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을 두고 바라보며 - 천천히 걷기展 [미술/전시]

마음에 여유를 채운 어느 하루
글 입력 2024.01.2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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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왔다.

 

결국은 평범한 하루가 이어지는 날들이라고 해도, 마무리와 시작의 시간을 보내는 시기가 되면 공연히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큰 설렘도 없이, 사실 심란한 느낌이 더 크게 자리한 채로, 다시 나는 온전히 다 이루지 못한 작년의 계획을 돌아본 후 또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며 새로운 계획들을 세워본다.


대체로 이전과 비슷한 항목들로 다시 채워진 계획표를 보고 있자면 더 바쁘게 살아가야 할 내일의 내가 떠올라 순간 아찔해진다. 계획한 것들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쉬어가는 순간도 필요하다.

 

당장 무언가를 해내거나 성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면의 잔잔함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추는 것, 최근에 관람한 한 전시회가 내겐 그런 시간 중 하나였다.


지난 12월 13일부터 1월 11일까지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린 "천천히 걷기"는 6명의 동양화가들이 참여한 단체 전시회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일상의 순간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명의 작가 각자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일상의 사물이나 풍경이 담긴 그림들을 통해 내 일상에서도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을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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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을 들어서면 바로 관람객들이 마주하는 작품은 김나현 작가의 그림들이다.

 

“사랑이라고 감각한 순간들을 그린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김나현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양화의 수묵 기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색채와 화법을 통해 전통적으로 떠올리는 동양화의 이미지보다는 추상화 같다는 감상을 자아낸다.

 

분채, 석채 등 전통 안료를 혼합해 다층으로 겹쳐 올리며 완성한 작품들은 그 작업 과정처럼 일편적이지 않고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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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이계진 작가의 “소금산수” 작품들이 자리한다.

 

먹과 아교, 소금을 섞어 작품 표현에 활용했다는 그의 “소금산수” 그림들은 동양화에서 주로 보이는 여백의 미가 돋보이면서도 새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 작품에 입체감과 복합성을 더하고 있다.

 

“먹과 소금을 활용한 다양한 삶의 현장 포착”을 주제로 하는 이계진 작가의 작품들은 그 말처럼 수묵화를 완성하는 일반적인 재료에 독특함을 더해 평범하면서도 특별함이 담긴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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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과 장소 특히 누군가의 소유였던 것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한 박현욱 작가는 타국에서의 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장소에서의 순간들을 화폭에 담았다. 평범하면서도 삭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어느 사무실의 풍경, 창틀 너머 어렴풋한 바깥의 모습까지, 수묵 기법으로 그려진 순간들은 평범하면서도 새로우며, 차분히 관찰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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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민 작가는 기억 속의 풍경을 목판에 새기는 방식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갤러리에 자리한 ‘네모난 가로수가 있는 거리’, ‘모네 모네 모네’, ‘정원으로 가는 길’ 등은 그가 어딘가에서 마주한 풍경을 목판에 새긴 것이다. “정신과 물리적 힘을 동반한 모든 집중력이 목판으로 향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눈에 담긴 풍경과 그로 인한 기억은 목판을 새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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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호 작가의 그림들에는 어두운, 검은 배경에 하얗게 자라난 목련과 나무가 그려져 있다.

 

다른 색 없이 하얗게 피어나고 자라난 것들을 그린 작가는 “누군가는 흘려보냈을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로 담아 나만의 시각과 순간의 감정을 그려낸다.”라며 “각자의 소중했던 순간과 각기 다른 시간대를 상상하도록 하기 위해 흑백을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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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밝은색이 담긴 그림들이 여럿 보인다.

 

컵 안에 담긴 식물, 꽃을 그려낸 김다운 작가는 “오늘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환기하고 내가 집중한 오늘이라는 공감각적 시공간에 집중한다.”라고 하며 주어진 하루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그 집중의 시간에 작은 정원과 같은 꽃과 식물을 그려냄으로써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각각의 색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떤지, 관람객들에게 제안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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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제목은 “천천히 걷기: TAKE YOUR TIME”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걸으며 동양화라는 주제로 한데 모였으나 다른 방식으로 삶과 일상을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백의 미라는 동양화의 특징과 더불어 각 작품에서 담고 있는 다양한 색채와 화법이 함께 전달되며 마음에 편안함과 세상의 다른 풍경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빠르게 흐르는 날들 속에서 분주하게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거쳐야 하지만, 새로운 한 해에는 마음에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는 순간을 더 갖출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스치는 평범하고 작은 것들의 색채에도 더 눈길을 줄 수 있는 매일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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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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