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바라다 - 삶이라는 고통

글 입력 2023.11.0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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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사진작가,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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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이것이 처음 책의 설명으로 보았던 문구였다. 그가 단순한 사진작가가 아니라 가수라는 건 사진집에 적힌 글들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가수가 아니라 한국 포크-록 음악의 대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가수였다는 건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해보며 처음 알았다.

 

한대수는 한국에서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등 여러 곡을 선보인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였으나 그의 음악들이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후에는 뉴욕으로 건너 가 상업 사진가 일을 시작했다. 뉴욕의 한 수의대학을 중퇴하곤 서울에선 음악을, 뉴욕에선 사진을 시작하는 등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인생을 살았다.

 

1960년대 처음 카메라를 쥔 순간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고 부지런하게 담아낸 그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펴낸 게 바로 이번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이다.

 

 

 

필름 사진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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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에 하루 종일 처박혀 현상하고, 필름을 말리고, 인화하고, 교정하고 할 필요도 없이, 0.5초도 안 되어 완벽한 사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너무 헤프다. 너무 정확하다. 노력 없이 쉽게 얻은 이미지라 고귀함이 없다. 인간의 영혼이 안 보인다. 차갑고 냉정하다. ...(줄임)... 필름 이미지는 아웃라인이 매끄럽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과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그때 내가 쏟아부었던 피와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

 

-12p.

 

 

<삶이라는 고통>은 그가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던 흑백/컬러 사진을 엮은 사진집이다. 지금까지 공개한 적 없던 미공개 흑백/컬러 사진 100여 점을 통해 1960-70년대 서울의 모습부터 그가 주로 활동했던 뉴욕의 모습까지 선보인다. 그는 손쉽게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한 장 한 장 온 힘을 들여 셔터를 누르는 필름 사진의 매력을 강조한다. 

 

실제로 컷 수가 정해져 있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있다. DSLR로 사진을 찍을 땐 100장 중 하나를 건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손쉽게 셔터를 눌렀는데 필름 카메라는 한 장 한 장 소중하다 보니 숨까지 참아내며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촬영한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인화되기까지 찍힌 사진을 확인할 수 없어 묘한 기대감을 주는 것 또한 필름 사진만의 매력이다. 투박하고 느리지만 정성과 노력이 가득 담긴 그의 필름 사진들을 확인해 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삶이라는 고통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주 흉측한 베트남 전쟁이 전 지구상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줄임)... 우리는 음악과 예술과 지식으로 아이로니컬하고 잘못된 사회를 고치고자 했다. 전지구인이 평화 속에서 사랑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외쳤다.

 

- 19-20p.

 

 

한대수는 삶을 고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삶이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이 세상에 펼쳐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과 부조리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저기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다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전쟁, 모든 종류의 폭력은 한대수가 삶을 고통이라고 이야기하게 만든다. 

 

사진집의 2부와 3부에는 이러한 그의 생각과 시선이 잘 담긴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홈리스와 거리의 악사처럼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했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들의 모습을 담았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홈리스를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의 무심함과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홈리스의 존재에 대해 정말 슬프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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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 홈리스 시리즈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하나의 풍경처럼 지나쳐 온 존재가 선명히 인식되는 순간이 담겨 있어서 그렇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문구의 팻말을 들곤 자리한다. 거리의 악사들 또한 비슷하다. 누군가는 기타를, 누군가는 아코디언을 품에 안고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든, 멈추지 않든 그들의 노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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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마냥 비관과 회의에 빠져있지 않다. 이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끈질기게 평화를 외치는 히피들의 존재에 주목한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지난 봄날의 꿈이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사랑과 평화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는 이런 믿음을 놓지 않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때로는 개인으로, 때로는 단체로 "NO WAR"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저자는 딸 양호가 태어나고 앞으로 그가 살아갈 미래, 즉 인류가 살아갈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야기한다. 수많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앞으로를 살아갈 아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그의 우려처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속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지금,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엔 그가 75년 인생 동안 여러 상황을 마주했어도 끝끝내 사랑과 평화로 회귀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느리고 투박하더라도 자신만의 시선과 메시지를 담은 그의 사진들을 보며 사랑과 평화를 되뇌게 된 밤이었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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