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함 속의 아름다움 [전시]

글 입력 2023.10.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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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로운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었다.

 

예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에 우리의 대화는 빠르게 전개되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깊어졌다. 왠만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보다 더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좋아하는 책을 물어본다.


좋아하는 예술가가 누군지에 대한 질문보다 훨씬 어렵다. 살면서 멋진 전시를 보거나 마음에 와닿는 작가를 알게되면 그것에 대해 으레 글을 쓰곤 했는데, 책을 읽고 글로 남긴 적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을 오래 잡아두는 일이기도 함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생각이 날때까지 다른 주제로 한참 이야기하다보니 하나 둘씩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정말 와닿았던 (거의 일기와 같은) 소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문체를 가진 작가, 그리고 읽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시까지 모두 생각났다.


나는 보들레르의 '시체'라는 시를 좋아한다.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처음 그 시를 읽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이후 시간이 흐르고 그 시를 다시 읽기를 여러번, 나의 반응은 처음 그때와 거의 달라진게 없다. 최근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그 시를 설명해주다 또다시 울고야 말았다.


그런 특별한 시를 이 친구에게 소개했다. 그녀는 구글에서 바로 그 시를 검색해보았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입을 연 친구는 의외의 감상평을 남겼다.

 

바로 현재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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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에서는 빨갛고 시커먼, 거대한 실리콘 덩어리들이 공간을 압도한다.

 

도대체 어떻게 제작을 했으며 무슨 수로 운송을 했고, 저렇게 무거운 작품이(작품당 족히 500-700kg은 된다고 한다) 어찌 공중에 떠있을 수 있는지. 보는 순간 너무 많은 질문이 떠오르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카푸어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넋을 잃는다는 말이 가장 절묘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로테스크하고 징그럽고 과하고 너무도 거대한 와중에 한편으로는 아름다워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의 시는 썩어가는 어떤 시체를 보며 나의 연인의 육체 또한 언젠가는 이렇게 부패할 것임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본질은 영원히 남을 것임을 노래한다.

 

내장을 비롯한 신체의 일부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은 삶과 살아있음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의 신체와 그 안의 조직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답지 않아 많은 곳에서 터부시되고, 눈을 마주쳐 응시하기 힘들만큼 징그럽기도 한 이 장기들 없이는 생명도 존재할 수 없기에 그 추함 속에 고귀함이 있는 것이다.

 

나의 새로운 친구는 어떻게 이 시를 접하자마자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을 떠올렸을까?

 

곱씹어볼수록 감탄만 하게 된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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