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삶 [도서]

생과 사에 대해 쉽지만 깊은 사유를 하고 싶다면
글 입력 2023.08.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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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살다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는 꼭 한 번쯤은 질문하게 된다. 당장 내일의 할 일, 공부, 친구들과의 약속, 직장과 같이 바쁜 현실을 살다 보면 저런 추상적인 고민은 뒷전이 된다.

 

하지만 그 현실이 고통으로 가득할 때는 누군가 묻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나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굳이 인간으로 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건지. 차라리 지리산 꼭대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로 태어나는 게 더 행복했을지.


그러나 눈앞의 닥쳐오는 현실의 바쁜 일들을 해치우고,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 질문에 대해 고심할 시간은 사라진다.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여럿 있었는데, 최근에 읽은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 덕에 그 고심에 큰 방향이 세워졌다. 죽지 못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살아간다는 막연한 이유보다, 구체적이고 마음이 채워지는 답변을 나는 이 책 속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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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는 머지않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IT 기업에서 로봇 연구를 하고 있는 아버지를 둔 ‘철이’의 이야기다. 민간의 폭동으로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연구소의 보호를 받으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철이는, 어느 날 낯선 정찰 로봇에게 비등록 로봇이라는 진단을 받고 각종 휴머노이드들이 감금된 수용소에 보내지게 된다.


철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연구소의 보호가 있던 세상을 떠나, 과격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속에서 나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로봇에게 위협당하고 하루하루가 살얼음 같지만, 가뭄에 단비와 같은 따뜻한 친구들을 만나 수용소 생활을 버텨낸다.

 

 

66p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나는 이 연약하고 무기력한 육체로부터 자유롭기를 소망하게 되었고 난생처음으로 기계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랬다면 그들이 더럽다고 놀려대는 그 번거로운 배설도 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어찌하여 나는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일까 원망스러웠다.

 

 

마침내 수용소를 탈출한 그는 서둘러 아버지를 찾아가려 하지만, 자신이 사실 인간이 아니라 최신형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였음을 깨닫게 되고 혼란에 휩싸인다.

 

독자는 자신이 몰입해서 읽어야 하는 대상인 주인공 철이의 존재를 책의 처음부터 의심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분명 주인공이 오해받고 있을 거라는 억울함과 정말 로봇인가? 하는 의심이 마음속에 피어난 덕에 독자는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 ‘생과 사’에 대해 사유하는 과정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을 인간이라 칭할 수 있는지부터, 우리의 삶은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등장인물과 함께 질문하고 답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들이 더 이상 쓸모 없어 버린 로봇들을 처리하던 휴머노이드 ‘달마’는 의식을 가진 로봇들의 고통의 고리를 멈추기 위해 인류의 멸망을 기다리는 등장인물이다. 그는 사는 것이 기쁨이라는 인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고통이 가득한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148p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쓱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철이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한 인간, ‘선이’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이유를 찾고 실행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녀는 인간이지만 클론 복제를 통해 태어난 존재로, 친척이 낡은 장기를 교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져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우주에서 태어난 것은 큰 행운이자 축복임을 늘 생각하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108p

 

하지만 선이의 세계관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은 당연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에게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철이는 아버지에게 자의로 돌아가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만들어낸 아버지의 연구소에 의해 육신을 잃고 네트워크 속에서 의식만을 가진 채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러다 달마의 도움으로 새로운 육신을 얻은 그는 백발의 노인이 된 인간 선이를 만나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다.

 

그리곤, 낡아진 자신의 육체를 수리하지 않고 철이 역시 자연 속에서 의식의 소멸을 맞이한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로봇과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다움’을 얘기하는 것이 가장 큰 주제가 아니다. 인간같은 로봇을 빌어 “우리가 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275p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움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선이의 말대로 인간은 아주아주 우연한 기회로 의식을 지닌 생물로 우주에 태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생을 우리는 가치있게 살아내고 좋은 안녕을 말할 수 있는, 작별 인사를 할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 심오한 작품이 풀어내주었다.


 

200p

 

“인류는 오랫동안 왜 외계인들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궁금해했잖아? 나는 그들도 이야기 없는 의식의 세계로 이미 진화했다고 생각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굳이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는 거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오래전에 초월했으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어.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민이도. (…)”

 

“어떻게 해야 완결되는데?”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나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되었고, 너나 민이는 인간의 설계대로 제작됐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생에 대한 집착도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생각해.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그런데 민이는 아직 아니야.”
 

 

나는 <작별인사>를 읽고, 삶에 대해 고민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에서도 차이가 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지치고 스러질 것 같은 순간에,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순간에 나는 다시금 이 책을 꺼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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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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