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명작은 나만의 서사를 구성해가는 것 - 인사이드 윌리엄

글 입력 2023.09.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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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책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우리가 아는 책 내용 그대로의 삶을 살기를 원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책 속에 나타나는 등장인물의 서사는 작가가 부여하는 것이지만, 작가가 독자적으로 정한 내용의 틀을 깨고 주체적인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은 등장인물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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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세계적인 작가로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가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집필하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내용을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담은 공연이다. 

 

두 작품을 동시에 집필 중인 그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거센 바람 탓에 두 원고가 섞여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로 인해 미지의 세계 속에서 다 함께 만나게 된 두 작품의 주인공인 햄릿, 로미오, 줄리엣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나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으나 사실은 시를 쓰고 싶었던 햄릿, 로미오와 애절한 사랑에 빠져야 하지만 그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줄리엣, 장르 불문 주인공이 되고 싶은 로미오까지. 이들은 셰익스피어가 집필 중인 내용의 삶에 순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셰익스피어도 마찬가지다. 명작을 쓰고 싶어 명작에 관한 책의 지침에 따라 글을 쓰는 그는 비극을 결말로 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비난에 못 이겨 결말을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이때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쓰며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그를 마음껏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의 모습과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수군거림에 귀를 세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은 이내 시간이 흘러 본인에 대한 후회로 돌아온다. 그 순간에 비난의 화살을 던졌던 사람들에게 이 상황은 일종의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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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햄릿과 줄리엣이 먼저 용기를 낸다. 행복의 기준을 본인으로 정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햄릿은 복수와 비극이 아닌 용서와 시인의 장르를, 줄리엣은 로맨스가 아닌 성장극으로, 로미오는 비극적 로맨스가 아닌 자신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야망극을 완성해나가기로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불안함도 함께 따른다. 평범한 인생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고 이들은 사람들에게 금방 잊히는, 연극으로 따지면 시민1에 불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꿋꿋이 셰익스피어가 원하는 삶을 따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이 되는 것이 아닌, 행복과 설렘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하다는 말은 단어가 주는 의미로 인해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이 모두 평범함으로 묶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이 아닌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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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보며 각자의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윌트 휘트먼의 시 ‘O me O life’가 떠오른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화자는 삶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삶이라는 하루의 반복 속에서 영원히 자신을 질책하고 초라한 결과를 마주하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누추한 군중들을 통해 모든 것이 공허하고 쓸모없는 세월이라고 느끼는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냐는 자조적 질문은 이 시에 포함된 내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후 나오는 간단한 답은 희망을 잃었다고 느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That you are here- that life exists and identity,

That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삶과 주체성이 존재한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당신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나 자신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라는 것, 삶이라는 주제의 연극은 계속되고 자신 또한 이 연극의 한 부분에 들어갈 멋진 서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주체적으로 용기 있게 삶을 개척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인생은 의미가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들여다보면 학생들을 책상 한가운데 둥글게 모아 놓은 후 이 시를 들려주는 키팅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휘트먼의 시를 읊은 후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라고 되묻는 키팅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맑게 빛나는 눈빛을 옮겨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좋으니 천천히 그 물음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삶에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누군가는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장르가 담겨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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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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