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음악과 집을 통해 얽히는 한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 뮤지컬 '딜쿠샤'

글 입력 2023.12.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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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터미널에서 3시간 30분, 도착한 곳에서 다시 1시간 30분을 들어가면 우리집이 나온다.

 

내 기억에서 이곳은 우리 가족이 세 번 이상의 이사를 거치고 마침내 정착하게 된 곳이다. 약 15년 전 우리 자매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졸업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번가른 투병생활도, 첫 기고, 첫 취업도 모두 함께했다. 최근에는 어미 잃은 고양이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이처럼 '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절대 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다. 최근 국립정동극장에서는 '집'과 관련된 뮤지컬이 막을 올렸다. '딜쿠샤'가 그것이다.

 

 

 

# 음악을 통해 얽히는 한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딜쿠샤'는 1919년 3.1운동에 쓰인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처음 지은 집이다. 앨버트 테일러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추방당한 후에는 다른 주인들의 손을 거쳐 국가에 소유되었다.

 

그러나 여러 현대사의 굴곡을 거치며 오랜 시간 방치되어 훼손되어 빈민들이 판자집을 이루고 살기도 했다. 최근 2021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현재는 3.1운동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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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이 딜쿠샤가 가장 높은 곳에서 혹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90년의 시간을 두 노인의 삶에 빗대어 잔잔하게 풀어나간다.

 

금자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전투 중 생사를 알 수 있게 되고 금자 할머니의 어머니는 '딜쿠샤'에서 빨래와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어릴적부터 밝은 성격이었던 금자 할머니는 늘 '딜쿠샤'의 마당에 있는 큰 은행나무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 보곤 했다. 현재는 은행나무가 잘 보이는 딜쿠샤의 2층 방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앨버트 할아버지는 1919년 3월 1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난다.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딜쿠샤'에서 보낸다. 특히, 앨버트 할아버지는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현재 순자 할머니가 살고 있던 방의 원래 주인이었다.

 

이런 두 사람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펜팔 친구가 되고, 편지가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갈 때마다 세계사와 한국사, 그리고 이 집에 얽힌 개인들의 미시사가 잘 얽힌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7).jpg

 

 

 

# 가장 높은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지켜내는 아버지로서의 '딜쿠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성장기는 사춘기가 끝나는 만 24살까지라고 본다. 이때, 앨버트 할아버지와 금자 할머니는 각각 '딜쿠샤'의 성장기와 그 이후를 담당한다.

 

잠시 언급했듯이, 앨버트 할아버지는 딜쿠샤의 성장기를 함께 한다. 이 시기는 딜쿠샤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때였다. 극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 위치로나 지위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매일매일 파티가 열려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일제도 쉽게 건들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 정세가 변화하며, 딜쿠샤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앨버트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은 후 미국으로 추방당한다. 그의 아내는 딜쿠샤에서 6개월 이상 딜쿠샤에서 갇히게 된다. 앨버트 할아버지는 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되며 함께 살을부비며 지냈던 동네 친구들과 적으로 만나게 된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5).jpg

 

 

위기에 처한 이 푸른눈의 가족들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같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딜쿠샤는 이들도 식구로 맞이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가택연금 중인 메리부인을 위해서 집앞에 식재료를 두고 가기도 하고, 앨버트 가족이 집을 두고 떠나는 날에도 상복을 입고 곡을 해준다. 이러한 정에 감동한 앨버트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후 한국 땅에 안치된다.

 

이때, 전통 민요 '아리랑'을 테마로 만들어진 넘버들이 중심이 된다. 세 박자 민요조의 곡은 라이브 밴드의 반주를 통해 고전적인 춤곡이나 유재하식 발라드로 변신한다. 무명천을 활용하는 안무가 특징인 넘버는 특히 애절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1).jpg

 

 

 

#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어머니로서의 '딜쿠샤'


 

앨버트 할아버지가 유년 시절 딜쿠샤에서 보낸 나날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면, 금자 할머니는 유년 시절의 꿈이었던딜쿠샤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특히, 가장 높은 곳이었던 딜쿠샤는 6.25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며 언제 불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도시 빈민들의 쉼터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딜쿠샤의 전선과 외벽을 뜯어 팔고, 내부에 마구잡이로 가벽을 세운 뒤 무단으로지내기도 한다. 짧지만 찬란했던 성장기는 지났지만, 딜쿠샤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지킨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3).jpg

 

 

이때 극은 딜쿠샤를 마치 한 사람의 성인처럼 표현한다. 특히, 초석에 쓰인 성경구절에 빗대어 신이 인간을 위해 내려준 예수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에게 피와 살을 내어주고 모두를 위해 품을 내어주는 이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씩씩하고 굳세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금자 할머니, 더 나아가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모성을 닮았다.


앞 선 넘버들이 우리 민요 가락을 테마로 만들어졌다면, 이 시기에는 각각의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들로 채워진다. 6.25시절의 군가 ’전선을 간다‘부터 이후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스윙,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트로트까지 이어지며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역시 금자 할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 앨버트 할아버지와 재회하며 나오는 넘버이다. 앞서 언급한 메인 테마가 극에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들의 사연과 사정에 맞게 편곡된다. '모두가 참 예쁜 사람'이라는 금자 할머니의 말버릇처럼 딜쿠샤와 함께한 모든 이를 주목하는 연출이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9).jpg

 

 

 

# 글을 마치며,


 

<딜쿠샤>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리뷰를 작성하며 시체 관극이 여러 차례 회자되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시체 관극은 소극장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미동없이 앉아 관람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 잡지 기자의 리뷰가 화제가 되어 이 문화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사실, <딜쿠샤>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와 함께 관람했다. <딜쿠샤>가 공연한 국립 정동극장은 이전부터 지하 깊이 위치해 있고, 무대의 높이가 높아 앞자리 관람이 힘들고, 좌석이 앞뒤로 좁아 불편하기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친구에게 '조금 불편해도 참아라', '뮤지컬 문화가 원래 그렇다', '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뒷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부터 고비였다. 극장 안은 어둡고 층계가 많았지만, 지탱할만한 난간이 없어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뮤지컬을 관람할 때에도 불편한 자세로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다. 친구는 뮤지컬을 마치고 난 후에도 그 자리에서 다리를 마사지 하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금자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어린시절을 노래하는 넘버에서나 앨버트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넘버에서도 자유롭게 웃거나 울지 못한 건 덤이었다.

 

그런데, 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관객들의 참여가 필요한 공연이 정말 많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시체 관극은 비싼 티켓값이 만든 소비 권력의 일종아닐까?

 

 

[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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