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노견을 키우는 시간

글 입력 2023.09.0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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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하루 루틴, 약 시간


 

아침 여섯시, 벨 소리가 아닌 몸이 반응한다. 얼마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여섯 시라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졸리다’ ‘피곤하다’라는 투정을 부릴새도 없이 심장약을 물에 게워 주사기로 옮겨 강아지에게 먹인다.

 

열두시간 루틴, 약 퀘스트 시간, 내가 스스로에게 붙여준 명칭이다. 삼십분 간격으로 약을 세 차례 먹여야 되는데 스스로에게 약 퀘스트라 칭하고 있다.

 

강아지에게 하루는 사람에게 일주일, 일 년은 사람의 시간으로 4-5년이라지만 나는 하루하루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불안, 긴장 그 사이에서


 

나는 노견을 키우고 있다. 한 달 전 무더운 여름, 반려견에게 폐수종이 찾아왔다.

 

폐수종은 말 그대로 폐에 물이 차는 현상이다. 사람으로 치면 발끝부터 목, 얼굴까지 물이 차 익사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지만 유난히 배가 빵빵하게 부풀러 올랐다. 밥을 많이 먹었다고 하기엔 과했다. 올챙이배처럼 부풀러 올라 터져버리는 것 같았고, 뭔가가 이상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염증이 차올라 복수가 찬 것이라고 한다. 한 달 전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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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수종으로 입원한 반려견 <사진출처 : 본인>

 

 

어딘가 이상하고 확인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당장이라도 녀석과 함께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 처치를 받았다. 병원에는 삼일 정도 간 것 같다. 다녔던 병원이 24시가 아니라 하루는 입원을 시켰다.

 

딸기가 없는 빈방에서 녀석이 남기고 간 패드와 빈 집을 보며 꾹 참았던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노견 커뮤니티 카페에 정보를 얻으려고 게시판을 클릭했는데 자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이들 글이 눈에 띄었다.


일전에 노견을 케어한 친구는 위로보다는 쓴소리를 해줬다. 이럴 때가 아니라 치료받고 오면 어떻게 케어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비상 산소캔, 산소방 등 호흡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추천해 줬다.


심장이 안 좋아 평생 약을 먹여야 된다기에 그럼 숨 쉬는 게 훨씬 수월하다기에 먹이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나 보다.

힘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함께 버텨준 녀석이었기에 약만 잘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딸기를 5-6년간 봐온 수의사 선생님은 딸기 심장이 흥분하지 않도록 일상적인 루틴을 만들어 주라고 조언했다.

약 시간, 밥 시간, 자는 시간, 모두 일정하게. 더도 덜도 더이상 자극 받지 않도록.

 

 

 

감사한 하루, 오늘도 잘 버텼어


 

처음엔 강아지를 케어하며 이 불편함과 불안감을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될까 막막했다.

부모님은 강아지를 섬세하게 케어하는 내 모습을 보며 걱정했다. 행여 내 몸이 상할까봐. 그렇지만 녀석에게는 나밖에 없지 않은가.

 

세상에 나와서 지금까지 의지하고 바라볼 대상이 보호자인 나뿐이다. 또, 원래 습관이 남아있어 다리를 바닥에 디디며 걸으려고, 밥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녀석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어떻게 지켜주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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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반려견 <사진출처 : 본인>

 

 

3.5kg이었던 녀석은 2.7kg가 되었고, 몸무게가 급격하게 빠져 지금은 2kg이다. 작고 소중한 생명이 건들 데가 어디 있다고 병에 걸릴까 싶다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노견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오늘 하루도 약을 주고 밥을 먹인다. 한 시간마다 오줌을 쌀 수 있게 패드 위에 몸을 뉘어주고, 조금은 걷게 한다.

지난주까지는 잘 걸었던 녀석이 이번 주는 영 힘이 없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겨우 몸을 뉘며 ‘감사하다’라는 말을 읊조린다.

오늘도 별 탈없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지나가게 해줘서. 앞으로 녀석과 함께 잔잔하게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들을 소중히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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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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