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뛰어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인생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서 -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글 입력 2023.10.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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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보잘것없는 존재들에 눈길이 간다. 약한 몸집으로 한없이 거대한 세상을 이겨내려 발버둥 치는 인간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한없이 따라가다 보면, 나의 삶을 마주 보게 된다.


웅장한 트럼펫 소리가 고요한 허공에 울려 퍼지면, 관람객들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미국 뉴저지주의 한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한낱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만난다.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의 등장인물은 한낱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다. 70대 노인 네불라와 20대 청년 수아.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둘은 '가짜'라는 공통적인 키워드로 엮인 운명 공동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남기고 싶어 유원지에서 만난 '가짜 사진가' 수아에게 촬영을 의뢰한 네불라는 촬영하는 동안 까마득한 어린 시절과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로 청년 시절을 보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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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네불라는 부모님에게 사랑받기 위해 가족들의 특징을 포착해 흉내 내며 연기하기를 좋아했다. 흥미는 배우의 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유명 배우를 흉내 내는 데 그치는 부족한 연기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극단의 스태프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 기회가 닿아 한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면서, 가상의 국가 파라디수스 공화국의 독재자 미토스의 일을 분담하는 네 번째 대역으로 '가짜 독재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정상을 구분하기 위한 신체검사부터 엄격하고 강도 높은 훈련까지, 진정한 독재자로 거듭나기 위한 연습을 계속해 간다.


"축하합니다, 네불라씨.

당신은 오늘부로 그분의 네 번째 대역이 되셨습니다."


독재자 미토스. 그와 같이 걷는 법, 말하는 법, 행동하는 법을 배우며 그분처럼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다 하는 네불라는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굳어있는 얼굴 근육부터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팔과 다리 모두 그의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독재자의 권위를 드높이려 고군분투하는 네불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애달프다. 그가 온 힘을 쏟는 가짜 쇼에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현실의 쓰디쓴 적나라함이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는 가짜, 네불라는 본체를 감추고 다른 이를 연기하며 그토록 바라던 인정을 받게 된다. 인정을 받으면서 오리지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뇌하기도 한다. 가짜와 진짜, 그 사이에서 한바탕 꿈 같은 쇼를 해나가는 네불라는 독재자보다 더 현실적이고 완벽하게 독재자를 비추는 그림자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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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광도 잠시, 네불라는 독재 정치로 인한 혁명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면서 독재자의 그림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본인이 누구인지, 본인이 연기한 독재자는 누구였는지를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옳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것을 반성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인정받고 영광을 누렸던 기억을 떠나보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남을까 두려워 차마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수아에게 '진짜 네불라'가 무엇인지 판단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온전한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네불라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네불라는 한참 동안 자신을 들여다봤어.

가끔 웃고, 가끔 울면서 자신을 참아냈어."

 

네불라의 꽤나 긴 인생 역정을 지켜본 수아는 그의 부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담스러워한다. 혼란의 과정에서 네불라의 삶을 투영해 자기 자신의 지난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해되지 않고 바보 같기만 했던 네불라의 인생이 어쩌면 본인의 인생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 수아는 직설적으로 내비쳐졌던 네불라의 인생이 그토록 징그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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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자신보다 2살 어린 미국 양부모의 아이를 돌보며 장애를 가진 동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본인의 행복보다 동생의 안전한 돌봄이 이루어졌을 때 받는 양부모의 칭찬을 목표로 착한 아이, 굿걸 연기를 해오며 남을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현재는 굿데이 마트에서 일반 직원으로 일하면서, 매니저로 진급할 기회를 얻어 그 자리를 꿰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경쟁자를 제치고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서기 위해 다른 직원들의 지지를 받으려 경쟁자를 모함하고 마트 밖으로 내몰기까지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도 하다.

 

가짜를 벗어나 진짜의 삶을 쟁취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잘못된 방향인지 알면서도, 잠깐의 외면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간다.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본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수아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남의 약점을 딛고 올라선 자리에는 '매니저'라는 한정된 직책, 짧은 순간에 달콤한 영광만 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누군가의 대체재가 된 사람. 네불라에게서 자신이 느껴왔던 갈증을 마주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은 수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착한 아이, 굿걸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착한 아이가 되어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그때의 수아에게 건네는 편지 같던 굿걸(good girl) 넘버가 인상적이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어린 수아에게 건네는 위로와 지금의 자신을 치유하고 온전한 나로 나아가기 위한 어른이 된 수아의 의지가 오롯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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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의지를 토대로, 수아는 네불라를 통해 주체성을 잃어버렸던 삶을 자각하고, 사진가라 속였던 본인의 실체를 밝히며 사과를 건넨다. 그 과정에서 진짜 본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과 다르지만 무언의 동질감을 감지했던 네불라에게서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마주 볼 용기를 얻는다.

 

70대 남성 네불라와 20대 여성 수아, 타인을 대체하며 살아온 이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에 녹아들어 있다.

 

키만큼 깊은 인생이라는 바다를 끊임없이 뛰어오르고, 또 가라앉았던 그들에게서 인생은 허물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비로소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배우게 된다.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


(대사) 그 순간, 그 사람 생각이 났어. 

이상하지? 우린 너무 다른데.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데.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없이 밀려 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 오른다)

(가끔은 저 파도가 너무 거세)

(뛰어오를 힘조차 없을 때에는)

(길게 숨을 들이 마신 채)

(바닷속에 잠겨 숨을 참는다)

(다시 파도가 잠잠해질 때 까지)

(다시 올라갈 힘이 생길 때 까지)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아아아 깊은 바다)

저 멀리 누군가 육지를 향해 나아갈 때에도

머리 위 새들이 날 보고 더러 비웃을 때에도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 오른다)

(계속 계속 계속)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애써 뛰어올라야 겨우 숨 쉴 수 있는

딱 내 키만큼 깊은 바다


 

네불라와 수아는 누군가를 대체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자신보다 제3의 존재에 귀 기울이며 수많은 희생을 감내했다. 그 희생은 결국 인생의 보잘것없는 허물로 남았지만, 두 인물은 숨기고 싶은 허물을 눈앞에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인생은 키만큼 깊다고 했을까, 그들은 약한 몸집으로 한없이 거대한 세상을 뛰어넘으려 애써 뛰어오르고 있었다. 아주 높이, 아주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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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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