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식탁의 주인공들을 캐스팅하는 방법 [음식]

글 입력 2023.09.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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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의 문제는 중요하다. 기후 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지금'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요즘에는 더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채식이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다양한 비건 음식들을 추천받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비건 음식의 재료는 어떻게 사고 있나요? 어떻게 사세요? 어떤 걸 사서 먹으세요? 비건 음식뿐만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식재료를 사고 있나요?


생각보다 구매의 행위는 많은 것에 영향을 받고 끼치고 있다. 유통 과정을 따져본다면 끝없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평소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식재료를 사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였다. 편리함을 따지자면, 인터넷으로 대표 이미지만 확인하며 손쉽게 장바구니를 채워 주문하는 것이 제일 좋다. 배송되는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집 앞까지 배송되니까 말이다.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르고 싶다면 집에서 가까운 마트, 슈퍼, 시장에서 사는 게 좋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소비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재밌고 의미 있는 장보기 방법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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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생긴 맛, 어글리어스


 

어글리어스는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한다. "못생겨도 맛있다!"라고 말하는 어글리어스는 소비자들의 소비를 '채소 구출'이라고 명명한다. 팔리지 못하는 농산물들은 식재료가 되지 못하고 버려지는데, 이를 불필요한 낭비라고 보고 환경 보호와 농업 환경의 개선을 목표한다.


어글리어스를 접하면서 깨달은 점은 나에게도 선택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못생긴, 제멋대로 생겼지만 맛이나 품질 자체에는 크게 문제없던 농산물들을 구매할 수 있었던가? 일반적인 장보기 시간에는 늘 비슷한 크기의 오이, 정갈한 모양의 애호박, 균일한 크기의 양파와 감자를 집을 수밖에 없었다. 균일한 모양과 크기, 무게는 품질과 직결되었고, '균일함'과 '평균'은 특정 가격대를 형성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어글리어스를 통해서는 아주 독특하고 제멋대로인 모양의 식재료들을 만나보고 있다.


어글리어스에서 '구출'하는 채소들은 왜 구출되어야 하는지 사유가 있다. 대부분 판로가 없던 아이들인데,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를 간단히 확인하고 내가 직접 선택해서 데려올 수 있다.


다만, 어글리어스는 택배로 배송되어서 택배 박스와 아이스팩이 필요시 사용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첫 택배를 받아본 뒤에는 크게 걱정이 줄었다. 생분해 비닐로 포장되고 펄프 용기나 종이봉투 등이 사용되어서 플라스틱, 비닐 사용을 제한하고 있었다. 아이스 백도 순수한 물, 얼음이어서 언제나 처리가 쉽다.


어글리어스가 재밌는 점은 배송된 못생긴 농수산물들을 이용하는 레시피를 같이 알려준다는 점이다. 비건 음식들도 정말 많아서, 조금 더 다양한 음식들을 시도해 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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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열리는 시장, 마르쉐


 

마르쉐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지난 봄이었다. 국립극장 앞에서 오랜만에 마르쉐가 열린다며 신이 난 친구를 따라갔더니, 장날이었다!


프랑스어인 마르쉐 marché는 시장, 장터를 뜻한다고 한다. 2012년부터 어디에서나 열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컨셉 아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주제로 상인들과 함께 장날을 열고 있다. 마르쉐는 '건강한' 장터 형성을 목표하는데, 농부시장이나 채소시장과 같이 특정한 주제로 진행되기도 한다.


마르쉐에서 만나는 농산물들은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다. 얼마나 꼼꼼하게 품질을 관리하는지, 농부들의 손을 거친 자연물들을 장터에서 만날 수 있다. 농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직접 장터에 나와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일까? 조금 더 신뢰하게 된다. 어쩌면 이게 대면의 힘이 아닐까?

 

꼭 코로나바이러스 때문만은 아니지만, 온라인 몰에서 판매되는 식품들이나 대형 마트에서 유통되는 물건들은 생산자를 대면할 일이 잘 없지 않는가. 마르쉐에서는 '진짜' 생산자, 농부들을 만날 수 있는 듯해서 더 믿고 먹게 된다. 마르쉐 운영진들의 꼼꼼한 품질 관리 덕에 맛은 보장되어 있다.


첫 마르쉐 방문 때, 홀린 듯이 친구들과 송이버섯을 한 봉지씩 사들었다. 상인 분은 버섯을 송송 잘라서 살짝 볶아내었는데, 그 향이 어찌나 향긋하고 달콤하던지. 향기에 이끌려 시식하고, 감탄하고, 바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랬더니 주인 분 하시는 말씀이, "저 뒤에 들기름 집 있는데 그 집 기름이랑 잘 어울려요~!" 우리는 바로 뒤돌아서 들기름도 한 병씩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르쉐를 자꾸 다시 방문하고 싶은 건 이런 것들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장터이자 믿고 살 수 있는 식재료들의 퀄리티. 재밌는 장보기 이후에 더 신선하고 맛있는, 건강한 음식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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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어글리어스로 옥수수와 단호박을 사보았다. 평소라면 잘 고르지 않았을 녀석들인데, 새로운 요리 재료를 도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 더 재밌게 소비하는 방법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각기 멋대로 생겨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식탁에 올리게 하는 방법. 사람과의 소통으로 식재료를 믿게 하는 오늘날의 새로운 장터. 조금 더 현명하게 식탁을 꾸려갈 수 있다.

 

채식하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되었다. 새로운 방식의 소비문화가 냉장고와 식탁을 채워가고 있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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