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왜 벌써 12월

연말이 두려운 한 사람의 외침
글 입력 2023.11.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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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자리한 핫팩, 두꺼운 패딩으로 인해 둔해진 움직임, 조금씩 존재감을 보이는 하얀 눈, 건물을 장식하기 시작하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장식품, 그리고 하나둘 캘린더에 새겨지는 송년회라는 이름의 약속. 연말이다. 부정할 수 없는 연말이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연말을 실감할 때쯤엔 늘 한해를 돌아보며 자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연초에 세웠던 야심 찬 계획을 전부 달성하지 못했다는 식상한 후회와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슬픔과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경이로움 등 여러 감정이 한데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늘 그랬듯이. 이 싱숭생숭한 마음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나타나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곤 다. 1년이란 시간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은 내가 꼭 무너지는 꼴을 봐야만 종적을 감췄으니까.

 

난 이래서 연말이 싫었다. 후회로 뒤범벅된 연말보다는 남은 기간의 설렘으로 가득한 연초가 좋았다. 12월을 코앞에 둔 지금, 매년 12월을 두려워했던 나는 올해 연말만은 조금 밝은색으로 칠해보려 한다. 100% 완벽할 순 없지만, 마냥 부족하지만은 않았다고.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고 스스로 다독여 보려고 한다.

 

올 한해는 좀 특별한 일이 많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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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올 한해 나에게 가장 큰 일은 상경을 한 것이다. 이건 아마도 올해 가장 큰 일을 넘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이슈로 남을 일이다. 생에 첫 자취와 동시에 오랜 상경의 꿈을 이루었던 2023년의 4월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서울에서 맞는 첫 번째 봄은 꿈을 좇는 한 사람의 설렘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서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기서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올라 뭐가 된 기분에 들뜨곤 했다.

 

그다음은 정말 많은 인연을 쌓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 해에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 보통 학교를 입학하거나 동아리에 들어가거나 입사하거나 등 새로운 한 집단에 소속되면서 새로운 인연을 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거기다 졸업 이후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연을 쌓는 속도는 어린 시절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난 이 통상적인 공식을 보란 듯이 어기고, 약 6개의 경로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많은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겼다는 건 신기한 일이 확실했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징조였다.

 

그리고 그 징조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단 걸 이제 인정한다. 서울에 올라가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자극도 받고,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고,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테니 분명 곧 취업할 수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상경 초까지만 해도 난 정말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엔 여름 전에 하겠지, 그다음은 여름엔 해야지, 추석 전에는 해야 하는데, 올해 안에만 하고 싶다, 내년 초에는 나 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기간은 자꾸만 뒤로 미뤄졌고, 올라가기만 하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은 전부 내 오만이었다.

 

이젠 본가에 내려가는 일이 괜한 걱정이 되었고, 이내 가족들을 향한 미안함으로 변모했다. 복받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쓰는 이 순간에도 온전한 착각이 부디 착각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미련을 보이면서.

 

*

 

또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보란 듯이 1년은 지나갔다. 누구보다 알차게 보낼 거라는 약속을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어기진 않았다는 확신은 있다. 나는 늘 그랬다. 무언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는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해 찝찝한 연말을 보냈던 것 같다.

 

올해에는 찝찝함을 물로 씻어내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믿으며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말라고.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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