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거미집 안에 있는가 [영화]

글 입력 2023.10.1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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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 딱 이틀이면 돼!”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대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김감독(송강호)은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을 주는 꿈을 며칠째 꾸고 있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는 예감, 그는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을 꿈꾼다.

 

그러나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감독은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까지 불러 모아 촬영을 강행하지만, 스케줄 꼬인 배우들은 불만투성이다. 설상가상 출장 갔던 제작자와 검열 담당자까지 들이닥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과연 ‘거미집’은 세기의 걸작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 영화 <거미집> 줄거리

 

첫 작품 이후 혹평만 받는 김 감독은 막 촬영을 끝낸 '거미집'의 결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결말 부분만 살짝 바꿔서 다시 찍자. 자! 영화를 다시 찍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거미집 촬영장


 

우선, 시나리오를 쓰고 1970년대라는 배경에 걸맞게 문공부의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제작사에도 새로운 결말을 촬영하는 것에 동의를 구하고, 이제 캐스팅했던 배우들을 모두 다시 불러들인다.

 

아, 물론 배우를 부른다는 것은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분장팀도 다시 부른다는 말이다. 맞다, 촬영도 해야 하니까 장비도 잘 준비해 두고 촬영, 조명, 음향을 맡았던 담당자들도 불러들인다. 단역들이 잘 도착했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소도구, 세트장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럼, 이제 감독과 함께 현장을 총괄하는 연출부의 지휘 아래에 영화가 연주된다.


갑작스러운 감독의 호출에 진행된 추가 촬영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일 리 만무하다. 감독과 배우, 배우와 배우 사이, 제작사와 배우 사이 다양한 갈등이 촬영장에 공존한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에서 관람객들은 현장의 민낯을 보게 된다. 물론, 이 또한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촬영은 다양한 역할을 지닌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서 '한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영화 속 사소한 사건들은 촬영 스튜디오에 있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치 모든 실이 중심부로부터 연결된 거미집과도 같다.


거미집에 한 마리의 파리가 걸려들 때, 거미집 전체가 흔들린다. <거미집>이라는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은 영화관에 앉을 때부터 이미 거미집 끄트머리의 실 한오라기가 되어있다. 거미집이 파리의 움직임으로 흔들릴 때, 우리도 같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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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속에 갇힌 자들


 

영화에서는 '거미집'의 원래 결말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김 감독이 찍고 싶어 했던 마지막 장면은 영화 내내 촬영되고 영화 끝에서 그대로 '상영'된다. 거미가 사는 미스테리한 집, 복잡한 가족사에 얽혀버린 여자들과 욕망, 그리고 거미. 거미줄이 가득한 거미집이 스크린 속에 펼쳐진다.


결말을 재촬영할 때 김 감독의 새 시나리오에 불평, 불만을 가지는 관계자들, 굳이 새롭게 찍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거미집'을 보고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낸다. 김 감독과 백 회장만 빼고.


백 회장은 김 감독의 첫 작품이 간직한 비밀을 아는 유일한 등장인물이다. 백 회장이 모두와 달리 '거미집'에 환호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 백 회장은 김 감독이 거미집에 갇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과거 신 감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 회장,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마주하지 못하지만, 자신도 은연중에 깨닫고 있는 김 감독. 둘은 김 감독의 신작 '거미집'에서 거미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번 거미줄에 걸려들면 벗어날 수 없다. 영화의 결말을 바꿨지만, 김 감독은 상영회에서 깨닫고 말았다. 결말을 바꿔도 벗어날 수 없구나-라는 것을.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지독하게 거미집에 걸려들었던 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엉켜버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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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은 사실 이렇게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오정세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전여빈, 정수정(크리스탈) 배우의 빛나는 연기도 볼 수 있고 코미디 극답게 즐겁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장면들도 넘치지만, 영화를 본 뒤 한번 생각해 보았다. <거미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도 지금 어떤 거미집에 걸려들거나 한 줄의 거미줄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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