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그리고 휴일 [영화]

글 입력 2023.08.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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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네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 검정치마 '좋아해줘' 中

 

 

2008년, 파격적인 데뷔 앨범 ‘201’과 함께 등장한 조휴일의 원맨 밴드 검정치마는 당시 국내 인디 씬에 신선한 충격을 불어넣으며 순식간에 수많은 리스너들을 자신의 열렬한 팬으로 끌어들였다. 사실 ‘신선한 충격’이라는 말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진부하게 느껴지는지라 필자는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 당시 검정치마의 등장이 씬에 불러일으킨 파장을 생각해 본다면, 이에 ‘신선한 충격’이라는 표현보다 적절한 수식어를 붙이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201’의 발매 이래 약 15년이 흐르고, 검정치마의 이름으로 네 장의 정규 앨범이 더 발매된 지금, 그의 밴드는 가히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보유한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그만의 감성을 가감 없이 녹여낸 그간의 작업물들을 통해 뮤지션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해낸 것은 물론, 그의 신보가 발매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팬들의 규모 또한 괄목할 정도로 크게 성장해버렸으니 말이다. 검정치마의 모든 앨범들을 매일같이 번갈아 들으며, 그의 음악에 거의 파묻혀 지내다시피 하고 있는 필자의 팬심이 매우 노골적으로 반영된 평가이니 부디 안심하고 믿어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본 오피니언에서는 그의 음악에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사료되는 몇몇 영화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는 그 배경을 알면 알수록 더욱 강렬한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음악들도 틀림없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분명 검정치마의 세계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Le Fou Muet, 그리고 <미치광이 피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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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주고 멍을 사온 나에게 너 이럴 순 없는 거야

우린 뜨거워야 해

 

- 검정치마 'Le Fou Muet' 中

 

  

‘정을 주고 멍을 사온 나에게 너 이럴 순 없는 거야’라는 애절한 가사로 시작되는 ‘Le Fou Muet’는 그의 데뷔 앨범 ‘201’의 8번 트랙을 장식하는 노래이다.

 

특유의 끈적한 멜로디와 애틋한 가사에 흠뻑 빠져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노라면 어느덧 곡의 후반부에 자연스레 다다르게 되는데, 해당 부분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알 수 없는 남녀의 프랑스어 대화는 청자들을 다소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해당 대화는 다름이 아니라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에 등장하는 일부 음성을 샘플링한 것으로, 그 내용은 대략 한 쌍의 남녀가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나누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본인만의 감정과 색을 음악 속에 자유로이 녹여내는 검정치마가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미치광이 피에로>를 자신의 음악과 결합시켰다는 사실은 불현듯 당연한 현상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작업물들이 지금과 같이 다소 파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은 <미치광이 피에로>를 비롯한 누벨바그 영화들이 그의 청춘을 화려하게 수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검정치마가 발표한 수많은 트랙 중에서도 ‘Le Fou Muet’는 단연 기존의 대중음악이 형성한 관습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그의 자유로운 예술관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곡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Lester Burnham, 그리고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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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내 세상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어

네가 흔든 거야 나는 그냥 굴러가는 거야

 

- 검정치마 'Lester Burnham' 中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감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Lester Burnham’이라는 노래의 제목만으로도 해당 곡이 과연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Lester Burnham’은 다름이 아니라 영화 <아메리칸 뷰티> 속 주인공의 이름인 ‘레스터 번햄’으로부터 비롯된 제목이기 때문이다.

 

불현듯 딸의 친구를 대상으로 욕정을 품게 된 이후, 자신의 욕망에 다소 맹목적일 정도로 충실하게 된 ‘레스터 번햄’의 원초적 심리 상태를, ‘Lester Burnham’은 어지러운 멜로디와 노골적인 가사를 통해 제법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편, <아메리칸 뷰티>를 대상으로 하는 정서적 차용은 비단 ‘Lester Burnham’ 한 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 ‘THIRSTY’ 전체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고 이해하더라도 커다란 무리가 없을 것이다.

 

타성에 젖은 공허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원초적인 사랑에 매달림으로써 일순간 맛보게 되는 달콤함, 그리고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인륜적 범주의 궤도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말의 죄책감과 자기합리화마저 모두 <아메리칸 뷰티>와 ‘THIRSTY’를 동시에 관통하고 있는 주된 정서이기 때문이다.


 

 

TEEN TROUBLES, 그리고 'Teen Troubles In Dirty Jer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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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울던 1999년의 여름밤

혹독하고 푸르던 계절이 깊게 긁고 간 자리

 

- 검정치마 'Flying Bobs' 中

 

 

특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음악 속에 간간이 녹여내곤 했던 그는 이내 자신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EEN TROUBLES’를 발매함과 동시에 해당 앨범에 수록된 다섯 개의 노래를 OST 삼아 직접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방황하던 10대 시절에 마주한 아름다움과 슬픔을 다소 공허한 느낌의 그리움으로 대치시키며 자신의 과거를 예술적인 형태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TEEN TROUBLES’에 대한 평가는 해당 앨범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Teen Troubles In Dirty Jersey'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그의 음악에는 자전적인 성격의 이야기들이 곧잘 담겨 있곤 했지만, 그 결과물들 중에서도 ‘TEEN TROUBLES’가 차지하는 위상은 단연 남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걸출한 음악적 완성도나 서사적 감동 등을 그 이유로 들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해당 앨범에 대한 감상을 돕는 훌륭한 시청각 자료인 'Teen Troubles In Dirty Jersey'의 존재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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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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