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난 날의 기록

한 사람의 영양가 없는 과거 기록
글 입력 2023.09.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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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이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에세이 기고를 미뤄왔다. 심리적인 이유로, 졸업과 취업 준비라는 이유로, 그리고 정신없는 회사 생활이라는 이유로.

 

가을에 접어든 어느 일요일 아침.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생각했다.

 

‘써야겠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그런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근육, 소위 ‘글근육’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든 일에는 관성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끼는 지금이다. 그래서 기고가 멈춘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반추하는 시간도 가질 겸, 다시 글을 쓰는 연습도 할 겸. 이곳에 기록하고자 한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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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심리적으로 힘이 든다는 핑계로 기고를 멈췄던 직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물론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웃음)

 

글과 술을(?) 좋아한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 무엇 하나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관계를 이어가며, 그 극명한 반대편이 나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항상 가는 곳만 가던 나는 맛집 사냥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우스운 말이지만 혼자 옷도 사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즉흥적인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느끼던 스트레스는 일종의 두근거림으로 변모해갔다. 산재한 일들을 잠시 미뤄두고 온전히 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것은 서로의 노력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20년 이상을 나의 모습으로 살다가 어떻게 그렇게 단적으로 변화할 수 있겠나. 어느 날. 그러니까 이별 후의 나는 다시 가던 곳에서 먹던 메뉴를 먹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스트레스다. (혼자 옷은 사게 되었다. 항상 그 사람과 가던 곳까지 가서 모호한 감정을 느끼며 구매하는 게 문제지만. 거기가 아니면 옷을 사지 않는다.)

 

S.T 콜리지가 말했다.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별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슬픈 이야기다."

 

그렇게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나의 인생에 기록되었다.

 

 

 

진로



4학년을 앞둔 어느 겨울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냐면 정말 몰랐거든. 어떻게 보면 조금 우스울 수도 있긴 한데, 나는 ‘시험 기간에 공부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진로를 결정했다. 돈과 상관없이 나는 싫어하는 일은 극악의 효율을 자랑했으니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될 텐데, 그 일마저 재미가 없으면 인생이 퍽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목표로 한 진로로 다가가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아, 웹소설 콘텐츠 PD가 되고 싶었다.)

 

서평단 신청을 하고,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비슷한 진로를 결정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콘텐츠 인풋 또한 지속했다. 나의 이전 기고 글 중에서 ‘회빙환’? 그거 먹는 거야? 라는 글이 있는데, 이 또한 웹소설 PD가 되기 위해 준비하면서 썼던 글이다. (웃음)

 

결론적으로 대학 졸업 전 웹소설 PD가 되었다. 온전히 나의 노력만으로 얻어낸 자리라고는 할 수 없다. 목표를 이루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 익명의 동기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연차를 사용해가며 중간고사를 보러 가고, 급하게 전세를 빼야 하는 등 정신없는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그리고 한 달 뒤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언제나 부족한 신입으로서 두근거리는 나날이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는 사실 모른다.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취하기만 하면 눈물 흘렸더랬다. 맞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외부의 평가는 더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으로만 받아들인다. 좋은 변화라면 변화겠지.

 

애머슨이 말했다. "나는 평생 단 하루도 노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일하는 그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어떻게 모든 순간이 기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순간순간 기쁘고 즐겁다.

 

언제나 감사하며, 충만한 설레임으로 일을 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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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도서관 커피자판기에서 손이 맞닿는 인연 따위는 없다는 걸 비로소 인정했다고 해야 할까? (웃음)

 

애정을 갈구하지만 상처받기 두려운 고슴도치. 아무리 좋은 소리를 들어도 그 외에 안 좋은 부분이 없는지 끊임없이 전전긍긍하는 소심쟁이. 뜬금없는 부분에서 눈물 줄줄 흘리는 울보.

 

사실 변한 건 없다. 나는 그대로 나인 듯하다. 주변 상황이 변화한 만큼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이 달라져 보일 수는 있겠다.

 

나는 여전히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황경신 中)

 

별 영양가는 없는 과거의 기록이다. 나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을 휘적휘적 끄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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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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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iibbb
    • 쭉 읽어봤는데, 진로 선택 과정이 저와 비슷해서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에디터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
    •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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