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 그녀의 취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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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며 안부를 물었던 경험이 있는가.
여기 서로의 안부를 매일같이 묻고 전하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혜정과 정인. 가정 폭력과 도박을 일삼던 전 남편과 이혼한 뒤, 고향 박하 마을로 귀촌한 ‘정인’은 유일한 혈육이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고 비위를 맞추며 근근이 살던 정인의 무료한 일상은 낯선 도시 여자 혜정이 이웃으로 이사를 오며 좀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두 번의 사별을 딛고 단숨에 호화로운 저택의 주인이 된 젊고 세련된 혜정은 주민들의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고, 악질적인 강간범의 타깃이 될 위기에도 처하지만, 호탕하고 직설적인 언행으로 이에 응수한다.
사실 10대 시절부터 주민들의 육체적 정서적 폭력과 방관에 대한 분노를 내내 삭혀 왔던 정인은 단단한 혜정을 동경한다. 한편, 과거 정인과 동질적인 상흔을 겪었던 혜정의 눈길은 제 잘못도 아닌 일들로 움츠러들어 있는 정인에게로 계속 향한다.
아랫집 정인과 윗집 혜정이 서로를 향해 손짓하는 수직적 구도는 그러한 심리와 연계되는 영화적 비유다.
가위를 쥐고, 총을 구비해야 만 안심이 될 정도로 사생활도, 치안도,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곳.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박하 마을은 적어도 그 둘에겐 결코 평안한 안식처일 수 없다. 정인과 혜정은 더 이상 그러한 폭력이 스스로 그리고 서로를 난도질하도록 두지 않기로 결의한 뒤, 서슬 퍼런 복수를 감행한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보이는 워맨스 리벤지물이지만, 보다 독특한 방식으로 여성 서사의 범주와 깊이를 확장해 가는 작품이다. 관객의 예상을 계속해서 배반하면서 말이다. 혜정과 정인은 서로의 상극성에 끌려 연대를 쌓아가는 관계의 여성들이 아니라 서로의 봉인된 면면을 추동 시키는 관계의 여성들이다.
어쩌면 처음 마주했던 순간부터 둘은 서로의 내밀한 속 사정과 심리를 간파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과거 성범죄에 노출될 뻔한 당시, 가해자를 살해한 혜정의 전력은 둘의 관계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
도리어 이를 계기로 정인은 제 안에 응어리를 해소할 만한 실마리를 얻게 되고, 정인과 같은 길을 걸어온 혜정은 마치 과거의 자신에게 조언하듯, 그래도 괜찮다고 안심시킨다. 더욱 끈끈해진 그들은 더 이상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직면하기로 다짐한다.
잔혹한 살인을 설계 중인 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차려입은 흰 원피스는 그들을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제사장처럼 변모시킨다.
둘은 빼앗긴 존엄을 복권하기 위해, 서로의 안녕을 가호하기 위해 총을 장전한다. 끝내 그들의 복수는 성료되지만, 움푹 파인 상처와 굴곡진 삶 전부를 부정할 순 없기에 그들의 얼굴엔 씁쓸함이 사뭇 묻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표정으로 답한다. 아직도 이 긴 터널 속에 갇혀 있지만,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 조금씩 걸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치유는 ‘현재 진행형’이란 것을.
[김민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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