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희망의 집에서, 늘 좋았습니다” - 뮤지컬 딜쿠샤

글 입력 2023.12.2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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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동극장] 딜쿠샤_포스터(12.7-30).jpg

 

 

뮤지컬 「딜쿠샤」는 실존 역사를 모티브로 상상력을 더해 만든 이야기다. 딜쿠샤는 근대 시기 영국인과 미국인 부부가 조선의 경성에 정착하며 지은 주택, 더하여 이름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특별한 역사를 간직한 집이다. 뮤지컬 「딜쿠샤」는 100여 년 가까이 있어오는 동안 이 오래된 주택에서 머물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막이 오르면 ‘DILKUSHA1923 PSALM CXX VII, I’라는 글자가 스크린에 띄워진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어감의 ‘딜쿠샤’는 힌두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이며, 암호처럼 보이기도 하는 앞선 문구는 1923년 딜쿠샤의 정초석이 세워질 때 부부가 써놓은 것으로 딜쿠샤1923 그리고 「시편」 127편의 1절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딜쿠샤가 가족을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를 소망했던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진 듯, 딜쿠샤는 부부가 떠난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들이고 또 떠나보내며 희망과 사랑과 이별, 역사를 한 데 품은 집이 되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2).jpg

 

 

이야기는 무대의 양옆 끝에 위치한 두 노인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노인 ‘브루스 테일러’는 딜쿠샤를 지은 부부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의 아들이며, 딜쿠샤에 살고 있는 또 한 명의 노인 ‘금자’는 유년기부터 쭉 한 생애를 딜쿠샤에서 보내온 가상의 인물이다. 브루스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노인이 된 후에도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딜쿠샤를 그리워하며 금자에게 테일러 가족이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실제로 테일러 부부는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된 이후에도 내내 딜쿠샤를 그리워했으며, 해방 이후 돌아올 방법을 찾던 중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앨버트 테일러는 그의 바람대로 조선 땅의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들이 이방인으로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 마을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낯선 외국인이 서양식 주택을 짓고 살게 될 거라는 소문이 돌며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끝에는 부부와 브루스 테일러가 좋은 기억을 갖고 떠났다니, “집이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상상력의 산물이다”라는 메리 테일러의 말처럼 어떤 시절의 생활의 기억이 묻어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특별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1).jpg

 

 

금자는 과거엔 딜쿠샤가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말한다. 인왕산 언덕 위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이는 붉은 벽돌집, 으로 묘사되는 딜쿠샤는 당연하게도 동서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되었으며,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뮤지컬에서는 무대의 구조에서 이러한 주택의 형태를 살린 듯했다. 현재 시점의 금자가 있는 무대의 한쪽은 오르막길로 높게 위치해 꼭 딜쿠샤의 2층에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편지를 적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반대편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브루스의 뒤로는 그가 사는 바닷가가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중앙 무대에도 대각선으로 뻗은 길을 중심으로 층을 두어 인물들이 뛰어내리고 또 다시 오르면서 생동감 있는 움직임과 연기를 펼쳤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5).jpg

 

 

또 「아리랑」은 초반부터 중요한 주제를 전달하는 음악 중 하나다. 딜쿠샤는 1924년 완공 되었고, 뮤지컬의 시점은 1919년부터 1930년, 1948년, 1988년, 2006년 등 시간순으로 흐른다. 따라서 일제 강점의 시기와 한국 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되는데, 「아리랑」의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노랫말을 비롯한 아픔과 한의 정서가 주요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금자는 집도 없고 나라도 없었지만, 딜쿠샤에도 똑같이 햇빛이 내리는 것을 보며 잃었던 희망을 찾았다고 말한다. 또 한국전쟁 때에도, 서울에 사람이 몰려 개미 마을이라 불렸다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딜쿠샤에는 둥지를 트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다. 특히 붉은 조명과 사이렌, 폭발음 가운데 변하지 않고 딜쿠샤가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축약한 100여 년의 세월의 짙고 깊은 나이테를 감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 실내가 복원되고 재현이 되어 이러한 이야기를 공간으로, 또 뮤지컬로 함께 공유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실제로 브루스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날 당시 만세 운동을 위한 독립선언문이 메리의 침상 아래 숨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연합통신사의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하던 앨버트는 그에 대한 기사를 작성해 통신사 본사에 알렸으며, 이후 제암리 학살 사건을 국외로 알리기도 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3).jpg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9).jpg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집은 사생활의 무대이자 기억의 핵심으로, 우리의 상상력이 머무는 근본적인 기억의 장소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딜쿠샤」는 딜쿠샤의 실제 역사에서 의미있는 분기점들을 기준으로 삼으며 시대와 문화를 보여주면서도,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의 의미를 함께 그렸다. 집은 누군가 살다 떠나는 곳, 또 떠난 자리에 새 식구가 찾아오는 곳, 오고 감의 반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집은 꼭 삶, 그리고 딜쿠샤가 감각하게 한 아주 긴 세월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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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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