, 사실은 부모님이든 친구든 공부를 제외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어쩌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본 적 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민지 해인 지수는 각각 진로 희망서에 마구 지워버린 채로, 빈칸으로, 부모님께서 원하는 직업으로 적어서 제출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가 없는 아이들’이란 단순히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 찾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겠다. ‘나’를 알아가고 자아를 찾는 과정이 다름 아닌 성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성숙한 모습은 누구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알아왔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성인이 되어서도 답을 찾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나는 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을 외면하는 민지 해인 지수에서 나의 얼굴을 투영시켜 본다. 민지와 해인에게서는 어린 나를, 지수에게서는 지금의 나를 본다. 그리고 이 삼인방과 그 친구들이 자의로 타의로 얽힌 우당탕탕 중학교 생활을 보면서 내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일주일에 한 번 십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은 매주 새로운 추억을 되돌아보며 충분한 휴식을 얻고 지금의 고민을 위로받기도 한다.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분명 나와 같이 이 만화를 애정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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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만화와 웹툰의 경계선


 

이 웹툰의 또 하나의 매력은 이미지 그 자체에 출판 만화의 형식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출판만화와 세로형 웹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읽기 단위에 있다. 출판 만화는 여러 컷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두 페이지에 나누어 정렬되어 페이지 단위로 읽기 호흡이 나뉜다. 반면 세로형 웹툰은 컷과 컷 사이의 간격이 넓게 벌어져 한 화면에 하나에서 두 개의 컷이 보이는 것이 평균이다. 따라서 세로형 웹툰은 컷 단위로 읽기 호흡이 나뉜다.


<3x3!>에서는 교묘히 그 중간의 연출을 종종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컷 정도를 간격 없이 완전히 붙여서 연출해 마치 하나의 컷을 이등분하는 듯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크롤을 통해 연속적으로 시선이 이동되는 세로형 웹툰에서 나타내기 어려운 빠른 컷 전환 감각이 연출되었다. 두 장면이 짧은 시간텀을 두고 넘어가는 감각을 주면서 출판만화에서 페이지별로 분절적으로 읽히는 출판만화에서 가능했던 긴박함이 세로형 웹툰에서도 조성되었다. 이를테면 민지가 해인에게 비밀을 들켜 혼잣말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면을 빠른 호흡으로 전개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의 컷 모양에서 벗어나 출판만화와 같이 사선으로 컷을 분할하고, 선화 펜을 연필 질감으로 사용하는 점과 배경 이미지에 초록의 수채화 질감을 합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디지털 드로잉의 감성을 덜어냈다.


그렇기에 본 작품의 댓글 창에서는 유난히 ‘출판 만화 느낌이 난다’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스토리 외적인 부분에서 출판 만화의 클래식한 매력을 살림으로써 <3x3!>만의 감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감성은 독자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청소년기의 푸릇푸릇하고 투박한 분위기를 그림에서부터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어려서부터 출판 만화를 즐겨 읽어왔던 나에게는 그 효과는 훨씬 강력했다. 자아를 찾는 성장 이야기와 출판 만화를 닮은 이 작품만의 독특한 감성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의 시너지를 창출해냈다. 민지와 해인과 지수가 만나 각자와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쌓아나가듯이 말이다. 곱절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중학생의 이야기와 클래식한 만화의 매력에 폭삭 젖어들고 싶다면, <3x3!>을 읽어보길 바란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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