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곳은 어리석은 짐승들의 세상 -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

글 입력 2023.08.1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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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숲우화10_포스터.jpg

 

 

273을 타고 한번에 갈 수 있었던 극장. 산울림 소극장은 이번이 처음인지 두 번째인지 긴가민가했다. 도착한 곳엔 작은 매표소, 카페, 작은 전시공간 등이 함께있는 건물이 있었고, 지하 1층이 우리가 볼 연극의 무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도 많지 않아서 좋았다.


이 연극은 산울림 소극장이 기획한 “고전문학,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서”의 한 편이다. 이미 50여 편을 했다고 하는데 처음 보게 되어 좀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팜플렛에 “엄마, 나 산울림 고전극장에 뽑혔어!”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니 연극인들에겐 꽤 영향력있는 기획이고 극장인 것 같다.


극장은 지하라는 점만 빼고 다 좋았다. 특히 좌석과 좌석 사이나 앞 좌석과의 간격이 여유있어 아주 편안했다. 객석과 무대가 가로 폭이 거의 반원에 가까워 가장자리에서는 배우의 모습이 뒷모습만 보이기도 했지만 넓은 무대를 활용하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무대엔 생각보다 소품이 많았다. 이 많은 소품이 과연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혹은 공간을 채우기 위한 도구인가 궁금해졌다. 요즘 무대 미술, 영화 미술 등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쓰잘데 없는 물건들도 실용적(?) 이유없이 화면 속에 있다는 것을 많이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관객된 입장에서는 들여다보기 힘든 연습실 모습을 엿본 듯 흥미있었다.

 

무대를 보는 것도 잠시, 곧장 몸빼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무대위를 휘적휘적 걸어다닌다. 처음엔 스태프인줄 알았다. 까만 옷(스태프의 상징)에 몸빼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가 한 여성이 무대 위 소파에 벌러덩 눕길래 그제서야 이 연극도 시작전부터 배우들이 관객을 구경하러 온 거구나 알았다.


시작을 기다리며 리플렛을 찬찬히 봤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이솝우화인 줄 알았는데 “이숲우화”였다. 그늘진 땅을 숲이라 한다면, 이 곳은 어리석은 짐승들의 세상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연스레 이솝우화의 이야기들이 변용되고 있다. 이솝우화처럼 이 작품 역시 인간들의 모습을 동물에 빗대고 있으면서 원전인 이솝우화를 한 번 더 비틀어 이야기한다.

 

극은 성공한 작가 이솝의 북토크로 시작한다. 이후 총 4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서 극이 진행된다. 여우와 두루미,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달에 간 까마귀 순서로 흘러간다.


처음 등장한 작가는 잘 쓰려면 잘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새로운 처세술 중 하나가 글쓰기, 누구나 작가 되기 같은 강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비꼬는 에피소드로 이해하였다.

 

잘 듣기보다 잘 듣는 척 하는 여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작하는 에피소드로 적절했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달에 간 까마귀’와도 잘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가운데 배치한 ‘개미와 베짱이’와 ‘토끼와 거북’ 에피소드는 몸과 사랑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서로 이해되지 않는 말들의 공허함이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대사 중에 어린왕자를 읽은 시늉을 하는데 나 역시 이솝우화를 자꾸 떠올리며 연극이 고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창조했나를 따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생각의 타성에 반성하기도 했다.


가장 호응이 컷던 에피소드를 뽑으라면 달에간 까마귀이다. 관객들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연출가, 두 배우의 비언어 연극 만들기 대장정을 담고있다. 아무런 '의미'있는 대사 없이 오로지 '까악'으로만 대본을 쓴 연출가. 그리고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 두 주연 배우. 심지어 대본은 그 자리에 끊임없이 바뀌고, 사온 강냉이는 연출가 입으로만 얄밉게도 쏙쏙 들어가는 모습. 계속 웃었지만 동시에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맘이 복잡했다.


우화라는 형식을 빌려온 것엔 아마도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 대한 물음이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과연 우리 두 종족을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연결될까. 다를까? 비슷할까?


그리고 그곳엔 내가 극을 보면서 했던 자기 검열과 반성처럼 일종의 거울역할이 들어있었다. 나는 유독 예술충 역할에 찔리면서 관람한 것처럼, 또 다른 역할에 공감하면서 본 관람객이 있지 않을까.


극장을 나와 홍대 거리를 산책했다. 산울림소극장을 지나 말로만 듣던 홍대거리를 걸으니 ‘이 곳은 어리석은 짐승들의 세상’이라는 표현이 다시 생각났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사람의 군상이 우화에, 이 연극에 녹아있었다. 마냥 심각하지도 않고, 굳이 불쾌하지도 않게, 적절하게 말이다.


홍대 거리 빈티지 옷을 파는 점원도 인도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도 모두 이 곳에서 우린 열심히 살아간다.

 

 

2023 산울림 고전극장_포스터_최종.jpg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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