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뒤로, 전진! [문화 전반]

'퇴고'의 속성
글 입력 2023.10.2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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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하다’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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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아트인사이트에 기고 글을 쓰며 퇴고를 하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글을 처음 써보기 시작할 무렵, 가장 먼저 발을 딛었던 곳은, 다름 아닌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첫 플랫폼으로 선택한 이유는, 부담스럽지 않게 내 생각을 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는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며 사소하게 모아본 하루하루의 기록에 불과했다. 또 글과 익숙해지기 위해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일기장이었기에 가끔 오타가 있거나 비문이 있어도 크게 수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디터가 되고 난 후로부터 수없이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서 ‘에디터’로 기고하는 글들은, '에디터'라는 주어진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어 꽤 신중한 마음을 담아 적어 내려갔다. 주제를 선정하는 데에도, 초안을 작성하고 수정을 거쳐야 하는 데에도 시간도 걸렸다. 이에 더하여 오탈자, 비문 등 ‘혹시나’하는 마음에 꼼꼼히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정신이 지친 것인지, 눈이 글에 익숙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으면 수정할 것 없는 완벽한 글처럼 느껴지곤 한다. 여러 번 훑어본 글에 호기롭게 ‘이 정도면 출력해도 되겠다!’를 속으로 외치며 제목 앞 [기고 중]을 커서로 슥슥 지웠다.

 

글을 쓰는 행위에서 퇴고를 마쳐도, 퇴고는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내가 써 내려갔던 글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그때 만족했던 글들을 되돌아보니 왜 항상 2%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다시 만난 내 글에는 가끔 논리가 맞지 않다거나 비문, 오탈자가 숨어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을 알아채지 못한 과거 내 모습에 대한 속상함과 알 수 없는 수치심이 함께 몰려온다.

 

그런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글을 쓰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이 콘텐츠를 접했을 땐 어땠나’, ‘다소 지루하진 않았나’. ‘이 일화에서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 등 지난 날들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더듬는다. 또 이전보다 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기고 글을 작성하기 위해 수없는 고민과 다짐을 거듭한다.

 

글쓰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반추하는 과정이 어쩌면 내겐 글쓰기의 퇴고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생각하며 고치고 다듬는 퇴고의 과정처럼,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그것에서 오점을 바로잡아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을 나선다. 그렇게 여는 새로운 아침에는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다. 그 기분은 이른 아침 갓 지은 밥처럼, 또 글처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스함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보자면 퇴고의 다른 말은 ‘성장’인 것 같다. 방향성을 잃은 모니터 속의 커서가 오른쪽으로 줄곧 움직이다가 다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떠올려본다. 지나왔던 왼쪽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후퇴라는 말은 아니다. 배영은 뒤로 나아가며 앞으로 향하는 수영 종목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때로는 뒤로 나아감도 전진한다는 말과 동일하니까. 글과 일상 속 모든 퇴고의 갈팡질팡함이 결코 앞과 뒤를 가르는 게 아닌 것이 꼭 마음에 든다.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떻게 글을 만나게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글이 내게 편견 없는 나아감을 가르쳐주었기에 그 힘을 믿고, 뒤로 나아가보려 한다. 힘껏, 뒤로 전진!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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