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졌다

글 입력 2023.10.1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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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동네카페가 사라졌다


 

나는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다.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세 잔쯤은 기본. 처음 커피를 먹게 된 건 아침잠과의 사투에서 이겨내기 위해, 아침밥 대용으로 빵과 함께 목을 축일 용도 였으니까.


월급의 십 퍼센트에서 이십 퍼센트가 커피값이라면 말 다 했지. 일을 쉬며 가끔 들리는 동네 카페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맛있다, 분위기 있다, 사장님 좋다라고 꼽을 만큼 정평이 나 있는 곳이 있었다.


옛날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동네 카페는 입구에 들어서면 직접 로스팅 한 원두 향이 가득했다. 이천 년대 중 후반과 서양풍의 인테리어로 젊은 사람부터 노년층까지 사람도 꽤 많았다.

 

중요한 건 이 커피숍은 그 어떤 홍보도 하지 않았다는 점! 인스타로 사진 하나쯤 올릴 법도 한데 가게명을 검색하면 손님들이 남긴 후기만이 가득했다.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가게를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맛있는 커피만큼이나 좋았던 건 사장님이었다.

 

언젠가 사장님은 쿠폰에 적힌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었고, 그 이후부터는 알아서 쿠폰을 직접 찾아 센스 있게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주변 상가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꼿꼿하게 가게를 유지할 것 같았던 커피집도 언젠가 문을 닫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곧 재개발이 이루어져서 가게 상인들이 나가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커피집 사장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가게에 ‘사정이 있어 쉽니다’라는 팻말만 남기고 자리를 비운 적도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카페 사장님께 가게를 비우게 되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사장님은 멋쩍은 듯 그렇게 됐다고, 그만두는 건 아니고 새로 이사 가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카페 주소가 나오면 꼭 알려달라고 이야기했다. 꼭 이전 가게에 주소를 남겨달라고 말이다. 텅 빈 상가 라인에 마지막 커피집이 사라지니 썰렁하다. 이전한 주소를 남기는 것을 까먹었는지 몇 번이고 가게를 간 적은 있지만 아무 정보가 없었다.

 

커피를 얇게 갈아 에스프레소 얼음을 띄워주는 그 커피 맛, 어쩌면 사장님, 카페 분위기가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15년 동안 다닌 이비인후과 진료


 

일곱 살, 이사를 오고 처음으로 동네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감기 기운이 오면 중이염을 앓았고 고막 염증, 고막이 터진 적도 있었으며 귀에 물이 들어가 빼낸 적도 있었다. 나중에 대학병원에서 귀에 튜브를 넣는 시술을 통해 염증이 생기는 걸 없앨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유독 많았었다. 이비인후과는 내게 연례 행사처럼 가야만 했던 곳이었다. 어린아이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성인까지 커가는 모습을 쭉 지켜본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어릴 때는 이비인후과에 사람이 유독 많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생 때만 해도 가면 대기가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에 인구수는 없지만 한곳에서 오래 했고, 진료를 잘해줘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내원했다.

 

발에 불이 떨어지도록 방문했던 이비인후과는 환절기마다 한 번씩 가는 곳으로 바뀌었고, 직장에 다닐 때면 근처로 밖에 갈 수 없으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쉴 때, 귀가 정말 아플 때, 불편할 때는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곤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갤럭시 버즈 이어폰 이슈가 있어서 귀에 진물이 났을 때다. 되도록이면 이런 걸 끼지 말라고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무엇보다 선생님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면서 내가 성인이 되는 동안 선생님도 나이가 많이 드셨구나, 참 시간 많이 흘렀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비인후과는 어느 날부턴가 ‘당분간 쉽니다’에서 ‘폐업’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본 게 맞나?였다. 두 번째 든 생각은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나? 왜 폐업했을까였다.

 

그냥, 내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게 섭섭했다. 내가 다녔던 발자취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괜히 서글퍼졌다.

카페는 더 많아졌다, 길 하나 건너면 새로운 프랜차이즈 카페 전문점이다. 이비인후과부터 병원도 분야별로 한 건물에 탑을 쌓듯이 함께 지어지고 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 사이에서 오래된 그 가게, 사람들을 기억속에서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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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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