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를 찾아가는 여정

글 입력 2023.10.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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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글


 

오래도록 글을 써왔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잔상과 사유를 텍스트로 옮기는 일은 항상 즐거웠다. 그렇게 글을 사랑했던 나는 자연스레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고, 국어국문학과이기에 글을 쓸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됐다.

 

 

아트인사이트 사진1.jpeg

 

 

쓴 글은 점차 쌓여가는데, 정작 그 안에 나는 없다는 사실을. 그동안 특정한 목적에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기계처럼 활자를 찍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그 기점 이후로 나는 그동안 내가 글과 함께 해 온 지난 궤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텐데, 언제부터 주인 없는 글을 붙들어 온 것일까.

 

그렇게 진득이 되묻는 동안 불현듯 처음 교내 독후감 대회 장려상을 수상했던 순간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 뿌연 기억을 좇고 붙잡았다. 담임 선생님이 이름과 상장에 적힌 내용들을 읽으실 동안 나는 교탁 옆에 머쓱하게 서 있고, 이를 아이들이 지켜보던 풍경이 뜰채에 걸렸다.

 

직접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 그때 내 볼은 무척 발그스름했을 것이다.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반에서 주목받을 일이 없던 적당히 무난한 아이였기에. 금상도, 은상도 아닌 장려상이었지만 더한 이벤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당시 나에겐 큰 자극을 준 사건이긴 했나 보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목적에 압도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담임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 일기장에 없던 소동을 부러 지어 내고, 백일장 대회가 개최될 때면 나에게 유의미한 글보다는 타인, 특히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는 데 주력했다.

 

그 정도는 사실 인정과 칭찬을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정도의 귀여운 위선이지만 문제는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그러한 심리가 나를 줄곧 지배했다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글


 

특히 고등학교 3학년, 재수생 시절은 한창 논술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했던 지라 또 다른 결로 나는 글 앞에 복종해야 했다.

 

아마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입시를 치뤄본 적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하겠지만, 대입 논술은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시험이다. 심지어는 대학별로 선호하는 글의 플로우, 단골 주제 같은 것도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답안은 변별력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고, 대학별 취향은 학교 또는 학과에 적합한 인재상을 추구하는 명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방식에 불만을 갖는 것은 전연 아니다.

 

다만 내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내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채점자의 구미에 맞게 글을 쓰는 법을 훈련했던 그 시기에 도리어 내 생각, 내 주장을 말하는 능력은 오히려 퇴화되었다는 것이다. 매 첨삭을 받을 때마다 원고지 위에 덧칠해진 붉은색의 취소선과 엑스 표시는 나를 위축시켰다.

 

종반에는 열심히 모범 답안까지 암기하고, 대학별 작문법을 달달 익힌 후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 이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수상을 위해,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글을 썼다면, 대학생이 되어서는 장학금을 위해, 그 이전에 우수한 학점을 받기 위해 내가 없는 글을 줄곧 썼다. 나는 여전히 칭찬과 인정에 복무하는, 몸만 자란 어른 아이였다.

 

 

 

‘나’를 찾기 위한 글


 

이렇듯 글과 함께 해온 역사는 길지만 정작 한 번도 허물을 벗고 내 속마음을 꺼낸 적은 없다는 생각에 나는 회의에 빠졌다.

 

그렇게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어느 날, 습관적으로 접속하는 대외활동 사이트에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문화 예술을 애호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것, 명확한 답이 아닌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의 플랫폼이라는 것에 나는 내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창구가 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바로 지원하게 됐다.

 

서론이 길었지만 결국 이전처럼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탈 목적적인 글을 처음 써보기 위해 에디터에 지원하게 됐다는 게 요지다.

 

그리하여 에디터 합격 메일을 받고 약 4개월간의 활동이 막바지를 향해 가는 지금, 초심을 잃지 않고 성공했는지를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쥐고 완성해 본 경험이 축적되었다는 것. 일상 속에서 논해보고 싶은 소재를 직접 선정하고, 그에 대한 감상 내지는 견해를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전과는 달리 보이는 것도 있었고, 새삼 깨닫게 된 것도 많았다.

 

현시점에서 그동안 기고한 25건의 콘텐츠 모두가 탈 목적적인지, 그러니까 온갖 목적으로부터 해방된 날것의 것들인지 회고해 보면 아닌 것들도 분명 있다. 예컨대 마감 기간을 맞추기 위해 섣불리 결론짓거나 시쳇말로 있어 보이는 글을 위해 기교를 부러 첨가했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에디터로 참여하며 쓴 글들이 글 인생 전반을 통틀어 가장 진솔할 것이라는 것이다.

 

반쯤은 성공했고, 반쯤은 실패한 경험인 셈인데, 삼라만상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니 ‘반이나 실패했네’보다 ‘반이나 성공했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곧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어쩌면 마지막 대외활동이 될 수도 있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는 글만 많이 써봤지, 정작 껍데기뿐인 글만 써온, 진솔한 글을 쓰는 데 미숙한 내가 스스로 내 것을 온전히 사유하고,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된 활동이다.

 

글을 업으로 삼길 희망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과정이었고, 아트인사이트는 내게 그 과정을 선사했다.

 

평소에 일일이 감사를 전할 수는 없었지만 에디터 활동이 종료되기 전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듯싶어 언급하자면, 늘 칭찬 혹은 인정과는 다른 결로 내 부족한 글을 독려해 주시고 지지해 주신 대표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글도 인생도 주체적으로


 

영화제 기자단 시절 마감에 쫓겨 한창 지쳐있을 무렵 에디터 합격 메일을 받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함을 느꼈던, 아이러니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일인 동시에 여전히 어렵고, 막막하고, 고독한 수행과도 같은 일이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왔고,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을 연구해도 답을 내리지 못할 난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글을 쓸 때 나는 한 뼘씩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절대적인 답안이 존재하지 않는 수행이기에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에 대한 신념과 궤를 같이 해 인생관을 언급하자면 다음 어구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움직이는 게 사랑일까 두려움일까 내가 가진 게 날개일까 새장일까” 끊임없이 묻는 것(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진의 말을 듣고 감화돼 메모한 것이라 원전이 있는 것인지 불명확해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점 양해 바란다).

 

이는 곧 진정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더 나아가 오롯한 ‘나’를 찾기 위해 곱씹어 봐야 할 질문이다. 좋은 글을 위해 숱한 자문을 거쳤고, 거치는 과정 중에 있듯, 인생이라는 장정도 그렇게 부단히 묻고 채우며 솔직하고 주체적으로 영위해가고 싶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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